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잔성당 (Kazan Cathedral, Казањска катедрала)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크렘린 성벽, 국립역사박물관, 부활의 문, 카잔성당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부활의 문, 모스크바시청 관공서, 카잔성당


1802년 붉은광장 북쪽의 카잔성당 (By Fedor Alekseev)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국립역사박물관, 부활의 문, 모스크바 시청사 (Provincial Board), 카잔 성당


카잔성당은 폴란드를 상대로 거둔 승전을 기념하여 '카잔의 성모'를 보존하기 위해서  

1633년에 ‘고움(Goum)’과 인접한 넓은 지역에 포자르스키(Pozarsky) 대공이 건축하였다. 

그러나 카잔 성당은 1936년 주변에 있던 수녀원 몇 채와 함께 사라졌다. 

크렘린 궁전은 삼각형 모양의 성곽에 둘러싸여 있으며, 성벽에 5개의 문과 29개의 탑을 증축하였다.

파괴된 카잔성당


독재자 스탈린은 1936년 붉은광장 군사 퍼레이드에 방해가 된다며 광장의 교회들을 없애 버리라고 명한다.

이때 건축가와 뜻 있는 사람들이 말려 성바실리 성당은 화를 면했지만 카잔성당은 폭파돼 사라지고 만다.


카잔성당 (Kazan Cathedral, Казањска катедрала)


1612년 폴란드의 침입을 막은 것을 자축하는 의미에서 세워진 뒤 

1936년에 러시아 군중집회 기간에 파괴되었다가 소련 해체 후 모스크바시 당국에 의해 

1993년에 건축가 바라노프스키가 이 성당을 재건하면서 원래의 모습을 찾게 되었다.

정면에 양파 돔을 하나만 세우고 왼쪽에 천막형 첨탑을 인 종루를 따로 올렸다.

3D 모델


삼면을 돌아가며 넓은 회랑을 둘러쳐 예배 공간과 종루를 연결했다.​

이층 외부에 끝이 뾰족한 코코슈니크 아치를 겹쳐 세워 꾸미고

파르스름하고 불그스레한 파스텔톤 칠을 해 ​은은하고 푸근한 아름다움을 뿜어낸다.


카잔성당과 니콜스카야 거리, 백화점 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백화점 굼, 크렘린 성벽, 러시아 국립박물관, 카잔성당



성당은 수즈달의 대공 포자르스키(Dimitry Pozharsky) 왕자가 의병대장 쿠즈마 미닌(Kuzma Minin)과 함께

1612년 모스크바를 침공한 폴란드-리투아니아 연합군을 물리친 뒤 

포자르스키가 사재를 내놓아 지은 목조 교회에서 출발한다.

성 바실리 대성당 앞에 쿠지마 미닌(Kuzma Minin)과 포자르스키(Dimitry Pozharsky) 동상이 있다.



폴란드 군으로부터 모스크바를 해방시킨 영웅 미닌(Minin)과 포자르스키(Pozharsky) 민병대에게

카잔성당의 성모 이콘(성상화)는 큰 의미를 지녔다. 

보차르스키는 전쟁 중에 여러 차례 '카잔의 성모'께 승전을 빌었고 

그 은총으로 폴란드 침공을 물리쳤다며 교회를 카잔의 성모에게 바쳤다.

1812년 나폴레옹 전쟁 때 러시아군 총사령관 미하일 쿠투조프가 상트페테르부르크 카잔성당에서 

카잔의 성모에게 경배하며 도움을 빌어  승리했다는 이야기와 비슷하다.


 '카잔의 성모' 이콘


모스크바 카잔성당 현관 위 정면 아치 벽에도 '카잔의 성모' 이콘을 모시고  있다.

원래 목조 카잔성당이 모스크바 대화재 때 불탄 뒤 1636년 석조 건물로 새로 지을 때 복제화를 모셨겠지만 

지금 있는 것은 그 복제화도 아니고 1993년 성당을 새로 지어 복원할 때 만든 것이다.


모스크바 독재자 스탈린은 1936년 붉은광장 군사 퍼레이드에 방해가 된다며 

광장의 교회들을 없애 버리라고 황당한 명령을 한다.

당시 건축가와 뜻있는 사람들이 말려 성 바실리 성당은 화를 면했지만 카잔성당은 폭파돼 사라지고 말았다.


 '카잔의 성모'


'카잔의 성모'는 1579년 모스크바 남동쪽 옛 타타르 도시 볼가 강변의 카잔 마을에 사는 

9세 소녀 마토로나가 꿈에서 성모의 계시를 받아 성모 마리아가 알려 주는 대로 찾아가 

땅속에서 발견하여 가져왔다는 이콘(성화)이다.


러시아 정교회에서는 성상화를 종교 작품으로만 여기지 않고 

구세주나 성모, 성인이 출현한 것으로 보고 숭배한다.

그 이콘 중에 가장 거룩하고 기적을 부르는 이콘으로 받드는 것이 '카잔의 성모'다.


러시아 정교회는 카잔의 성모를 기적의 힘을 주는 이콘으로 받들어 

발견된 장소에 테오토코스(성모) 수도원을 지어 이콘을 모신다.


그 후 카잔의 성모는 러시아를 수호하는 대표적 이콘이 되었고

상트 페테르부르크와 모스크바, 야로슬라프를 비롯한 여러 도시에 카잔의 성모 복제화를 모신 카잔성당이 들어선다.


1904년 카잔 테오토코스 수도원에 도둑이 들어 카잔의 성모 원본을 훔쳐 갔다.

도둑은 나중에 붙잡혔지만 값비싼 보석들로 장식한 황금 액자만 챙기고 성상화는 잘게 잘라 태워 버렸다고 진술한다.

이 일로 온 나라가 좌절과 공황에 빠져 앞으로 나라에 나쁜 일이 닥칠 거라고 걱정했는데 

결국 1905년 노동자들 시위에 군이 발포하는 유혈 사태가 벌어지고 러일전쟁에서 패한다.


카잔성당과 니콜스카야 거리


카잔성당은 성 바실리 성당 못지않게 귀중한 역사적 종교적 문화적 의미를 지니고 있어

소련방이 무너지고 맨처음 복원한 종교 시설이다.

옛 사진과 미술작품을 참고해 3년 공사 끝에 1993년 지금 건물을 완공했다.    

어차피 진품이 아니긴 해도 원래 이콘은 파괴되기 전 러시아 정교회 총주교 교회인

모스크바 옐로코보 성당으로 옮겨 지금도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카잔성당의 남쪽 부분

비록 복원한 새 건물이긴 하지만 카잔성당은 코코슈니크 아치를 잘 구사한 건축물로 꼽힌다.





카잔성당 야경


카잔성당 내부




카잔성당 제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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