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렘 (Harem) 입구는 제2 중정 서쪽, 정의의 탑(Tower of Justice) 아래에 있다.
토프카프 궁전을 방문한 이상 놓쳐서는 안되는 궁전의 하이라이트이다.




하렘(harem) 출입구


톱카프 궁전 제2 정원 한쪽에 있는 하렘의 입구 수레의 문.

오스만제국은 규모가 크고 관리가 잘된 하렘(harem)으로도 유명하다.


술탄은 왕비를 비롯해 많은 후궁을 두었는데, 모든 여성들 혹은 그들이 생활한 규방을 흔히 하렘이라 불렀다.
하렘은 술탄의 모후가 통제했는데, 모후 아래에 왕자를 생산한 왕비들이 있었고,
다시 그 아래에 후궁들과 젊은 여성들이 있었으며, 여성 노예도 있었다.


놀라운 일은 아니지만, 술레이만 1세가 죽고 나서 제국이 흔들리면서 하렘은 정치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이전에 하렘은 별다른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고, 또한 고립된 곳에서 생활했다.


하렘의 수장인 모후는 궁궐의 실제 관리자로서 하렘 여성들과 술탄의 관계를 통제하고,
메카와 메디나에 보낼 종교기금도 관리했다.


초기에는 코카서스 출신의 백인 환관들이 하렘을 수비했으나 16세기 말에 이르러
나일강 상류 출신의 흑인 환관들이 하렘을 지켰다.
흑인 환관들은 이스탄불로 실려 오는 도중에 거세되었다고 한다.


보통 궁궐 내의 후궁이나 가정의 내실을 가리킨다.
하렘은 금단(禁斷)의 장소를 의미하는 아랍어 하림(harīm)이 터키어풍으로 변한 말이다.


이슬람의 풍습 ·관습에는 아라비아의 것이 계승된 것이 많은데,
여성이 베일로 얼굴이나 기타 다른 부분을 덮는 풍습도 이슬람 이전부터 있었다.


그러나 하렘은 특히 이슬람시대부터 엄격하게 지켜져 남녀간의 풍기를 규제하였다.
《코란》에도 이슬람교도의 예언자(무함마드)의 집, 특히 아내들에 대한 수칙이 기록되어 있다.


예언자의 아내들에게 무언가 물을 경우에는 장막 뒤에서 해야 하고,
예언자의 아내들이 맨얼굴을 보여도 죄가 되지 않는 경우는 그들의 아버지나 자녀들,
형제 자매, 가까운 친척 및 같은 여신자들과 자신의 노예에게 뿐이다.


이것은 예언자의 아내들뿐만 아니라 이슬람사회 일반에까지 미쳤다.
이러한 가르침을 바탕으로 중세 이슬람 사회의 여성들은 하렘에서 격리된 생활을 하면서
가정이나 종교 행사에 참여하고 하마무(목욕탕)에 가는 것 외에는 외출을 피하였다.


하렘은 왕후귀족 ·부호의 가정에서 두드러졌는데, 환관으로 하여금 하렘의 여성을 돌보게 하거나 단속토록 했다.
환관은 대개 흑인이나 백인 노예였는데 거세수술(去勢手術)은 유대교도 또는 그리스도교도가 담당했다.


이러한 하렘의 풍습은 오스만투르크 제국을 방문한 유럽인이나

《천일야화(千一夜話)》 등의 작품을 통해 세계에 알려졌다.


1909년 오스만제국의 술탄 압둘하미트 2세가 퇴위하자 하렘에 있던 여성들은

가족들에게 되돌아가고 하렘은 사실상 폐쇄되었다.

하렘(harem) 출입구. 톱카프 궁전 내 금남의 구역인 하렘.


술탄과 왕자를 제외한 그 어떤 남자의 출입도 허락되지 않았던 하렘은

술탄의 여자들과 어머니, 가까운 친족들만 지내는 곳이었다.


하렘에서는 새로 들어온 여인들의 교육을 담당 했고, 거세된 흑인 내시들이 시중을 들었다.
하렘에는 300개 이상의 방과 9개의 목욕탕, 모스크, 병원, 학교, 도서관, 부엌, 창고, 정원, 황제의 홀,

지하 감옥까지 갖춰져 있었고 300~500여 명이 살았다고 한다.


폐쇄적 삶을 사는 왕의 여인들의 공간으로 내부는 굉장히 화려했다고 한다.
대리석으로 장식된 공중목욕탕인 하맘은 수도꼭지까지 황금빛이었을 정도라고.


1909년 오스만 제국의 마지막 술탄인 압둘하미트 2세가 퇴임하면서

자연스레 하렘도 폐쇄되었다고 한다.


하렘은 왕의 여자들이 기거하는 곳이다.
왕의 어머니도 이 곳에 살았고 왕의 간택을 받을 궁녀들도 여기 살았다.


오스만제국은 규모가 크고 관리가 잘된 하렘(harem)으로도 유명하다.

술탄은 왕비를 비롯해 많은 후궁을 두었는데,
모든 여성들 혹은 그들이 생활한 규방을 흔히 하렘이라 불렀다.


하렘은 술탄의 모후가 통제했는데, 모후 아래에 왕자를 생산한 왕비들이 있었고,
다시 그 아래에 후궁들과 젊은 여성들이 있었으며, 여성 노예도 있었다.


놀라운 일은 아니지만, 술레이만 1세가 죽고 나서 제국이 흔들리면서 하렘은 정치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이전에 하렘은 별다른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고, 또한 고립된 곳에서 생활했다.


하렘의 수장인 모후는 궁궐의 실제 관리자로서 하렘 여성들과 술탄의 관계를 통제하고,
메카와 메디나에 보낼 종교기금도 관리했다.


초기에는 코카서스 출신의 백인 환관들이 하렘을 수비했으나 16세기 말에 이르러

나일강 상류 출신의 흑인 환관들이 하렘을 지켰다.
흑인 환관들은 이스탄불로 실려 오는 도중에 거세되었다고 한다.


The Gate of Carts entrance. 제2 중정에 위치한 하렘 입구.

원래 물자를 수송하거나 하렘의 여인들을 태운 마차가 드나들던 곳이다.


하렘(harem) 출입구. 톱카프 궁전 내 금남의 구역인 하렘.


보통 궁궐 내의 후궁이나 가정의 내실을 가리킨다.
하렘은 금단(禁斷)의 장소를 의미하는 아랍어 하림(harīm)이 터키어풍으로 변한 말이다.


이슬람의 풍습 ·관습에는 아라비아의 것이 계승된 것이 많은데,
여성이 베일로 얼굴이나 기타 다른 부분을 덮는 풍습도 이슬람 이전부터 있었다.


그러나 하렘은 특히 이슬람시대부터 엄격하게 지켜져 남녀간의 풍기를 규제하였다.

《코란》에도 이슬람교도의 예언자(무함마드)의 집, 특히 아내들에 대한 수칙이 기록되어 있다.


예언자의 아내들에게 무언가 물을 경우에는 장막 뒤에서 해야 하고,
예언자의 아내들이 맨얼굴을 보여도 죄가 되지 않는 경우는 그들의 아버지나 자녀들,
형제 자매, 가까운 친척 및 같은 여신자들과 자신의 노예에게 뿐이다.


이것은 예언자의 아내들뿐만 아니라 이슬람사회 일반에까지 미쳤다.
이러한 가르침을 바탕으로 중세 이슬람 사회의 여성들은 하렘에서 격리된 생활을 하면서
가정이나 종교 행사에 참여하고 하마무(목욕탕)에 가는 것 외에는 외출을 피하였다.


내시의 뜰 (The Court of Eunuchs)


내시의 뜰 (The Court of Eunuchs)


높은 담벼락 아래에 있는 하렘으로 내려가는 길


공간이 왠지 폐쇄적이고 답답해 보인다.

서양 사람들은 하렘을 매우 방탕하고 음란한 곳으로 생각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고 한다.


왕의 여자가 될만한 수양을 기르기 위해 여자들을 교육하기도 했고

교육이 끝난 후 본인이 원하면 하렘을 나갈 수도 있었다.


하렘에 들어오는 여자들은 오스만제국인이 아니었는데

왕의 외척 세력이 커지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입구에 있는 주방 겸 내시들이 일을 하던 공간.


창문 하나하나마다 창살로 덮여 있는 하렘 내부.


하렘 입구쪽에 여인들의 시중을 들던 내시들의 모습을 재현해 놓았다.


하렘 입구쪽 내시들의 공간 이슬람 양식 천장


내시들의 공간 이슬람 양식의 천장.


내시의 뜰 (The Court of Eunuchs)


흑인 내시들이 주로 머물던 공간으로 그들의 주된 임무는 하렘 입구를 지키고, 출입하는 사람을 확인하고,
출입이 허용되지 않는 사람이 들어왔는지를 파악하는 것이었다고.


주변에 흑인 내시들의 기숙사와 왕자들의 학교가 있었고

내시들을 위한 교육시설도 갖추고 있었다고 한다.


내시의 뜰 (The Court of Eunuchs)


내시의 경우 중앙아프리카 출신의 흑인 아이들과 아바시니아(에티오피아의 옛이름) 출신의 어린이들 중에서
선발한 다음 엄격한 검증 과정을 거치고 교육을 받은 후 하렘에 배치되었다고.


내시의 뜰 (The Court of Eunuchs)





하렘(Harem)으로 들어가는 메인 게이트


하렘(Harem)으로 들어가는 메인 게이트


내시의 뜰을 지나면 하렘으로 가는 메인 게이트가 나온다.
하렘의 메인 게이트로 하렘 내 세 곳의 주요 장소와 연결되는 문이다.


아치가 있는 돔형 현관이라고 보면 되는데 왼쪽에 있는 문은 첩과 아내들이 있는 곳,
중앙의 문은 어머니가 지내는 곳, 오른쪽 문은 술탄의 개인 거처와 연결된다고.


이렇게 생긴 길은 황제와 황제 어머니, 황후만이 걸었다고 한다.


Hall of the Ablution Fountain


푸른 타일로 장식된 통로


푸른 타일 장식이 매우 아름답다.


여기에도 사하다가 써 있다.


푸른 타일 장식이 매우 아름답다.


İznik tiles decorate the interior



술탄만이 걸을 수 있었던 길.


하렘 복도 내부에 걸려 있는 호화찬란한 초대형 거울


The Golden Road


하렘 내부에서 메인 로드 역할을 한 황금의 길(Altın yol)의 모습.
이 길을 중심으로 좌우로 하렘 내 직급에 따라 여인들의 방이 배치되었으며,
하렘의 입구에는 환관장의 방이 있었다


The Courtyard of the Eunuchs


Courtyard of the Apartments of the Queen Mother (Valide Sultan Dairesi)
가운데 도로는 황제의 길


Courtyard of the Concubines


이제 후궁의 복도(Corridor of the Concubines)로.


이 복도의 돌 위에 빈 접시를 두면 내시들이 후궁과 겹치지 않는 시간대에 와서 치웠다고.

복도는 창이 작고 창살로 덮여 있어 어두운데다가 좁은 길이 미로처럼 얽혀 있어
자유롭게 출입할 수 없었던 공간이었음이 조금은 실감이 난다.



술탄의 어머니인 '발리테'가 기거했던 곳.


술탄의 어머니인 '발리테'가 기거했던 곳.


술탄의 어머니인 '발리테'가 기거했던 곳.


술탄의 어머니인 '발리테'가 기거했던 곳.



술탄의 어머니인 '발리테'가 기거했던 곳.


술탄과 어머니가 차를 마시는 테이블


Exhibit representing the Queen Mother and her attendants in her apartments


술탄과 어머니가 차를 마시는 테이블


술탄의 어머니인 '발리테'가 기거했던 곳.


첫 번째 방은 왕의 어머니인 '발리테'가 기거했던 곳이다.


술탄의 어머니인 '발리테'가 기거했던 곳이다.


술탄의 어머니인 '발리테'가 기거했던 곳.


술탄의 어머니인 '발리테'가 기거했던 곳.


술탄의 어머니인 '발리테'가 기거했던 곳.


안내문


술탄(왕)은 매일 아침 어머니의 방을 찾아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눴다.
이때 어머니는 술탄에게 짝지어 줄 여자를 골라 차를 내어 오도록 시켰다고 한다.


여자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른 여자를 요구하고 마음에 들면

그 여자가 계속 차를 내 왔으면 좋겠다는 식으로 어필했단다.


화려한 천장 장식.
2층이 술탄의 어머니 침실인데 들어갈 수 없게 되어 있다.


술탄의 방으로 통하는 하렘의 복도


술탄의 방으로 통하는 하렘의 복도


술탄의 방으로 통하는 하렘의 복도


술탄의 방으로 통하는 하렘의 복도



Baths of the Sultan with gilded grill

술탄의 전용 목욕실


술탄의 방 (Imperial Hall).  술탄의 방으로 통하는 하렘의 복도를 지나면 화려한 방이 나온다.


정복자 메흐메트가 콘스탄티노플 정복 후 서거(1481년)할 때까지 이 궁전에 기거했으며
그 이후 술탄들은 이곳에 살다가 19세기에 보스포루스 해협 인근에 새로 건축한 아름다운 유럽식 궁전으로 이주했다.

술탄의 방 (Imperial Hall)


Imperial Hall with the throne of the sultan


각종 연회 및 축하연과 중요한 의식을 이곳에서 개최했다고 한다.
수세기에 걸친 보수 및 수리를 거쳐 현재의 모습으로 남아 있다고.



술탄의 방 (Imperial Hall)




술탄의 방 (Imperial Hall) 화려한 천장 장식.





세면대


푸른색 타일로 꾸며진 술탄의 방 (Imperial Hall)





후궁들이 술탄의 방 (Imperial Hall) 연회를 숨어서 지켜보던 방


술탄의 방 (Imperial Hall)에 시계도 있다.


터키 관광지를 돌아 다니다 보면 멈춰진 시계를 많이 볼 수 있다.

그런데 대부분 9시 5분을 가리키고 있다.


가이드의 말에 따르면 터키 국민들이 가장 존경하는 독립 영웅이자 초대 대통령

아타튀르크가 죽은 시각이 9시 5분이라고 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관광지 시계를 거기에 맞춰 멈춰 있게 했다고 한다.


푸른 타일은 원래 터키의 지역 특산물이었다.


유럽 사람들도 이 푸른 타일에 매료되어 많이 사 가기도 했는데

나중에는 네델란드 등에서 이 기술을 많이 따라 잡았다고 한다.
술탄의 방에 있는 파란 타일도 네델란드 산이라고 한다.

술탄의 방 (Imperial Hall) 거울
술탄의 방에는 큰 거울이 하나 걸려 있는데 거울에 반사되게 찍으면 돔까지 한 프레임에 찍을 수가 있다고 한다.

푸른 복도를 지나




다음 방 술탄 무라드 3세의 방 안내


다음 방은 술탄 무라드 3세의 방인데 방 주인보다 이 방을 만든 건축가 미마르 시난이 더 유명하다.
미마르 시난은 오스만 제국의 전성기에 활동한 건축가이며 미켈란젤로도 그를 존경했다고 한다.


아야 소피아가 무너지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것도 미마르 시난의 보수 공사 때문이라고 한다.

그 외 술레마니에 모스크, 셀리미예 모스크 등을 건축하여 큰 돔돠 첨탑을 특색으로 하는 오스만 특유의 양식을 완성시켰다.


The Fruit Room with painted walls


술탄의 개인 처소와 전용 목욕탕인 하맘 사이에 위치한 임페리얼 홀은 하렘에서 두 번째로 큰 돔형 공간이며
톱카프 궁전에 남아 있는 문서와 그림 등을 통해서 유추해 봤을 때 오스만 제국의 12대 술탄인
술탄 무라드 3세 때인 1580년대에 만들어졌다고 추측하고 있다.


Interior of the Circumcision Room






The fountain of the Privy Chamber of Murat III






Stained-glass windows decorate the interior


이 방은 술탄 무라드 3세가 공적 업무도 보고 사생활도 즐기던 곳인데 오스만 건축 중 가장 뛰어난 곳이라고 한다.


아름답고 웅장한 돔.


술탄 무라드 3세 (Privy Room of Murad Ⅲ)의 방


술탄 무라드 3세의 개인 거처로 1579년에 당대 최고의 건축가 Sinan이 디자인 하고 건축했다고 한다.
16세기에 유행했던 이즈닉 타일로 덮여 있다.


Audience given by Ahmed III in the Audience Chamber, painting by Jean-Baptiste Vanmour (September 1727)


술탄 무라드 3세 (Privy Room of Murad Ⅲ)의 방


Ottoman "arma" symbol (military)


Photograph of the last Sultan Mehmed VI

오스만 투르크 마지막 술탄 메흐메드 6세


한때 유럽을 떨게 했던 오스만투르크 제국에도 황혼이 찾아왔다.
1299년 창건, 메메드 2세, 셀림 1세, 술레이만 1세를 거치며 지중해를 장악하는 등
전성기를 구가했지만 16세기 후반 이후 쇠퇴기에 접어들었고 제1차 세계대전 때
영국과 동맹국 등 유럽 열강들에 의해 영토를 유린 당하며 결정적 타격을 입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1918년 즉위한 메메드 6세(1861~1926)는 36명의 황제 중 마지막 황제로
제국의 종말을 지켜볼 수 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그는 유럽 열강에 분노한 민족주의자 무스타파 케말이 이끄는 '투르크 대국민회의'가
1922년 황제가 겸임하던 술탄(황제)과 칼리프(이슬람교 최고 지도자)를 분리하고 술탄제를 폐지함으로써 폐위됐다.


그의 폐위와 함께 623년 역사의 오스만투르크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무스타파 케말은 다음해 터키 공화국을 수립하고 초대 대통령이 되었다.


메메드 6세는 말타로 추방됐다가 이탈리아에서 말년을 보냈으며 휴양지 산레모에서 66세를 일기로 숨을 거뒀다.
황제 집안의 핏줄을 타고 났지만 그는 평범한 능력의 소유자였고 비범했다 해도
역사의 거대한 물결을 거스를 수 없었다.



메흐메트 6세


압둘 하미드 2세인 '붉은 술탄' 의 뒤를 이은 이름만인 술탄 자리는 이복 동생인 와히뎃딘(Vahideddin)이었다.
이 사람이 메흐메트 6세(Mehmed VI; 1861∼1926)이다.


아버지인 압둘 메지드 1세는 1861년 6월 38세 나이로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으나, 35명의 자식을 두었었고,
마지막 술탄이 된 메흐메트 6세는 아버지가 죽기 4개월 전인 1861년 2월에 태어난 것이다.
메흐메트 6세는 한동아나 돌마바흐체 궁전에 살았으나, 이을드즈 궁전으로 거처를 옮겼다.


케말의 투쟁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그리스의 협상국은 오스만제국을 완전 해체하려고 전쟁 중에 비밀 조약을 맺은 상태였다.
1919년 5월 15일 협상국을 등에 업은 그리스 군은 '대 비잔틴 부활'을 내세워
에게해에 펼쳐진 옛날 그리스인들 비잔틴 제국의 재건을 시도했다.


아나톨리아 각 지역에는 많은 그리스인들이 살고 있기 때문에 이미 그리스 영토라고 생각했다.
이것은 엔웨르 파샤의 '범튀라니즘'과도 통하는 사상이다.
그리스 군은 영국의 지원을 얻어 이즈미르에 상륙하여 점령지를 확장하고자 했다.


이 때 전쟁 영웅인 무스타팔 케말이라는 장군이 북부 지방군 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관례에 따라 취임인사를 하기 위하여 이을드즈 궁전으로 향했다.
압둘 하미드 2세가 세운 추밀원 2층에서 무스타파 케말은 메흐메트 6세와 만난 것이다.


1919년 5월 16일 케말은 이을드즈 궁전을 뒤로하고, 흑해의 삼순항으로 떠났다.
케말이 탄 배가 이스탄불을 출발한 몇 시간 후, 메흐메트 6세는 경찰 측으로부터 무스타파 케발에 관한 보고서를 들었다.


케말이 아나톨리아의 혁명 지하 조직과 연락을 취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미 출발한 케말에 대해 메흐메트 6세는 항만관리 당국에 체포령을 내렸다.


케말이 제9군 감찰관의 자격으로 삼순항에 상륙한 것은 5월 19일로 혁명은 이날부터 시작되었다.
현재 이 날은 10일 후인 5월 29일의 메흐메트의 정복자의 날보다 훨씬 더 중요한 공화국의 기념일이 되었다.


삼순에 상륙한 날은 비바람이 불었다고 한다.
술탄은 체포령을 내렸으나 아무도 이것을 실행하려 하지 않았다.


영국 점령군은 술탄의 명령에는 따르지 않고, 그저 케말을 미행하는데 그쳤다.
케말은 터키군이 와해된 상태에서 연합국과 이스탄불 정부에게 투쟁을 선언하고,
민병대를 조직, 무장 투쟁 준비에 착수하였다.


종전 협상으로 이스탄불 일부를 점령하고 있던 협상국은 1920년 3월에는 점령지를 확대하고,
튀르크 민족주의자들을 체포하였다.


연합국의 괴뢰가 된 이스탄불의 술탄 정부에 맞서 케말은 1920년 4월 앙카라(Ankara)에서 '대국민회의'를 결성하였다.
이 의회는 술탄이 이교도의 손에 있다고 단정하고 외세를 축출하는 것이 이슬람교도의 의무라고 선언했다.


술탄의 축출과 투르크 제국의 멸망


1920년 8월 10일 세브르(Sevre) 조약을 오스만 제국의 술탄에 강요하여 체결하였다.
내용은 오스만제국의 영토 가운데 아르메니아와 히자즈는 독립시키고,
메소포타미아와 팔레스타인은 영국의 위임 통치 하에, 시리아는 프랑스의 위임통치 하에 두고,
이집트는 영국의 보호국으로 삼는다는 것이었다.


더구나 아르메니아는 아나톨리아의 광대한 지역을 차지하며,

그리스는 에게해의 섬들과 이즈미르 지역을 차지하는 것이었다.


이 조약이 실행되면 오스만제국은 이스탄불 일대와

아나톨리아의 일부만 영토로 하게 되어 사실상 망국의 길을 걷는 것이었다.


이 가혹한 조약의 체결은 어느 정도 예상된 것이었으며 튀르크 국민의 술탄에 대한 반감이 높아지게 되었다.
대국민의회는 1921년 1월 기본법을 제정하고 주권은 국민에게 있음을 선언하였다.


국명은 투르키예(Turkiye, 영어로는 Turkey)로 하고 국가 운영은 집행위원회가 하도록 하였다.
그리스 군이 이즈미르를 거점으로 앙카라까지 진격해 오자

1921년 8월 케말이 지휘하는 민병대는 사카리아(Sakarya) 전투에서 격퇴하였다.


1922년 9월에는 '바다로 쓸어 넣기 작전'을 실시하여

그리스 군을 이즈미르에서 축출하고, 문자 그대로 바다로 쓸어 넣었다.


그리스 군 포로는 6만이 넘었다.

1922년 11월 1일 대국민회의는 술탄제도 폐지를 결의하였다.


오스만 제국의 마지막 황제 메흐메트 6세는 11월 17일 돌마바체 궁전에서 영국 배를 타고 영국으로 망명했다. 
이로서 오스만 투르크 제국은 멸망했다.


The Courtyard of the Favourites


The Courtyard of the Favourites


The Courtyard of the Favourites


The Courtyard of the Favourites


The Courtyard of the Favourites


Outside view of the Twin Kiosk


Open recess (iwan) of the Yerevan Kiosk


View towards Baghdad Kiosk


Terrace Kiosk


Tower of the Head Tutor / Chamber of the Chief Physician


Grand Kiosk


Terrace Mosque


Upper terrace with fountain, İftar bower and Baghdad Kiosk


Panoramic view of the Marmara Sea from the palace


2006. 3. 13. 톱카프 궁전 방문 인증샷.


톱카프 궁전 정원에서 바라보는 마르마라 해의 아름다운 광경

오른쪽 아래로는 톱카프 궁전을 둘러싸고 있는 테오도시우스 성벽이 살짝 보인다.


[영상 KBS 걸어서 세계속으로] 톱카프 궁전 (Topkapi Palace)



참조 ; https://ljhoi.blog.me/221363753799
https://blog.naver.com/fightclub/221380539496
https://blog.naver.com/ahnys0/221229580348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387694&cid=43079&categoryId=43079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160465&cid=40942&categoryId=31600
https://ko.wikipedia.org/wiki/%ED%86%B1%EC%B9%B4%ED%94%84_%EA%B6%81%EC%A0%84

https://en.wikipedia.org/wiki/Topkap%C4%B1_Palace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lsw24001&logNo=221340043579

http://blog.naver.com/lsw24001/221340933281 

https://lonelyplanet.co.kr/guide/cities/istanbul/spots/topkai-palace#btn-mapClose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lsw24001&logNo=221340933281&parentCategoryNo=&categoryNo=&viewDate=&isShowPopularPosts=false&from=postView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lsw24001&logNo=221340043579
https://en.wikipedia.org/wiki/Topkap%C4%B1_Palace

https://blog.naver.com/ahslxj42/220985008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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