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방문을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공식일정을 끝내고 프랑스에서 돌아오는 길에는 모네의 집과 뽕삐두센터도 찾았습니다.
우리 국민 대부분이 그렇듯이 나도 인상파를 좋아합니다.
그 중에서도 후기 인상파를 좋아합니다.
특히 고흐를 생각하면 가슴이 저려옵니다.
평생 한 작품도 팔지 못했다는 고흐,
고갱과 싸우고 헤어진 다음 귀를 잘라버리고 붕대를 칭칭 감은 모습으로 나타난 자화상 속의 고흐....
도저히 다른 길은 없었던 것일까요?
과거 희망이 보이지 않던 시절에는 자살했던 고흐의 권총소리가 별안간 들려올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었습니다.
사실, 나는 “수련”을 그린 화가가 마네인지 모네인지 잘 구별을 못했습니다.
모네의 연못에는 꽃은 피어있지 않았지만 수련이 떠 있는 모습이 제법 좋았습니다.
탁한 연못물이었지만 거기에 봄이 잔뜩 쏟아져 내리고 있었거든요.
그러나 솔직히 말하면 약간 김새는 바도 있었습니다.
이쁘긴 하지만 약간 거북한 느낌을 주는 그런 느낌이라고 할까요? 불편했습니다.
이미 생전에 작품이 잘 팔렸던 작가였다는 말도
“예술가”라는 나의 고정화된 이미지와 충돌하는 것이었지만 더 큰 이유는 딴 데 있었습니다.
19세기 중후반시대를 살았던 모네가 당시 간직하고 있었다는 일본의 판화들이 아뜨리에 실내를 도배하고 있었습니다.
자존심도 약간 상했고, 근래 일본의 태도를 보면서 입었던 상처가 도지는 듯 했습니다.
질투심일지도 모릅니다.
여러 가지가 연상되었습니다.
모네재단이 일본 관광객을 겨냥하고 있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고,
당시의 교양인들이 근대화에 성공해 가고 있던 서구나라가 아닌 일본에 대한 지적 호기심이 영향을 미쳐
일본 판화를 그렇게 수집케 만들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우리가 때맞춰 근대화를 이루지는 못했지만,
현대화 또는 탈근대화에는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는 국민적 합의가 이뤄져 있다고 나는 믿습니다.
그런 점에서 뽕삐두 도서관 여기저기에서 “삼성” 브랜드가 붙은 컴퓨터를 만난 것은 기분 괜찮은 일이었습니다.
우리가 미래로 전진하고 있는 어떤 증거같이 느껴졌습니다.
피카소, 브라크, 마티스, 레제, 칸딘스키, 몽드리안, 쟈코메티, 브랑쿠치, 마가레트, 발투스 등등
미술책에서 들어봤던 작가들의 작품들이 줄줄이 걸려 있었습니다.
“장미의 정원”이었던가, 이름은 자신이 없습니다.
여하튼 잠수함 속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작품 속으로 관람객이 걸어들어가 봐야하는 설치작품,
팝아트, 옵아트를 직접 체험할 수 있었던 것은 귀중한 경험이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놀랍게 다가왔던 것은 30년 전에 지었다는 뽕삐두 센터 자체였습니다.
한 마디로 기가 막혔습니다.
물론, 지금도 잘 지은 건물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확실히 지금도 파격적이고 포스트모던한 건물임에는 틀림없어 보였습니다.
여러 가지 계산이 있었겠지만, 참으로 성공적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고색창연한 건물을 비롯해 옛것들을 지켜냄으로써 관광객들도 아주 많이 끌어들이고
또 효과적으로 세계에 세일즈하고 있는 프랑스 정책결정자들이, 그리고 프랑스 국민들이 대단해 보였습니다.
어쩌면 실패할 지도 모르는 이런 실험적이고 위험한 선택을 할 수 있는
그 자유로운 상상력은 도대체 어디로부터 오는 것일까요?
OECD 사회정책장관회의에서도 프랑스는 당당히 존재했습니다.
불어가 영어와 더불어 공용어였습니다.
그리고 복지정책 실현에 있어서 민간과 정부역할 분담에 대해 미국과 프랑스는 대립하고 있었습니다.
견해차가 있을 만한 문제였지만, 그 대립이 두드러짐으로써 이득을 보는 것은 단연 프랑스 쪽이지요.
대사들을 통해 전해 들었습니다.
프랑스 정책결정자들이 유럽연합처럼 동아시아 공동체가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인지,
그 과정에서 한국이 한반도 평화를 이루면서 동시에 이니시어티브를 행사해 나갈 수 있을 것인지
무척 궁금해 한다는 것입니다.
근래에는 프랑스가 중국에 보다 많은 관심을 갖는 것 같은데
이에 대해 일본 쪽이 배신당한 애인처럼 삐져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느끼는 바가 당연히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동아시아는 유럽과 다르고, 한반도는 프랑스와 분명히 다릅니다.
하지만 프랑스가 프랑스라고 주장함으로써 성공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는 우리다, 한반도는 한반도다.’라는 우리들 자신에 대한 정체성을 확인하는 것이 새로운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폐쇄적이 아닌 개방적이고 긍정적인 자기 인식, 자기 긍정으로부터 다시 시작할 때
“한류”는 우리가 적극적으로 역할하는 “동아시아류”로 발돋움할 수 있을 것으로 나는 확신합니다.
2005.4.4
김근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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