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행 기

 - 울창한 숲 속 환상의 길 숨겨 진 무의도


빈 맘으로
거리낌없이
만나서 반가운 이들

한 달에 한 번
부담없이 보고
어울리고 걷고 땀흘리고

무슨 산악회라
이름짓고 지내온 지도
벌써 5 년이 넘어섰다.

산을 정말 좋아하고
자주 오르는 이들에게는

그런 게 무슨 산악회냐고
핀잔들어 마땅한 구석
없지 않겠는데

그래도 지난 5 년 여 동안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월 네 번째 일요일
한 번도 거른 적 없다.

6 월 네 째 주 23 일 산행은
인천 앞바다 무의도

바로 이웃에 사는 산악회 총무
나이답지 않게 그저 철없이 맑고 순수하고
탁구 선수 출신에다 패션 모델 저리가라 키 크고 훤출하고
애기같이 여리고 숫기없고 깜짝깜짝 잘 놀라고 삐지기도 하고
산악회 총무 위해 이 땅에 태어난 듯 열심 이만저만 아니고...

김밥이랑 과일 음료수랑
이것저것 준비하고 날라야겠으니
좀 서둘러서 일찍 나와 달랍신다.

아침 일찍 일어나
창문 열고 내다보니
궂은 비가 부슬부슬
내리다말다 한다.

산악회원들 중 어제 한국이 스페인 누르고
4 강에 오른 장면 안 본 사람 없을 텐데...
흥분과 감동에 젖어 날밤 샌 이들 더러 있겠지...
날밤 새진 않더라도 밤늦도록 잠 못 이룬 이들 많겠지...
비도 부슬부슬 내리겠다 그냥 눌러들 있겠는데...

아침 9 시까지
시청 대한문 앞에서 모이기로 했지만
여느 때처럼 으레 2 ~ 30 분 가량
기다렸다 출발할 요량이다.

바로 몇 시간 전까지
감동과 환희에 빠져
밤새도록 수 만 수십 만 인파로
뒤덮혔을 시청앞 광장

언제 그런 난리
벌어지기라도 했냐는 듯
담배꽁초 휴지조각 하나 없이
평상처럼 깨끗하다.

건너편 센타빌딩 건물
TV에서 보던 대로
대형 현수막 폭죽 불똥에 타 그슬린 자국
아직 그대로 남아 있다.

저 80 년 봄 서울역에서 광주 금남로에서
87 년 6 월 여기 시청앞에서 전국 각지에서
민주화의 함성으로 뒤덮혔던 광경

수십 수백 만 인파가 질서정연한 대오 갖추고
붉은 악마 셔츠입고 하나같은 몸짓으로
통일된 구호와 함성으로
온 몸이 저리도록 목이 쉬어 터지도록
흔들고 외쳐댔을 광경

시공을 넘어 한데 어울려
눈앞에서 아른거린다.

경기도 경기겠지만
전국 방방곡곡에서
들불처럼 타오르는
응원의 열기...

역사상 전무했다던
자연발생적 광경 또한
세계를 놀라게 하는
뉴스 감이라지 않던가?...

회원들이 얼추 이십 여 분
회사 동료한테 좋은 산악회라 소개받았다며
중년 부인 두 분이 새로 참석했다.

머~얼리 수원에서
빠짐없도록 참석해 온 금슬 좋고 젊은 부부
회원들께 화채와 녹차 대접하겠다며

각종 과일과 화채 재료, 얼음통 물통 설거지통 다라...
녹차와 녹차 재료, 자기 주전자 자기 잔 등 다구 다기...
하다못해 화채 그릇 수저 내프킨까지 그 많은 사람 수대로
몇 짐 싣고 도착한다.

9 시 반 경 무의도를 향해 출발한다.
가는 길...
시청앞에서 신촌 합정동 거쳐 강북 강변도로 타고
영종도 인천 국제 공항 전용도로로 접어 든다.

차창 밖을 내다보니
촉촉히 내리는 부슬비
곳에 따라 멈춰 서기도 하고
더 세차게 내리기도 한다.

영종도에서 용유도 방향으로 접어드는 입구 왼편
조그마한 섬 잠진도로 들어서는 연결 도로 건너면
이내 무의도 행 선착장에 닿는다.
시청앞에서 한 40 분 걸렸을라나?

국제 공항 들어서기 전에는
영종도 삼목도 용유도 잠진도
제각각 바다 건너 따로따로 독립된 섬이었지만
삼목도 통째로 허물고 바다를 메워
거대한 섬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우리네 학교 다닐 적만 하더라도
인천 부두에서 일주일에 두어 번
대부도 영흥도 자월도 강화도 교동 연평 백령도까지
돌고 돌아다니는 여객선 타고서라야 가 볼 수 있었던 섬들
배 타고 대여섯 시간 열 두어 시간 걸렸을 섬들
둘러 볼 엄두조차 안 나고 알지도 못했던 섬들
그런 벽지 중에 벽지 섬들인데
서울에서 인천 부두까지보다도 더 빨리 올 수 있다니.....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촉촉한 바닷바람
먼저 나와 손님을 맞이하는데
느닷없이 달려들어
얼굴을 냅다 따갑게 때려 붙인다.

단정하게 매무새한 옷깃 머리칼
주체할 수 없도록
마구 뒤엉클어 놓는다.

그때 아니고 이 글 쓰면서 생각나는 첫 인상
"...허 ~ 참 ... 고~얀 것 ... 내 원 세상에 ....."

짜리~잇한 바닷내가
콧속 깊숙이 스며든다.

무의도가 한달음에 닿을 듯
바로 건너 들여다보인다.

배 타고 출발한 지 3 분
갈매기 떼 먹이 달라 보채는건지
줄줄이 아우성치며 쫓아 오는데
다 왔다고 내리란다.
배 삯 1 인 당 1,000 원, 승용차 대 당 10,000 원

선착장에 내려서니
비바람에 펄럭이는 현수막 하나가
손님맞이 하고 있다.

"[필] 한국 축구 16 강 진출 [승]
장하다 ! 무의도 출신 김남일 선수"

16 강은 이미 넘어 섰고
8 강을 넘어 4 강까지 올라 있는 싯점에서야
조금은 김빠진 내용이지만
한국 축구가 선전하기를 바라고
김남일 선수가 무의도 출신임을 알리고 싶은
동네 분들의 뜻에는
아무런 부족함도 모자람도 없다.

참으로 자랑스럽고 흐뭇하기
그지없을 따름이다.

딴은 그렇겠지...
나부터도 월드컵 대회 전후긴 하지만
김남일 선수는 그래도 머리 속에 들어 있는데
무의도란 섬 이름 들어 본 적 없다.

지금 우리나라 사람들 혹시 인지도를 조사해 본다면
무의도 섬보다 김남일 선수가 더 높게 나오겠지...
세계적으로는 차이가 더 날테고...

그러니 무의도 분들한테는
"장하다 ! 무의도 출신 김남일 선수" 다.

지금 온 국민이 거의 알고 세계가 주목하는
김남일 선수는 누구냐???
다른 무엇보다도 김남일 선수가 누구냐 하면
그건 바로 우리 무의도 출신이란 말씀이시다.

비단 월드컵 대표 선수 아니더라도
어려운 시험에 합격한달지 힘든 시합에서 이길 때
출신 학교 교문이나 지역 마을 입구에 나붙는
현수막 글귀 가끔 보아 왔지만
오늘따라 곰곰 되씹어 생각하니
흠잡을 데 없는 명문이다.

마을버스 타고 등산로가 있는 반대쪽 끝
샘꾸미 선착장으로 향한다.
이 끝에서 저 끝까지 6 km
지나는 도로변 길목마다
연이어 현수막이 걸려 있다.

계속 "필승 / 한국 축구 16 강 진출" 이다.
그리고 "장하다 ! 무의도 출신 김남일 선수"...

월드컵 본선 진출이 확정될 때부터
그러니까 한일 공동 개최로 결정 나고부터
한국 축구는 오로지 16 강 진출이 목표였었지...

그럼 김남일이 국가 대표 선수로 선발된 걸 기념해서
그때부터 저렇게 섬 지나는 곳곳마다
내걸어 놓고 있는 겐가???.....

샘꾸미 선착장에 다달으니
제법 이것저것 구색 갖추고 있을법한 가게 앞마당이다.

그 곳이 김남일 선수 고모집이란다.
고모되는 분 모습을 뵈니 대물림인가?
다부지고 땅땅한 체격에 건강미 넘쳐 보인다.
그 연세에 머리 노랗게 물들인 것도 그렇고.....

사전 답사 왔던 산악회장과 총무 등 몇몇은
구면임을 내세우듯 안녕하셨냐면서 반갑게 인사한다.

"고모요~~~ 우리나라가 4 강에 올라가믄 돼지 자바 준다 그래서
우리 다른 데로 갈라다가 여기까정 일부러 옹 건데...
돼지는 자바 놨껫쮸???"

"올녀믄 때마처서 오섯써야지 이제 오서갓꾸 그러믄 으뜨켄대유~으?
어지께 자바서 다 머거버련는데유~으....."

"지난버네 우리가 왓쓸 때 고모가 그랫짜나여...
4 강에만 올라가믄 돼지 자바 준다구여....."

"잡낀 자반는디 버얼써 다 머거버리구 한나두 읍때니깐유~으?....."

"또 자브시믄 되자나여... 우리 사네 올라갔다 내려 올 동아네여..."

"으뜨케 그래유~으... 내 워~언 참말루... 봐 유~으...
16 깡 때 잡꾸 8 강 때 또 잡꾸... 이버네 4 강 때두 또 잡꾸...
그누무 돼지가 그러차나두 씨가 말너 버리건는데유~으....."

"아프로 저거두 두 버는 더 자바야 되자나여..."

"두 버늘 더 유~으??? 그랫쓰믄 을매나 조켓써유~으...
이기기만 한다믄야 무슨 수를 써서락뚜 자바야쥬~으....."

앞에 나선 산악회장과 우리 일행은 언제 봐서 허물없다고
지나다 들른 길손 주제에 남의 동네 어엿한 중년 부인을 두고
진심인지 농인지 서로 골려 먹기 내기를 하고 있는 건지
실없고 할 일 없는 사람들처럼 별 내용도 없고 쓰잘데 없이
하나마나한 말들을 주고 받지만
바로 전 날 스페인을 누르고 4 강에 오른 쾌거 때문인지
서로 간에 더 할 수 없이 뭉클한 감동과 뜨거운 정이 오간다.

해발 246 m 호룡곡산 정상을 향해 오른다.
그리 높을 것도 험할 것도 없이 그저 편안한 산이다.

호룡곡산 정상 못미처 인당바위가 있다.
산에 오르거나 먼 길 가다보면 그런 거 있지...
지나다가 꼭 머물고 싶고 털썩 주저 앉아 쉬고 싶은 곳.....

한 열 대여섯 명은 넉넉하게 둘러 앉을 만큼
바닥이 평평하게 잘 다듬어져 있다.

산 전체로 보아서도 위치하며 경관 모두가
손님 접대하는 고급 응접실이 들어앉을 곳으로
손색없어 보인다.

양철 판에 흰 페인트 칠하고 검은 글씨 써서
반 팔뚝 굵기에 허리춤 길이만한 막대기 양쪽에 박혀
풀섶 위에 나뒹굴고 있는 안내문을 읽어 보니

이 바위에서라야 비로소 호룡곡산 계곡과 정상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단다.

정상을 향해 기어 오르는 계곡이 청룡을 연상케 하고
산 전체가 백호의 형상을 띠고 있어
이 곳 인당바위에서 조용히 귀기울이면
마치 청룡백호의 포효 소리가 귓전에 들릴 듯 하단다.

가만히 앉아서 그런 감흥에까지 젖고 빠져들 여유 없어
아쉬움을 남기고 발길을 재촉해 호룡곡산 정상에 오른다.

동으로는 인천항이 한 눈에 보이고
영종도 국제 공항은 코밑으로 내려 보인다.

서쪽으로는 황해바다가 이내 거대한 중국 대륙과 맞닿을 듯
수평선 너머로 끝없이 펼쳐 있고

남으로는 영흥도와 대부도가 길~게 누어 있다.
맑은 날에는 점점이 이어지는 섬들 사이로
서산반도가 아득히 눈에 들어올 듯 말듯 하단다.

북으로는 북한 땅 연백반도와 옹진반도가
아스라이 시야에 스친다는데 흐린 날이어선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무의도 북서쪽 방향으로
실미도가 애기섬처럼 붙어 있다.

실미도...
북파 공작 임무를 맡기기 위해
극비 훈련하는 특수부대가 있었다던 곳...

1971 년인가? 내가 군 복무 중일 적인데
훈련 받던 이들이 살인적 처우를 견디다 못해 집단 탈출하여
버스와 승객 볼모로 잡고 백주대낮 서울까지 진입해서
온 국민을 불안과 공포에 떨게 했던 사건으로
역사의 한 장면을 장식하고 있는 섬...

우울한 과거 역사를 상징하는 섬.....

춤추는 여인의 옷처럼 생겼다 해서 무의도
무의도에서 활시위를 당기면
화살이 닿을 거리만큼 가까이 있다 해서 실미도

만조 때라야 저 혼자 섬 되고
썰물일면 이내 무의도에 붙어버리는 곳

그 유명을 떨었던 실미도가 무의도 한 귀퉁이에
마치 갓난아기가 엄마 치맛자락 잡았다 놓쳤다
엎어져 안간힘 써가며 발버둥거리듯
천진스럽게 붙어 있다.

그러고보면 무의도 사람들
섬도 아닌 섬 섬 같지도 않은 섬
사람도 살지 않고 상대도 뭣도 안 되는 섬
그런 섬보다 어찌 우리 대 무의도를 몰라 주느냐!!!
섭섭하고 서러워 하시지나 않을런지.....
별 쓸데없는 생각 떠 올라
실성한 사람처럼 혼자서 피시~~~익
웃 는 다.

돗자리 펴고 신문지 깔고
각자 싸 들고 온 음식 내 놓는다.

빈 손으로 오면 그런대로
비~~~잉 둘러 앉기도 하고 서서 돌아다니기도 하고
내것네것 가리지 않고 내남적 없이.....

여의도 백상빌딩과 몇몇 건물에서
식당 가게 운영하시는 정 사장님과 사모님
내가 좋아하는 알타리무 잘 익은 김치 가지가지 밑반찬
남은 적 있어도 모자란 적 없이
오늘도 그렇게.....

일식집 운영하는 이 사장
후원회장 몫인 듯 언제나 고급 도시락 여나므 개
필요할 땐 스무 개고 백 개고
오늘은 몇 개???
뭐가 미안한지 고개 수그리며
세 개 밖에 안 싸 왔어~~~

밥 나누고 반찬 나누고 소주 한 잔 나누고
떡 나누고 과일 나누고 커피 한 잔 나누고

이 때 만큼 끈끈한 정 오가는 적 있을까???
이 순간 위해 모이고 오르고 땀 흘리기라고 한 듯이.....

짐 정리하고 쓰레기 담고
한 줄로 나란히 하산한다.

그냥 지나치기 못내 아쉬워
다시 한 번 인당바위에 올라 서서
펼쳐 있는 장관 비~잉 둘러 본다.

바로 밑을 내려다보니 현기증 날만큼 아찔한데
비구름 세 무리가 산허리 저 아래 걸려 있다.

백 여 걸음 내려가는데
안내판이 조금 전처럼 나뒹굴고 있어
이건 뭔가 하고 열 발짝 쯤 들어가 보니
잘 생긴 바위 하나가 비석처럼 꼿꼿이 서 있다.

저 바다가 없었다면 섬 아니었으면
육지 아무데나 가 있어도
이대로 놓아 두진 않았을 것을.....

비석을 삼았던지
방랑 시인 김삿갓 싯귀가 새겨 있던지.....

그 정도 만 아니다.
조금만 다듬으면 부처 모습 쏙 빼닮겠다.

바로 아래 반 발짝 앞으로
네모 반듯한 바위 하나

늙으신 부모님껠지 남편 자식에겔지
한 맺힌 사연 가슴깊이 박힌 선녀 하나가
지극 정성 올리느라 제단 상석용으로 빗어 놓은 듯
위치도 반듯하게 제자리 잡고 있다.

그래선가 ? 이름하여 부처바위


사람 하나 오갈 것밖에 안 되는 길
작은 오솔길

망망창창 황해바다 허리에 차고
해변따라 능선따라 울창한 숲 사이로
오르락내리락 꼬불꼬불 이름하여 환상의 길

하늘이 있고 산이 있고 바다가 있다.
오늘따라 구름과 촉촉히 내리는 비까지.....

해당화 접시꽃 노랭이꽃 개망초
온갖 꽃과 나비들 나무들 이름 모를 들풀 산풀들
산새들 풀벌레들.....

깍아지른 절벽 기암괴석
청룡의 몸통 되는 계곡이 있다.

소리가 있다.

빗소리 바람소리 떠도는 구름 소리
산허리에 걸려 있는 비구름 바위에 부딪치는 소리
나무에 걸려 갈라지고 흩어지고 사라져 가는 소리

나뭇잎 풀잎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
떨어져 너울거리고 낙엽 되어 마르고
썩어 다시 흙이 되는 소리

잎사귀 타고 또르르 굴러 내리는 빗방울 소리
이리 똑똑 저리 똑똑 잎사귀따라 뛰어내리고 떨어지고
낙엽 속으로 스며드는 소리
한데 모여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

나비 훨훨 나는 소리 풀벌레 우는 소리
산새들 지저귐 소리...

갈매기 떼지어 나는 소리
끄악끄악 우는 소리
파도 소리
뱃고동 소리

아 ~ ~ ~ ! ! !

환상의 숲
환상의 길
환상의 소리.....


비좁은 터널 빠져 나온 듯 갑자기 눈이 부시고
은빛 모래사장과 푸른 바다가 광활하게 펼쳐 진다.

전혀 딴 세상 다른 분위기...
하나개 해수욕장

반달형 드넓은 백사장하며 해맑은 바다
아득히 바라보이는 수평선
대단하겠다 싶을 해질녁 낙조 광경

환상의 길 아니어도
수도권 인근 일대에서
가장 빼어난 곳 아닐런지.....

백사장 위로 방갈로가 줄지어 늘어 세워져 있고
월드컵 열풍인지 김남일 선수 출신지를 상징해선지
바닷물 넘나드는 물가에
축구 골문이 양 편으로 세워져 있다.

온 종일 부슬부슬 내리는 비에도
뽀송뽀송 마른 모래 네모반듯 남아 있는
남의 거처 방갈로 밑으로 기어들어
턱괴고 앉아서 하늘 저 멀리
아득한 수평선을 물끄러미
바 라 본 다.

다시 마을버스 타고 선착장에 도착해서
줄지어 늘어선 조개구이 포장마차
전세 내듯 자리 차고 앉아
조개구이 산낙지 수원에서 올라온 화채 녹차로
뒷풀이 한다.

배 타고 다시 3 분 잠진도 선착장에서
관광버스에 몸을 싣는다.

아쉬움이 남아선가? 차창 밖으로
무의도를 한 눈에 둘러 보니
아직도 부슬부슬 내리는 비에
촉촉히 젖어 몸매 비치는
춤추는 여인의 치맛자락처럼
그렇게 그렇게
보 이 는 것 도 같 다.

가로수 대신인가?
부슬비에 젖은 해당화가
공항로 길따라

줄지어 무리지어
촉초~~~옥 하게

피 어 있 다.

 

 ( 2002 년 6 월 )

 

 

▽ ▽ ▽ ▽ ▽

 

윗 글 산행기를 쓴게
2002년 6월이니까 지금으로부터 꼭 6 년 전이다.


그러고 보니 2001년 늦가을 즈음인가보다.

 

'언젠가는 컴맹에서 벗어 나야겠는데...'

'이 나이에 타자연습을 꼭 해야 하나?...'
'안 하고 말아도 그만일텐데 공연히 사서 고민하는 건 아닌가?...'

 

이런저런 생각으로
괜한 스트레스에 얽매 오다가

 

'앞으로 남은 여생도 그리 짧은 건 아닐텐데...'
'남들 다 하는 거라면 어차피 해결하고 넘어 갈 수밖에 없겠지...'

...해서


밖에서는 새삼스럽게
엄두를 못 내고

우선 집안에서만
막내 녀석 중학교 용 컴퓨터 교과서를 교본으로 삼아

한 3 ~ 4 개월 틈나는대로
때로는 이렇게저렇게 틈을 내가며
질기게 붙들고 늘어져 봤다.

 

그러다보니까
실력(?)^^도 분 당 120 타 정도로 올라 있고

인터넷 뉴스를 검색해 보기도 하면서
가끔씩 바둑을 두기도 하고

때로는 남태평양 바다 한가운데로 나가
낚시를 즐기기도 했다.

 

이제 어느만큼
내공(?)이 쌓였겠거니... 하는 마음에

궁금하기도 하고
지루하지 않게 타자 속도를 늘릴 겸으로
주저주저하다가

daum 홈페이지에 올라 있는
뭔 대화방을 클릭했다.

 

그 때는 "ID" 가 뭔지
"다음 이름"은 뭐고 "닉"은 또 뭔지
어떻게 만드는 건지
도무지 알 턱 없었을 뿐 아니라

그냥 내 이름을 쓰라는 거겠거니 여기고
실명으로 들어 갔다.

 

지금 이 글 쓰는 싯점에서
곰곰 기억을 더듬어 봐도
어렴풋이 생각나는 게

"카페"란게 도대체 뭐 하는덴지도 모를 적이어서
카페 대화방은 아닌게 분명하고

실명으로 들어가게 되어 있던 것 같은데
어디를 어떻게 들어 갔는지는 모르겠다.

 

주저주저한 만큼이나
많이 긴장했던 것 같다.

들어가는 순간

 

"아무개 님 방가워요~~~오~~옹~!!!"
"지두여. 아무개 님 방가 방가 방가 ㅎㅎㅎㅎㅎ"
"나두여~~~어~~ㅓㅓㅓ 방가 방가 아무개 님 ㅋㅋㅋㅋㅋ"

 

도대체가 생전에
보지도 듣지도 못했거니와

뭔 뜻인지 알듯말듯한
글씨와 기호들이
순식간에 쏟아져 올라오면서

성과 이름이 실명으로 마구 떠오르는데


나는 그만

'으이쿠!!! 잘 못 들어 왔나부다!...'

하고는 당황한 나머지
얼른 빠져 나와 버렸다.

 

'가만 있자아..... 내가 뭔 잘못을 저지른거지???'

 

20 ~ 30 분 동안 놀랜 가슴 가라앉히며
이리저리 곰곰 생각한 끝에

나는 분위기를 살피고 파악할겸
그누무 말뽄새도 익힐겸...

 

한편으론 기왕에 들여다 본 거
뭐 하는 건지 알아나 보자...하고서는

온 몸과 마음을
바짝 초긴장 상태로 단단히 재무장하고

보무도 당당하게 다시 진격해 들어갔다.


그러자마자

"아무개 니~~~이~~~임~~ !!! 나갔다 또 들어 오셨네요~~~오~~옹^^*^^"
"좀 알까리한데..... 남님용? 뇨님용?????" ㅎㅎㅎ
"남님이넹... 크~~아~악!!! 49 년 생이시네??? 우히히히 @ @ @ @ @"
"엥??? 뭐 어때^^^^^ 아무개 니~임 같이 얘기해여어~~~ㅓㅓㅓ"

 

하는 말들과 기호들이
순식간에 쏟아져 떠오르는데

그 속도 또한
내가 그동안 쌓아 올린 내공에 비하면
가히 전광석화같기도 하고
번개가 스쳐가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너무 기가 막히고 주눅들어
그야말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으악! 뭣 모르고 훔쳐 볼려다가 이거 망신살 뻗히는 거 아닌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새벽부터 식은땀 흘리며 쩔쩔매고 있는데

그런 내 꼬락서니까지도
빤히 들여다보고 있기라도 하듯

 

"괜차나여^^**^^**^^"
"걍 아무 말이나 하셈ㅋㅋㅋㅋㅋ"

 

얼르고 달래는 말들이
간간이 떠 오른다.

 

그제서야 좀 살아 남을 수 있겠다 싶어
한숨 돌릴 수 있었다.

 

서울에서 물리치료사로 근무하는데
공휴일이라서 대전 본가에 있는 중이라는
송 아무 아가씨가 임시 방장을 맡고

영월에서 자영업과 리프트 강사를 한다는
노총각 님...

 

그 당시 55 연세에도 불구하고
젊은이들을 오히려 한 수 아래로 둘 정도로
나로하여금 그야말로
혀를 내 두를 수밖에 없게 했던
봄비여인 자칭 할머니...

 

미용사이실까?
앉아서 근무 좀 해 봤으면 좋겠다던 아가씨...

 

등등 6~8 분이
마치 전쟁터에서 콩복듯이 집중 사격하듯
숨쉴 틈 없이 이어가는 대화 속에서

나는 송 아무 방장의 하해같은 배려와
모든 분들의 양해 아래

'눈팅'만 하고 있어도 된다는
귀한 허락을 얻게 되었다.

 

하기사 어쩌다 글 한 줄 올려봤자
다른 님들은 이미 다 지나가버리고도
몇 구비구비 너머 딴 세상 얘기 하고 있을 때

 

멍청하니 뜬굼없고
봉창두들기는 말이나 뒤늦게 하고 있으니

 

그 님들 편에서야
한심하기 짝이 없을 뿐 아니라
답답하고 걸리적거리고
방해만 되는 꼬락서니일게 뻔했다.

 

두어 시간 동안 대화방에서
이 분들과 함께 할 수 있었던 경험이

내게는 참으로 충격적이었던 것은 물론이려니와
한편으론 고맙고 소중하기도 했다.

 

'아~~~!!! 세상이 이렇게 변해 있는 거로구나!!!.....'

 

지금도 나는 그때,
그 분위기가 지워지지 않고
머리 속을 맴돌고 있다.

 

이제 내공을 더욱 갈고 닦기 전에는
다시 들여다 볼 엄두가 나지 않는다.

 

번개같고 전광석화같은 대화방으로
진격해 들어가기 위해서

앞으로 얼마나 많은 훈련과
세월이 필요하겠는지.....

 


* * * 그 후 * * *

 

그러고서 몇 달 후
다음 사이트의 한 카페방에 가입했다.

 

그러다가 쥔장의 친절한 안내로
대화방에 쫓아 들어 가 보았는데...

 

역쉬...
번개같고 전광석화 같은 속도도 그러려니와

순간순간 동에서 서로...
백화점에서 쇼핑하다가 설악산 안면도로

수영장에서 멱 감다가 병원으로 상가집으로
종횡무진 오가는 순발력과 감각을

아둔하기 짝이없는 머리로는
도저히 따라 잡을 길 없다.

 

...해서 자판 속도야 그 정도로 자위삼고
태그를 좀 배워서 익힐려고 여기저기 기웃거려 보았다.

 

그동안 기초도 없고
중학교 교과서도 미처 다 익히지 못한 상태에서
글자의 변화와 간단한 테이블 정도 만들어 보고

자세한 소스만 있으면 모방해서 이미지와 문장 정도를
간단하게 바꾸어 넣을 수 있는 정도였을 때다.

 

그 즈음 그런 분위기 적에
차라리 본격적인 창작글로 카페 생활에 적응해 보자고
마음 단단히 먹고 처음으로 공을 들여 써 올린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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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민 화 / 고 은




지붕 위 박 몇덩이
실컷 익어

밤중에도 하얀 박 몇덩이
그렇게 넉넉한 사람이었다

최민화

핏대 세워 토론하는 화곡동 어느 집에서
그는 넉넉하게 입다물었다가
너털웃음으로 동지들의 불화를 풀어주었다.

그 밑창의 고통 따위 숨기고
허허허

예수를 믿는지 안 믿는지
아무런 흔적 없이 예수 믿어

이런 사람도 있다

잘 드는 칼보다 도끼보다
이를테면 용문산 용문사 천년의 은행나무 뿌리
불거져 나온 그런 세월인양

* 고 은 시집 < 만 인 보 > 11 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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