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토요일에 편지를 씁니다.

내일부터 해외출장을 떠날 계획이라 서둘러 편지를 씁니다.

결국, ‘토요일에 쓰는 편지’가 됐네요.

 

지난 목요일에는 나이팅게일 탄신일을 맞아 ‘간호사 한마음대회’가 열렸습니다.

그 자리에서 5,200명의 간호사가 ‘장기기증 서약’을 했습니다.

현장에서 서약을 지켜보며 느낌이 참 많았습니다.

 

장기를 기증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굳이 유교적 전통까지 떠올리지 않더라도 자기 장기를 떼어내도 좋다는 약속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결단해야 할 수 있는 일입니다.

 

흰옷 입은 5,200명의 여성이 이런 결단을 해내는 광경은 지켜보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충분했습니다.

가슴이 저릿했습니다.

 

우리 사회에 ‘새로운 물결’이 밀려오는 느낌입니다.

그것도 우리가 낌새를 채지 못할 정도로 소리 없이 다가오는 물결입니다.

저는 이 물결의 일렁임을 느끼며 ‘희망’이라는 단어를 떠올립니다.

이 물결이 우리 사회를 새로운 도약대로 이끌 것이라는 예감 때문입니다.

 

어느 자리에선가 ‘새로운 민주주의’에 대해 토론했던 기억이 납니다.

과거의 민주화운동이 ‘제도와 세력을 바꾸자.’는 것이었다면

새로운 민주화운동은 ‘문화와 삶을 바꾸자.’는 것이라는 주장에 적극적으로 동조했던 것 같습니다.

우리 삶의 방식과 문화를 민주주의의 원리에 맞게 바꾸는 것이 ‘새로운 민주화운동’이라는 정의가 그럴듯해 보였습니다.

살만한 세상, 자부심을 느껴도 좋은 사회를 만들자는 것이 ‘민주화운동’이니까요.

 

지난 3월, ‘국가적 자부심’에 대한 충격적인 조사결과를 보도한 기사를 읽은 기억이 납니다.

조사에 의하면 세계 32개국을 비교한 결과 우리나라의 국력은 8위인데 비해

국민이 생각하는 ‘국가적 자부심’은 31위였습니다.

꼴찌에서 두 번째입니다.

 

32개국의 평균을 넘는 건 ‘스포츠’가 유일했고,

‘공평성’이나 ‘사회보장제도’는 평균의 70%에 불과했습니다.

한마디로 ‘빈부격차’나 ‘사회보장제도’의 부실 때문에 우리 국민들이 우리 사회 전반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이 문제를 감당해야 하는 사람으로서 정말 무거운 책임감을 느낍니다.

 

더 모질게 준비하고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합니다.

우리가 사는 이 사회가 ‘자부심’을 느끼지 못하는 사회라는 사실은 정말 자존심 상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후손에게 이런 상황을 그대로 물려 줄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염치없지만 여러분에게도 손을 내밀고 싶습니다.

기본적으로 정부가 감당해야 하지만 정부의 노력만 가지고는 충분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새로운 결단이 필요합니다.

민주주의를 ‘핵심가치’로 믿는 분들, 살맛나는 세상을 만들자는 소망을 갖고 있는 여러 분들의 참여가 필요합니다.

 

살고 있는 터전에서 시작합시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동아리에서, 지역사회에서. 민주주의의 원리에 따라 운영되는 모임을 만듭시다.

이웃과 소통하고 연대하는 소모임을 만드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입니다.

이 작은 눈덩이를 굴려 큰 흐름으로 바꿔냅시다.

‘희망 바이러스’를 만들고 전파합시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할 수 있는지 여러분과 고민을 나누고 싶습니다.

제안도 듣고 싶습니다.

작은 물결을 큰 흐름으로 만들기 위해 정부가 혹은 제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도 궁금합니다.

 

내일, WHO 총회 참석을 위해 스위스로 떠납니다.

스위스를 거쳐 스웨덴도 방문할 생각입니다.

가능한 범위에서 스웨덴의 복지제도도 살펴보고 돌아오겠습니다.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외국에 나가있는 동안이라도 인터넷을 통해 여러분의 말씀을 듣기 위해 애쓰겠습니다.

출장에서 돌아오면 제 생각을 정리해서 다시 여러분과 대화를 나누고 싶습니다.

여러분의 의견을 기다립니다.


2005.5.15
김근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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