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몰로 주법이 애잔한 분위기를 낸다.
타레가는 기타의 현대적인 주법을 완성한 기타리스트로서 매우 중요한 인물이다.
그의 비르투오소적인 테크닉 때문에 ‘기타의 사라사테’라고 불리기도 할 정도였다.
그가 아니었으면 기타라는 악기는 여러 가지 한계로 인하여 지금과 같은 위치를 차지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는 1880년대부터 약 20여 년간, 서유럽의 예술음악들, 즉 바흐나 베토벤, 쇼팽 등이 작곡한 음악들을 기타로 편곡하였다.
그 과정에서 현대적인 주법들이 사용되었고, 새로운 음향 역시 만들어질 수 있었다.
그 덕분에 기타라는 악기의 레퍼토리는 매우 확장되었다.
게다가 그는 단순히 기타라는 악기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는 것 뿐 아니라,
자신의 고국인 스페인의 민속음악적 요소들을 기타 작품으로 만드는 데도 관심이 많았다.
그리고 그 중 가장 빛나는 산물이 바로 이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이다.
한 가난한 가정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타레가는 8세 때 맹인 기타리스트인 마누엘 곤잘레스(M.Gonzales)에게
최초로 기타지도를 받고, 이어 훌린안 아르카스(Fulian Arcas), 토마스 다마스(T.Damas)에게 사사하였다.
브리아나로 가서 기타교수 생활로 가난하게 생계를 유지하였다.
그러던 중 브리아나의 재벌을 만나 마드리드 국립음악원에 입학할 수 있었고
1875년에는 콩쿨에서 1등을 획득했으며 피아노, 바이올린 작곡에서도 우수한 성적을 얻었다.
그 후 타레가는 기타리스트로서 마드리드에 데뷔한 후 스페인은 물론 런던, 파리, 스위스 등을 연주여행 했으며,
기타의 사라사테라는 절찬을 받았다. 그는 기타에 관한 일관된 애정을 갖고 있었다.
처음에는 피아노를 공부한 그가 기타에 전념하게 된 것은 마드리드 음악원에 입학하고 부터였다.
기타의 어떤 모습도 타레가가 이 악기로부터 회의를 품도록 만들지 못했다.
바르셀로나, 마드리드 등 전국 주요도시의 순회 연주회에서 타레가 특유의 신선하고 독특한 연주를 하여 절찬을 받았다.
1881년에는 파리, 런던 등지에서 연주, 귀국 후에는 스페인 전역에 걸쳐 연주여행을 가졌고
결혼하여서는 바르셀로나에 정주하였다.
타레가는 겸손, 온화, 학구적인 성격의 소유자로 화려한 스테이지에서 멀리하는 한편
기타 예술의 탐구를 위한 엄격한 수도자 같은 생활을 하였다.
타레가가 이룬 많은 업적 가운데 일부는 기타로 하여금 그 소리가 더욱 맑게 울려 퍼지도록 한 것과
기타의 울림에 풍부한 색채감을 준 것, 그리하여 복잡한 악곡들도 기타로 연주할 수 있게 한 것 등이다.
이 모든 업적은 기타의 주법 개발과 기타의 디자인 혁신으로 인해 가능했다.
타레가는 음색의 가능성을 무한히 확장시키기 위해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모차르트, 하이든, 슈베르트, 베버 그리고 바그너까지 이르는 광범위한 편곡작품이 있다.
이 위대한 기타음악가의 작품에서 우리는 대단한 개성과 스페인의 철저한 향토성을 감지하게 된다.
그는 투리나(Turina), 토로바(Torroba), 팔라(Falla), 빌라로보스(VillaLobos)로 이어지는 스페인 음악의 첫주자였다.
마주르카의 두 제목은 여자의 이름을 나타내는데 그 특징은 틀림없이 음악에 비추어져 있는 듯싶다.
‘13개의 전주곡’, ‘알람브라의 회상’, ‘아라비아 기상곡’ 등 작곡, 편곡을 합해 300곡이상의 걸작이 있다.
타레가는 젊었을 때부터 지병인 안질로 계속 고생하다가 중풍꺼지 겹쳐서
1919년까지 고생하던 끝에 그해 12월 5일 바르셀로나에서 서거하였다.
손톱없이 연주할 수 있는 방법을 수개월간 연구끝에 개발하여
그후로는 바르셀로나에서의 마지막 연주회까지 손톱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타레가의 직계문하인 에밀리오 푸홀(E.Pujol 1886~ 스페인)은 타레가가 손톱 없이 연주하게 된 원인은
타레가 자신의 손톱에 결함도 있었지만, 그것보다도 손가락 살 이외의 불필요한 물질을 사용하여 탄주하는 것보다
신경과 직결될 수 있는 손가락 살을 사용함으로써 감정을 더욱 풍부하게 표현할 수 있었다고 전하고 있다.
타레가가 존재하지 않았던들 지금의 기타는 진로가 어떻게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타레가는 종래의 기타연주나 작곡에서 철저한 개혁을 하였으며 아구아도 주법을 떠나
기타연주 기법의 백지상태에서 기타가 표현할 수 있는 가능성을 극한까지 연구, 개척하였다.
왼손의 운지법, 오른손의 탄주법, 또는 음색, 음량의 풍부한 변화와 화음의 확충등,
수많은 업적은 우수한 문하생들에게 계승되어 20세기 기타 르네상스를 낳게 하였다.
"아마도 작곡가로서의 타레가는, 페르난도 소르의 위치에는 이르지 못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기타의 진짜 위대한 면을 발견해낸 것은 타레가라고 생각한다."
현재 타레가의 유해는 출생지인 카스텔론에 안장되어 있으며
프라아나에는 타레가 일생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기념상이 세워졌다.
13세기 중반에 세우기 시작하였고, 증축 및 개보수를 거쳐 지금의 모습을 약 14세기에 완성되었다.
유구한 역사와 아름다운 외관을 자랑하는 이 궁전은 나스르 왕조의 마지막 왕
보아브딜이 스페인의 페르난드 2세의 공격에 대항하지 않고 아프리카로 떠나면서 이슬람 왕조와의 연을 다하였다.
트레몰로 주법이 만들어내는 애잔한 분위기는 알람브라 궁전의 이러한 서글픈 역사를 잘 표현한다.
또한, 설에 불과하지만, 타레가가 어느 여인을 사랑하였으나 그 사랑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떠나게 된 여행길에 이 궁전을 보았다는 이야기 역시 곡의 애절한 느낌과 잘 맞아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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