삼성하면 세계적인 기업이다.

우리 모두가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기업인으로서 이건희 회장을 높이 평가한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건희 회장의 말이 국민정서와 초점이 맞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삼성의 조세포탈 및 편법증여에 대한 재판결과를 대부분의 국민들이 공감하지 못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평창올림픽 유치를 위한 국민적 염원을 빌미로 유죄판결이 확정된 지 채 5개월도 지나지 않아서 이건희 회장 한 사람만을 사면복권했다.

이런 이명박 대통령의 처사를 대부분의 국민들은 납득하지 못했다.


사면을 받은 직후 이건희 회장은 ‘우리 국민들이 좀 더 솔직해 졌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들었을 때 공감하지 못한 차원을 넘어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도대체 누가 누구에게 할 말인가?

세금 안내고 비자금을 만들어서 2세에게 거의 공짜로 상속한 것에 대해 솔직하지 못했던 것은 바로 이건희 회장 자신 아닌가?

국민은 당황하고 어이없어했다.

이 회장은 우리 국민과는 먼 거리에 서 있는 것이다.


삼성에는 노조가 없다.

노조를 만들려고 하면 부당해고를 감행하거나 먼저 유령노조를 신고 등록 했다.

그래서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노조는 안 된다.” 는 선친의 말씀을 관철시키고 있는 것이다.

 

우리 국민들은 다 알고 있다.

한마디로 삼성이 우리 헌법과 노동관계법을 짓밟고 있다.

세계의 상식을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삼성이야말로 자본주의도, 전체주의도 아니고 도대체 무엇인가?


이익공유제를 주장한 정운찬 교수는 이명박 정부의 총리를 지낸 분이다.

어떤 한나라당 정치인은 정운찬 교수의 발언을 급진좌파로 몰아 세웠다.

 

그러더니 이건희 회장은 일거에 정교수를 “불학무식한” 사람으로 몰아 붙여 버렸다.

“사회주의도 아니고 자본주의도 아니고 공산주의도 아니다”라는 말을 통해서

사실은 “급진좌파 소동”을 지지하고자 한 것이 아닐까, 걱정스럽다.

 

정운찬 서울대총장을 이렇게 모욕할 수 있나?

이건희 회장의 삼성자본권력이 섬뜩하게 느껴진다.


솔직히 말하면 그 오만함에 공포심이 느껴진다.

삼성의 이런 교만한 권력행사에 대해 국민들이 투표로 심판할 수도 없다.

 

세계적인 기업 삼성이 앞으로도 잘 되기는 해야겠는데 솔직히 혼란스럽다.

삼성과 이건희 회장에게는 삼성이 그간 누려온 정경유착과 부당판결과 편법증여와 조세포탈,

무엇보다도 권력과 국민위에 군림했던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 없는 모양이다.

 

그러니 국민정서와 동떨어진 이런 헛말이 계속 나오는 것 아닌가?

도대체 어디까지, 언제까지 이런 교만함이 계속 될 것인가.

 

2011년 3월 11일
김근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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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기적

기적을 타고 내려왔다. 그것은.....,

남영동 야수들의 고문흔적은 전혀 반박의 여지없이 내 아내 아니 인재근,

다음에는 최정순, 김상철 변호인의 눈에 가슴에 사진 찍혀 버렸다.

9월 26일 오후 3시경 검찰청 건물에서.....

남영동 짐승들은 무거운 짐을 벗고 얼마간은 승리 비슷한 기분에 싸여 슬슬 휘파람이라도 불면서 돌아갔고.

이른바 검찰 공안부라는데서는 약간 들뜬 긴장 아니면 늦여름 나른한 식곤증에 졸리운 채 기다리고 있었을 게다.

 

그런데 그 사이를 칼날 끝으로 뚫어버린 것이다.

그 후 별별 짓을 다했지만 한번 들통난 것이 지워질 리 있겠는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순간, 아! 거기에 내가 잘 아는 인재근이 서 있었다.

못 본지 한 달밖에 안 되었는데 우리 사이의 거리는 까마득했다.

 

죽음 저편에서 짓밟혀 버렸던 나는 인재근의 삶 옆으로 도저히 돌아갈 수는 없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순간이었다.

적응하고 이해하는 그런 시간은 필요했지만 그것은 순간이었다.

 

인재근의 눈에 물기가 핑 도는 그런 시간으로 충분했다.

이해와 사랑을 실은 눈빛이 나를

짓밟혀 극도로 왜소해진 나를 원상태로 되돌려 보내기 시작했다.

 

그 시선은 나에게 부피를, 무게를 되돌려 주는 전기 스파크를 일으키는 것이었다.

짓밟혀 짜부러져 평면이 되어버렸고 먼지처럼 왜소해진 나는 부피도, 무게도, 인간적 자존심까지 모두 잃어버렸던 것이다.

 

그것이 이 시선에 의해 거꾸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빠른 속도로 되돌아가 결정적으로 다시 소생하기 시작해 버린 것이다.

포니 뒷자석 가운데 끼여서 서부역 앞을 지났다.

푸른 하늘이 보이고 구름이 흐르고 햇빛이 따사롭고 눈부셨다.

 

다시 다가온 이 햇빛, 푸른 하늘이 눈물이 나고 시간이 멈춰지는 것 같았다.

죽음의 세계로만 흐르던 시간이 멈춰서고, 분명히 멈추고 서서히 필름이 거꾸로 돌아가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잃어버렸던 내 생명이 꿈틀거리면서 강요된 죽음의 영화필름, 헷갈린 내용이 흐릿해지는 것이었다.

인재근의 그 눈빛이 모든 것을 뒤흔들어 놓았다.

정치군부. 남영동 야수들이 심어놓은 내 가슴의 죽음은, 사탄은 소리를 지르면서 내 몸에서, 마음에서 쫓겨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내가 너무 쫄아서 그런지, 시선의 전류가 아직 약해서인지 혹시 내가 대담해서인지 말을 할까 말까 망설였다.

내가 당한 고문 얘기를 듣고 얼마나 처참해 할까도 헤아려 봤고,

동시에 얘기를 듣는다 해도 절망적인 죽음의 정면 얼굴을 상상할 수가 있을까 등등이 떠올랐다.

 

그러나 더 이상 주저할 수 없었다.

나에게는 시간이 없었다.

그리고 이건 나 개인에 관한 것이지만 동시에 우리 모두에 관계된 것이므로 말하기로 결정했다.

 

손목시계의 초침소리가 째깍쩨깍 귀청을 때리는 듯 했다.

서둘러야 했다.

가능한 한 정확하게 구체적인 사실을 전해야 한다 하니까 오히려 말을 더듬게 되고, 앞뒤가 바뀌어 표현되었다.

 

헛바퀴가 돌아가고 구멍이 뚫어져 김이 새어 나가는 듯 싶기도 하고,

내가 말하고 있는 고문 사실의 그 무게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지, 내 처 얼굴에는 묘한 곤혹스런 표정이 떠올랐다.

너무 엄청나서인지 감정 이입이 즉각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엿보였고,

주고받는 우리의 말과 표정이 서로 따로 노는 것이었다.

결국 내가 전한 것은 "전기고문과 물고문을 각 5시간씩 열 번 당했다.

4일, 8일, 13일은 각각 두 번씩, 그리고 5일, 6일, 10일, 20일은 각각 한 번씩 당했다"고 말한 것이 고작이었도,

그것도 숨넘어가듯이 빠르게 해댔다.

이 말을 두어 번 반복한 다음 신고 있던 양말을 벗어서 내 처에게 주었다.

여름이면 무좀이 생겨 성하게 되므로 몇 년 째 샌들을 신어 왔으며 85년 8월 24일 체포될 당시도 그러했다.

간신히 양말을 쭈그려 앉아서 벗었다.

그리고 발뒤꿈치 양쪽과 발등(새끼 발가락과 둘째 발가락 윗부분), 양 팔꿈치를 보여 주었다.

"온몸 다섯군데를 꼼짝 못하도록 묶이고, 전기고문, 물고문 받다가 못 견뎌 비두발광하다가 닳아서 찢어진 것이다.

그리고 양쪽 발뒤꿈치, 팔뒤꿈치가 똑같은 모양으로 상처가 났고,

발등 양쪽에 까맣게 탄 점들이 한 무더기씩 있는 것은 전기고문시 전류가 타서 생긴 것이다."

최대한으로 잘, 그리고 정확하게 전하려고 했지만,

쉴 새 없이 떠들었지만 무언가가 가로막혀서 내 의사가 전달되는 것인지 어떤지 명확히 알 수가 없었다.

가위눌린 꿈속에서 진땀 흘리는 것과 유사했다.

 

말을 하려해도 입이 떨어지지 않고 소리를 치려해도 소용이 없고,

두꺼운 유리가 가로막혀져서 입이 벙긋벙긋 하는 것을 보면서도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어 속 태우는 그대로였다.

남영동 5층 구석방에서의 23일, 이것은 지옥이었다.

독가스 대신 전기고문과 물고문이 설치는 나치 수용소였다.

시간이 종국적으로 멈춰 버린 영원한 저주의 세계였다.

나는 이 전부를, 이 부서져 쓰러졌던 죽음을 불과 몇 분 동안에 전달하려고 했던 것이다.

고문받았던 얘기를 단순하게 묘사함으로써 깊고 깊게 패인 상처 그 전부를 알아듣기 바랐던 것이었다.

 

그러니 톱니바퀴가 서로 헛돌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던 것은 당연할지 모른다.

내 처를 기적처럼 만나서 내 처에게 요령있게 설명해도 잘 알아듣지 못하는 듯한 이 분위기에서

나는 또 다시 깊은 소외감, 버림받은 서러움으로 생채기를 입었다.

그러나 서서히 톱니바퀴가 맞아들어 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팔꿈치는 피딱지가 져 있었지만, 발뒤꿈치는 그날 아침까지 피고름이 흘렀었다.

 

이것을 모두 내 처는 똑똑히 보았다.

검찰청 4층에 있는 대기실로 들어가 앉아 있었다.

나는 거듭 발뒤꿈치, 발등, 팔꿈치를 보여 주었고, 내 처도 재삼재사 확인했다.

내 처는 그늘진 복도에 서 있어 미묘한 표정을 보기가 어려웠지만, 나는 그러나 느낄 수 있었다.

멍하고 기가 막힌다는 표정에서 맹렬하게 분노하는 표정으로 변하는 것을,

눈에 눈물이 핑 도는 것을 나는 보았다.

 

그러더니 통곡하는 표정이 되고, 대기실 경찰이 저지해도 아랑곳 하지 않고 내개로 걸어들어 오는 것이었다.

그 쪽문을 닫아 버리니까 또 다른 문으로 돌아오고, 내 처는 그 참혹함을 통째로 이해한 것 같았다.

 

내 처의 치 떨리느 분노로 흐들거리는 것이 나에게 전해 오는 것이었다.

나를 위한 그 분노, 그 눈물이 내 눈에도 눈물이 고이도록 만들었다.

 

완전히 메말라 버려 눈물 따위는 영영 돌아오지 않을 것 같던 내 눈에도 물기가 어렸다.

내 편을 들어주는 친구도 있었구나, 아직 이 세상에 신음, 비명이야 수없이 질러대고

고통과 공포 속에서 울부짖음으로 제 정신이 아니었지만, 남영동에서 진짜 눈물은 꼭 한 번 흘렸다.

그 이후 나에게서 눈물 같은 것은 사라져 버렸다.

9월 20일이었을 것이다.

결국 반국가단체로 민청련을 몰고 그렇게 피의신문 조서를 작성하고, 그것을 베끼고 종착역에 도착한 것이다.

 

그 혼란 중에서도 나는 이것의 현실적인 의미를 명백히 알 수 있었다.

합법을 가장한 살해를 성취하기 위해서 지금까지 저들은 한 단계 한 단계 밟아온 것이었다.

 

나는 여기 남영동에서 정치군부의 하수인들에 의해 살해되는 과정의 예비단계를 지나 그것의 확고한 단계로 떠밀려 간 것이었다.

죽음은 이렇게 오는 것이구나,

고문으로 이미 쓰러져 죽어 있던 나는 이런 과정을 거쳐서 합법을 가장하여 살해되는구나,

그렇게 하여 죽음을 완성시키는구나, 저들은.

나는 이때 슬퍼서 눈물울 흘렸다.

줄줄 하염없이 흘러 내렸다.

이미 회피할 수 없는 것으로서 덧씌워져 온 것이다.

 

그리고 나서 눈물은 완전히 말라 버렸는데.....

그랬었는데 내 처의 떨리는 가슴이, 그 눈물이, 아니 창 밖으로 흐르는 푸른 하늘이 내 눈물을 되돌아오게 한 것이었다.

대기실 경찰들은 내 처를 저지하느라고 앞뒷문을 모두 닫아 버리더니 더운지 다시 문을 열어 제꼈다.

내 처는 뭐라고 말하고 사라지더니 잠시 후 아기를 업은 이을호 씨의 처 최정순씨와 같이 나타났다.

대기실 입구에 서서 내 상처를 눈여겨보고 헤드라이트 같은 커다란 두 눈이 되는 최정순씨였다.

얼마 후 대기실을 나와 처의 부축을 받으면서 5층 김원치 검사 방 입구까지 같이 갔다.

김원치 검사 방에 들어가 얼마쯤 있으려니까 김상철 변호사가 들어왔다.

내 변호인임을 밝히면서 바로 옆 자리에 앉아 악수를 청했다.

 

우리는 손을 마주 잡고 두 눈을 들여다보았다.

자세히 설명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발뒤꿈치, 발등, 팔꿈치를 보여 주었다.

그리고 될 수 있는 대로 정확히 기억을 해내서 말했다.

 

맞은편 자리에서 김원치 검사도 들었다.

김상철 변호인이 들어오기 전에도 고문받은 사실을 말하고, 상처를 김원치 검사에게 보여 주었음은 물론이다.

 

눈물샘이 터졌는지 김상철 변호사와 얘기하면서 나는 자꾸 콧등이 매캐해졌다.

목소리도 자꾸 떨려오고 연달아 아는 세 사람의 우리편, 좋은 나라 사람들을 만난 것이다.

잃어버린 내 영토를 수복해 가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리고 다시 검사 방을 나와 구치소로 가는 차를 타기 위해서 엘리베이터로 1층으로 내려가는 동안 처는 나를 부축해 주었다.

아주 짧은 시간 동안이었지만 그것을 통해서 나는 용기를 되찾아가기 시작했다.

 

부축하는 처에게 반복해서 고문 얘기를 했고 확실히 기억하도록 당부했다.

구치소로 가는 포니 자동차를 타기 직전 나는 웃어 보였다.

처에게 힘껏 웃어주고 나는 떠났다.

2. 기적

기적을 타고 내려왔다. 그것은.....,

남영동 야수들의 고문흔적은 전혀 반박의 여지없이 내 아내 아니 인재근,

다음에는 최정순, 김상철 변호인의 눈에 가슴에 사진 찍혀 버렸다.

9월 26일 오후 3시경 검찰청 건물에서.....

남영동 짐승들은 무거운 짐을 벗고 얼마간은 승리 비슷한 기분에 싸여 슬슬 휘파람이라도 불면서 돌아갔고.

이른바 검찰 공안부라는데서는 약간 들뜬 긴장 아니면 늦여름 나른한 식곤증에 졸리운 채 기다리고 있었을 게다.

 

그런데 그 사이를 칼날 끝으로 뚫어버린 것이다.

그 후 별별 짓을 다했지만 한번 들통난 것이 지워질 리 있겠는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순간, 아! 거기에 내가 잘 아는 인재근이 서 있었다.

못 본지 한 달밖에 안 되었는데 우리 사이의 거리는 까마득했다.

 

죽음 저편에서 짓밟혀 버렸던 나는 인재근의 삶 옆으로 도저히 돌아갈 수는 없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순간이었다.

적응하고 이해하는 그런 시간은 필요했지만 그것은 순간이었다.

 

인재근의 눈에 물기가 핑 도는 그런 시간으로 충분했다.

이해와 사랑을 실은 눈빛이 나를

짓밟혀 극도로 왜소해진 나를 원상태로 되돌려 보내기 시작했다.

 

그 시선은 나에게 부피를, 무게를 되돌려 주는 전기 스파크를 일으키는 것이었다.

짓밟혀 짜부러져 평면이 되어버렸고 먼지처럼 왜소해진 나는 부피도, 무게도, 인간적 자존심까지 모두 잃어버렸던 것이다.

 

그것이 이 시선에 의해 거꾸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빠른 속도로 되돌아가 결정적으로 다시 소생하기 시작해 버린 것이다.

포니 뒷자석 가운데 끼여서 서부역 앞을 지났다.

푸른 하늘이 보이고 구름이 흐르고 햇빛이 따사롭고 눈부셨다.

 

다시 다가온 이 햇빛, 푸른 하늘이 눈물이 나고 시간이 멈춰지는 것 같았다.

죽음의 세계로만 흐르던 시간이 멈춰서고, 분명히 멈추고 서서히 필름이 거꾸로 돌아가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잃어버렸던 내 생명이 꿈틀거리면서 강요된 죽음의 영화필름, 헷갈린 내용이 흐릿해지는 것이었다.

인재근의 그 눈빛이 모든 것을 뒤흔들어 놓았다.

정치군부. 남영동 야수들이 심어놓은 내 가슴의 죽음은, 사탄은 소리를 지르면서 내 몸에서, 마음에서 쫓겨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내가 너무 쫄아서 그런지, 시선의 전류가 아직 약해서인지 혹시 내가 대담해서인지 말을 할까 말까 망설였다.

내가 당한 고문 얘기를 듣고 얼마나 처참해 할까도 헤아려 봤고,

동시에 얘기를 듣는다 해도 절망적인 죽음의 정면 얼굴을 상상할 수가 있을까 등등이 떠올랐다.

 

그러나 더 이상 주저할 수 없었다.

나에게는 시간이 없었다.

그리고 이건 나 개인에 관한 것이지만 동시에 우리 모두에 관계된 것이므로 말하기로 결정했다.

 

손목시계의 초침소리가 째깍쩨깍 귀청을 때리는 듯 했다.

서둘러야 했다.

가능한 한 정확하게 구체적인 사실을 전해야 한다 하니까 오히려 말을 더듬게 되고, 앞뒤가 바뀌어 표현되었다.

 

헛바퀴가 돌아가고 구멍이 뚫어져 김이 새어 나가는 듯 싶기도 하고,

내가 말하고 있는 고문 사실의 그 무게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지, 내 처 얼굴에는 묘한 곤혹스런 표정이 떠올랐다.

너무 엄청나서인지 감정 이입이 즉각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엿보였고,

주고받는 우리의 말과 표정이 서로 따로 노는 것이었다.

결국 내가 전한 것은 "전기고문과 물고문을 각 5시간씩 열 번 당했다.

4일, 8일, 13일은 각각 두 번씩, 그리고 5일, 6일, 10일, 20일은 각각 한 번씩 당했다"고 말한 것이 고작이었고,

그것도 숨넘어가듯이 빠르게 해댔다.

이 말을 두어 번 반복한 다음 신고 있던 양말을 벗어서 내 처에게 주었다.

여름이면 무좀이 생겨 성하게 되므로 몇 년 째 샌들을 신어 왔으며 85년 8월 24일 체포될 당시도 그러했다.

간신히 양말을 쭈그려 앉아서 벗었다.

그리고 발뒤꿈치 양쪽과 발등(새끼 발가락과 둘째 발가락 윗부분), 양 팔꿈치를 보여 주었다.

"온몸 다섯군데를 꼼짝 못하도록 묶이고, 전기고문, 물고문 받다가 못 견뎌 비두발광하다가 닳아서 찢어진 것이다.

그리고 양쪽 발뒤꿈치, 팔뒤꿈치가 똑같은 모양으로 상처가 났고,

발등 양쪽에 까맣게 탄 점들이 한 무더기씩 있는 것은 전기고문시 전류가 타서 생긴 것이다."

최대한으로 잘, 그리고 정확하게 전하려고 했지만,

쉴 새 없이 떠들었지만 무언가가 가로막혀서 내 의사가 전달되는 것인지 어떤지 명확히 알 수가 없었다.

가위눌린 꿈속에서 진땀 흘리는 것과 유사했다.

 

말을 하려해도 입이 떨어지지 않고 소리를 치려해도 소용이 없고,

두꺼운 유리가 가로막혀져서 입이 벙긋벙긋 하는 것을 보면서도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어 속 태우는 그대로였다.

남영동 5층 구석방에서의 23일, 이것은 지옥이었다.

독가스 대신 전기고문과 물고문이 설치는 나치 수용소였다.

시간이 종국적으로 멈춰 버린 영원한 저주의 세계였다.

나는 이 전부를, 이 부서져 쓰러졌던 죽음을 불과 몇 분 동안에 전달하려고 했던 것이다.

고문받았던 얘기를 단순하게 묘사함으로써 깊고 깊게 패인 상처 그 전부를 알아듣기 바랐던 것이었다.

 

그러니 톱니바퀴가 서로 헛돌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던 것은 당연할지 모른다.

내 처를 기적처럼 만나서 내 처에게 요령있게 설명해도 잘 알아듣지 못하는 듯한 이 분위기에서

나는 또 다시 깊은 소외감, 버림받은 서러움으로 생채기를 입었다.

그러나 서서히 톱니바퀴가 맞아들어 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팔꿈치는 피딱지가 져 있었지만, 발뒤꿈치는 그날 아침까지 피고름이 흘렀었다.

 

이것을 모두 내 처는 똑똑히 보았다.

검찰청 4층에 있는 대기실로 들어가 앉아 있었다.

나는 거듭 발뒤꿈치, 발등, 팔꿈치를 보여 주었고, 내 처도 재삼재사 확인했다.

내 처는 그늘진 복도에 서 있어 미묘한 표정을 보기가 어려웠지만, 나는 그러나 느낄 수 있었다.

멍하고 기가 막힌다는 표정에서 맹렬하게 분노하는 표정으로 변하는 것을,

눈에 눈물이 핑 도는 것을 나는 보았다.

 

그러더니 통곡하는 표정이 되고, 대기실 경찰이 저지해도 아랑곳 하지 않고 내개로 걸어들어 오는 것이었다.

그 쪽문을 닫아 버리니까 또 다른 문으로 돌아오고, 내 처는 그 참혹함을 통째로 이해한 것 같았다.

 

내 처의 치 떨리는 분노로 흐들거리는 것이 나에게 전해 오는 것이었다.

나를 위한 그 분노, 그 눈물이 내 눈에도 눈물이 고이도록 만들었다.

 

완전히 메말라 버려 눈물 따위는 영영 돌아오지 않을 것 같던 내 눈에도 물기가 어렸다.

내 편을 들어주는 친구도 있었구나, 아직 이 세상에 신음, 비명이야 수없이 질러대고

고통과 공포 속에서 울부짖음으로 제 정신이 아니었지만, 남영동에서 진짜 눈물은 꼭 한 번 흘렸다.

그 이후 나에게서 눈물 같은 것은 사라져 버렸다.

9월 20일이었을 것이다.

결국 반국가단체로 민청련을 몰고 그렇게 피의신문 조서를 작성하고, 그것을 베끼고 종착역에 도착한 것이다.

 

그 혼란 중에서도 나는 이것의 현실적인 의미를 명백히 알 수 있었다.

합법을 가장한 살해를 성취하기 위해서 지금까지 저들은 한 단계 한 단계 밟아온 것이었다.

 

나는 여기 남영동에서 정치군부의 하수인들에 의해 살해되는 과정의 예비단계를 지나 그것의 확고한 단계로 떠밀려 간 것이었다.

죽음은 이렇게 오는 것이구나,

고문으로 이미 쓰러져 죽어 있던 나는 이런 과정을 거쳐서 합법을 가장하여 살해되는구나,

그렇게 하여 죽음을 완성시키는구나, 저들은.

나는 이때 슬퍼서 눈물울 흘렸다.

줄줄 하염없이 흘러 내렸다.

이미 회피할 수 없는 것으로서 덧씌워져 온 것이다.

 

그리고 나서 눈물은 완전히 말라 버렸는데.....

그랬었는데 내 처의 떨리는 가슴이, 그 눈물이, 아니 창 밖으로 흐르는 푸른 하늘이 내 눈물을 되돌아오게 한 것이었다.

대기실 경찰들은 내 처를 저지하느라고 앞뒷문을 모두 닫아 버리더니 더운지 다시 문을 열어 제꼈다.

내 처는 뭐라고 말하고 사라지더니 잠시 후 아기를 업은 이을호 씨의 처 최정순씨와 같이 나타났다.

대기실 입구에 서서 내 상처를 눈여겨보고 헤드라이트 같은 커다란 두 눈이 되는 최정순씨였다.

얼마 후 대기실을 나와 처의 부축을 받으면서 5층 김원치 검사 방 입구까지 같이 갔다.

김원치 검사 방에 들어가 얼마쯤 있으려니까 김상철 변호사가 들어왔다.

내 변호인임을 밝히면서 바로 옆 자리에 앉아 악수를 청했다.

 

우리는 손을 마주 잡고 두 눈을 들여다보았다.

자세히 설명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발뒤꿈치, 발등, 팔꿈치를 보여 주었다.

그리고 될 수 있는 대로 정확히 기억을 해내서 말했다.

 

맞은편 자리에서 김원치 검사도 들었다.

김상철 변호인이 들어오기 전에도 고문받은 사실을 말하고, 상처를 김원치 검사에게 보여 주었음은 물론이다.

 

눈물샘이 터졌는지 김상철 변호사와 얘기하면서 나는 자꾸 콧등이 매캐해졌다.

목소리도 자꾸 떨려오고 연달아 아는 세 사람의 우리편, 좋은 나라 사람들을 만난 것이다.

잃어버린 내 영토를 수복해 가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리고 다시 검사 방을 나와 구치소로 가는 차를 타기 위해서 엘리베이터로 1층으로 내려가는 동안 처는 나를 부축해 주었다.

아주 짧은 시간 동안이었지만 그것을 통해서 나는 용기를 되찾아가기 시작했다.

 

부축하는 처에게 반복해서 고문 얘기를 했고 확실히 기억하도록 당부했다.

구치소로 가는 포니 자동차를 타기 직전 나는 웃어 보였다.

처에게 힘껏 웃어주고 나는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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