톱카프 궁전(Topkapı Sarayı)


톱카프 궁전(Topkapı Sarayı)은 15세기 중순부터 19세기 중순까지
약 400년 동안 오스만 제국의 군주가 거주한 궁전이다.


이스탄불 구시가지가 있는 반도, 보스포루스 해협과 마르마라 해,
금각만이 합류하는 지점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세워져 있다.


현재는 박물관으로 이용 중이다. 총 면적은 70만 평이며, 벽 길이만도 5km나 된다.
톱카프 궁전은 유럽의 다른 궁전과는 달리 화려하지 않은 것이 특색이다.


그러나 건축학적인 면에서 관심을 두고 볼 것이 많고,

특히 자기, 무기, 직물, 보석 등 볼거리가 많은 곳이다.


구글 지도


톱카프 궁전은 터키 이스탄불 구성곽 동쪽에 위치해 있다.
메흐메트 2세 시기인 1478년에 세워져 1856년, 술탄 압뒬메지트가 돌마바흐체 궁전으로 이궁하기까지
약 300여년간 오스만 제국의 정궁이자 디완 회의의 의사당이었으며
제국의 인재들을 길러내는 고등교육기관이었다.


톱카프 궁전 주변 모형도


또한 궁전 제1정원에는 조폐소(Darphane)가 있어서 제국의 화폐를 찍어내기도 했으며,
재무부 건물에는 보물관이 있어 황실의 보물과 기록을 보존했다.


이후 1922년에 오스만 제국이 멸망하고 나서 수립된 터키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된
케말 아타튀르크가 1924년 4월 3일에 톱카프 궁전을 박물관으로 공개해 오늘날에 이른다.

톱카프 궁전 주변 모형도


전체 부지면적은 약 70만㎡로 도중에 여러 차례 증축과 개축이 이루어졌지만
오스만 제국시기에 세워진 각종 모스크, 학교, 목욕탕, 상가, 대상들의 숙소 등의 공공건축에 비하면
정말로 소박한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유럽 각국의 궁전들과 비교해 보아도
전성기 오스만 제국의 위용에 비해 터무니 없을 정도로 작고 단촐하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톱카프 궁전 내 카페에 전시된 톱카프 궁전 전체 풍경 사진


이 작은 궁전 주인은 세계 수준의 보물 컬렉션을 보유하고 전 유럽을 짓밟았다는게 첫 번째 함정이라면
그 작은 궁전이 중국의 자금성이랑 비슷하다는 것이 두 번째 함정이다.


궁의 면적을 단순 비교하기 위해 사례를 들자면,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조의 궁궐인
빈의 쇤브룬 궁의 전체 면적이 약 186 헥타르(186만 제곱미터)이다.


The Seraglio Point, 1838


군사상의 이유로 공터로 남아 있었으며 군대가 주둔하고 있었다.
이후 콘스탄티누스 1세 시기에 로마 제국이 비잔티움으로 천도하자 이곳에는 바실리카와 지하 저수조가 들어섰고
지금의 궁전 위치에서 서남쪽으로 조금 떨어진 위치에 부콜레온 궁전(Βουκολέων)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톱카프 궁전 자리에는 지금까지 남아있는 성 이리니 성당(Aya İrini)을 제외하고는
군사상의 이유로 공터로 남아 있었으며 군대가 주둔하고 있었다.


Partial view of Seraglio Point with Topkapı Palace and Incirli Kiosk, 1559


원래 동로마 제국의 황제가 거주하던 정궁은 현재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 부지에 존재하던
콘스탄티노플 대궁전(Μέγα Παλάτιον/Büyük Saray)으로 330년 콘스탄티노플 천도부터
1081년 콤니노스 왕조 설립까지 종종 다른 궁전을 이용한 기간을 제외하면 690년 넘게 정궁으로 이용되었다.


하지만 콤니노스 왕조 이후 동로마 황제는 거처를 별궁으로 쓰던
블라헤르네 궁전(Βλαχέρναις Παλάτιον)으로 완전히 옮겼다.


그후 대궁전은 버려졌고 1204년 제 4차 십자군 이후 도시를 장악한 라틴 제국은
황제의 거처로 부콜레온 궁전을 쓰면서 블라헤르네 궁전도 버려지게 된다.


톱카프 궁전 모형도


1261년 팔레올로고스 왕조가 콘스탄티노플을 수복하면서 라틴 제국을 통치하던 십자군은 달아날 수 밖에 없었는데
이때 대궁전과 블라헤르네 궁전의 보물들을 털어가면서 크게 훼손되었지만
팔레올로고스 왕조는 블라헤르네 궁전은 수리해 정궁으로 썼으나
대궁전은 여전히 버려져 감옥으로 쓰는 신세가 되었고
라틴 제국이 쓰던 부콜레온 궁전 또한 버려지면서 훼손 상태가 심해진다.

톱카프 궁전 내에 전시된 톱카프 궁전의 모형


1453년 콘스탄티노폴리스 함락 때 블라헤르네 궁전마저 전란과 약탈과 방화로 파괴되어버리자
도시를 장악한 메흐메트 2세는 지금의 이스탄불 대학 자리에 임시 거처로 목조 궁전을 세우고 그곳에서 거주했는데,
일화에 따르면 톱카프 궁전 자리를 둘러본 메흐메트 2세가 북쪽으로는 갈라타 탑이 보이고,
동쪽으로는 보스포로스 해협 건너 위스퀴다르가 보이고,
서북쪽으로는 금각만이 보이는 경치에 반해 이곳에 궁전을 세우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동로마 제국 시절에는 공터였던 부지에 궁전이 들어섰다.
처음에는 이전에 세운 목조궁전은 구 궁전(Eski Saray), 새로 세운 이 궁전은 신 궁전(Yeni Saray)이라고 부르다가,
궁전의 정문에 대포 두 문을 배치한 것을 보고 대포 문(Topkapı)이라는 이름을 창안해 오늘날까지 이어졌다고 전한다.

보스포루스 해협에서 바라보는 톱카프 궁전


톱카프 궁전은 크게 4개의 중정(Avlu)으로 구분되는데,
예니체리 마당(Yeniçeri Meydanı)이라는 별칭이 붙어있는 제1중정은 황제의 문(Bâb-ı Hümâyun)을 통해 입장하며,
내부에는 예니체리들의 주거지와 훈련장, 무기고, 제국 조폐소, 병원,
황실이 사용할 일상용구들을 제조하는 공방 매표소등이 들어서 있었다.


이곳은 일반 백성들도 자유롭게 들어갈 수 있었는데,
특히 매주 금요일날 아야 소피아 사원으로 행진하는 황제를 만나기 위해 군중들이 대기하곤 했다.
이때 백성들은 자유롭게 황제에게 청원할 수 있었으며,
황제는 백성들과 직접 접촉할 수 있는 몇 안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한편 이곳에 위치한 성 이리니 성당은 1846년 궁중 보물 박물관으로 일반인에게 공개되기도 했다.
박물관이 다른 곳으로 이전된 1978년부터 각종 콘서트나 축제를 위한 장소로 활용되고 있다.


보스포루스 해협에서 바라보는 톱카프 궁전


톱카프 궁전의 전체 규모는 원래 크기보다 상당히 축소된 상태이다.
본래의 규모는 오늘날의 시르케지 철도역과 귈하네 공원을 포함하면서 마르마라 해 방향의 아래쪽까지 분포했다.


비록 구조적으로는 메흐메트 2세 때의 기본 설계를 간직하고 있지만,
불규칙적으로 넓게 퍼져 있는 건축물의 집합한 형태라서 특별한 건축적 특징을 보여주고 있지 못하다.


톱카프 궁전 황제의 문 - 임페리얼 게이트(The Imperial Gate) 첫 번째 입구.


톱카프 궁전은 새롭게 술탄이 될 때마다 모두 필요에 의해서 공을 들였고,
대화재 사건이 네 번이나 일어나면서 당시에는 존재했을지도 모르는 건축적인 조화를 거의 보존하지 못했다.


톱카프 궁전 단지는 비룬(외정)과 엔데룬(내정) 그리고 하렘 세 곳으로 나뉘어 있다.
제각각 안마당이 여러 개 마련되어 있는데,
이 안마당을 연결하여 많은 문을 만들어 복잡하게 조성된 미로가 갖춰져 있다.



톱카프 궁전 임페리얼 게이트(The Imperial Gate) 첫 번째 문 앞에 있는 정자.


이 정자는 외국인들이 궁전에 들어갈 때 술탄의 승인을 받기 위해 대기하던 곳이라고 한다.
오스만제국의 국민이라면 여기 대기할 필요 없이 통과할 수 있었다고.


궁전의 정문 ‘황제의 문’(The Imperial Gate)


톱카프 궁전은 세 개의 문과 그에 딸린 네 개의 넓은 중정(中庭 Courtyards, 정원)을 가지고 있다.
궁전 안으로 들어가는 첫 번째 문은 ‘바브 휘마윤(아랍어: Bâb-ı Hümâyûn)’이라 불리는 황제의 문 또는 술탄의 문(Saltanat Kapısı)이다.


문의 바깥쪽에 새겨진 글은 메흐메트 2세가 이 궁전의 건축을 1478년에 완공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황제의 문은 메흐메트 2세 이후의 군주들이 손을 많이 대는 바람에 원래의 모양으로부터 많이 변형되었다.


톱카프 궁전 임페리얼 게이트(The Imperial Gate) 첫 번째 문 앞에 캘리그라피가 있다.


이 궁전을 완공한 메흐메트 2세가 방문객을 환영한다는 의미의 싸인.

오스만 제국이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점령한 1453년 이후에 최초로 지은 궁전이 있던 곳은 현재의 바예지드 지역이다.


당시 군주 메흐메트 2세는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점령한 후 현재의 이스탄불 대학교가 있는 자리를 황궁 터로 정하고 궁전을 지었다.
궁전은 세 번째 언덕에 세워졌다.


First Courtyards (제1 정원)


황제의 문을 들어서면 첫 번째 마당인 제1중정(I. Avlu or Alay Meydanı)이 있다.
이곳에 들어서면 오스만 군주와 궁전을 수비하는 예니체리코트(Court of the Janissaries)
또는 퍼레이드 코트(Parade Court)라 불리던 안뜰이 나온다.


First Courtyards (제1 정원)


일반 백성은 이곳까지만 자유롭게 다닐 수 있었다.
이 때문에 조정의 관리나 조정에서 일하는 시종들은 일반 백성들이 드나드는 제1중정을 궁전 마당으로 여기지 않았다.


제1중정에는 진료원, 장작 저장소, 제빵소 등이 있었으나,

현재는 동로마 제국 때 지은 하기아 이레네 성당과 화폐 제작소 말고는 남아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


2006. 3. 13. 톱카프 궁전 첫 번째 정원을 지나며 방문 기념 인증샷.


뒤로 낯익은 첨탑이 살짝 보이는데 그곳은 바로 성 소피아 성당이다.
톱카프 궁전과 성 소피아 성당은 이처럼 가까이 있다.

왼쪽에는 아야 이리니(Aya İrini)라 불리는 하기아 에이레네(Hagia Eirene) 비잔틴 성당이 서 있다.


하기아 이레네 성당 (The Hagia Eirene church)


하기아 이레네 성당은 6세기경 동로마 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 1세 때 건립되었다.
건축 재료와 구조 면에서 볼 때 전형적인 비잔틴 건축물이다.
오스만 제국이 동로마 제국을 정복한 후에도 모스크로 사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건축물의 원래 형태가 그대로 남아 있다.


하기아 이레네 성당 (The Hagia Eirene church)


오스만 제국은 하기아 이레네 성당을 전리품과 무기 저장소로 사용하였다.
그러다가 1846년에 오스만 제국 최초의 박물관으로 사용되었다.


하기아 이레네 성당 (The Hagia Eirene church) 내부 모습


동로마 제국 시절에는 성당으로 사용되다가 오스만 제국 시절에는
무기고, 박물관 등으로 쓰인 아야 이리니 성당의 내부 모습.
성상 파괴 운동 시절에 지어진 건물이라 안에는 십자가만 덜렁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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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 박물관


이 지역에 지은 궁전은 이후에 지은 톱카프 궁전과 구별하고자 구 궁전(舊宮殿)이라는 뜻으로
‘에스키 사라이(Eski Sarayı)’라고 불렀는데, 지금은 흔적도 남아 있지 않다.
술탄이 사용하지 않은 구궁전은 빛이 바랜 하렘의 여인들이 여생을 마치는 곳으로 사용되었다


톱카프 궁전 제1 정원에서 잔듸밭 사이로 "보스포루스"해협이 보인다.


톱카프 궁전 제1 정원에서 잔듸밭 사이로 "보스포루스"해협이 보인다.


두 번째 문. 경의의 문 (Gate of Salutation : Middle Gate ). '예절의 문'이라고도 한다.


제1중정을 지나면 ‘바뷔스 쎌람(Bâb-üs Selâm)’ 또는 디완 광장(Divan Meydanı)이라 불리는 두 번째 문인 경의의 문이 있다.
첫 번째 문과 중정은 일반 백성도 드나들 수 있는 곳이지만, 경의의 문부터는 일반 백성의 출입이 금지되었다.


경의의 문(Middle Gate; Ortakapı)이나 바뷔스 셀람(Bab-üs Selâm)을 통해 국정 운영을 담당했던 제2 중정으로 들어갈 수 있다.
오스만 제국 시대에는 술탄과 술탄의 어머니만 말을 타고 이 경의의 문을 통과할 수 있었다.
수상을 포함한 다른 사람들은 모두 말에서 내려 이곳을 통과해야 했다.


경의의 문 (Gate of Salutation : Middle Gate )


경의의 문 양쪽으로 웅장한 원추형의 망루가 있다.
망루의 오른쪽에는 사형 집행자의 칼과 피 묻은 손을 씻는 우물이 있고

참수된 사형수의 시체를 놓던 대리석이 두 개 있었다고 한다.


경의의 문 (Gate of Salutation : Middle Gate )


감옥시설이 있다는 첨탑아래 문처럼 나 있는 공간은

처형된 죄수의 머리를 걸어 두던 곳이었다고.


경의의 문(Gate of Salutation : Middle Gate ) 캘리그라피


캘리그라피는 이슬람 신앙 고백인 '샤하다'이며 '알라 이외에 다른 신은 없으며 무함마드는 그 분의 사도이다'라는 뜻이라고.
모스크 곳곳에 이 글귀가 적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처음 보는 단두대가 신기하여 인증샷을 해 본다.


제2 정원 (Second Court)


제2 중정은 아름다운 공원처럼 꾸며져 있다.
하나의 큰 건물에 외딴 정원이 여러곳 들어서 있으며 전형적인 유럽 궁전과는 달리
톱카프에는 담장 주변으로 여러 건물과 부엌, 막사, 알현실, 숙소가 자리해 있다.


제2 정원 (Second Court)


제2 정원 (Second Court)



구 궁전을 세우고 몇 년이 지난 후, 동로마 제국의 성곽이 있었던 첫 번째 언덕 북쪽 끝에 새로운 궁전을 지었다.
이 궁전이 바로 톱카프 궁전이다. 톱카프 궁전이 자리한 지역에는 동로마 제국이 세운 건축물이 있었으나,
톱카프 궁전이 들어서면서 모두 사라지게 되었다.



톱카프 궁전은 신 궁전(新宮殿)이라는 뜻으로 처음에는 ‘예니 사라이(Yeni Sarayı)’라고 불렸으나,
궁전 입구 양쪽에 대포가 배치된 데 연유하여 톱카프 궁전으로 불리게 되었다.


‘톱’은 대포라는 뜻이고 ‘카프’는 문이라는 뜻이다.
톱카프 궁전은 19세기 마흐무트 2세 때까지 약 380여 년간 오스만 제국 군주의 정궁이었다.
1475~1478년에 지어진 톱카프 궁전은 1850년대까지 계속 증축되기도 하고 보수되기도 하였다.




제2 정원 (Second Court)


제2 정원의 나무


제2 정원의 고목 사이로 새 나무가 자라 속에서 뚫고 나온 모습.​


부엌 궁전 (Saray Mutfakları)


경의의 문 뒤에 있는 넓은 마당은 제2중정(II. Avlu)으로 이곳에는 대신들이 국사를 논의하던 디완 건물과
거대한 황실 주방인 부엌 궁전(Saray Mutfakları)이 자리하고 있다.


부엌 궁전 (Saray Mutfakları)


마당 오른쪽에 있는 부엌 궁전은 군주를 비롯해 궁전 안에 있는 사람들의 직분에 따라 열 개의 별도 주방을 갖고 있었다.
하루에 두 번 궁중음식이 준비되었고, 해가 긴 여름철에는 해지고 두 시간 후쯤 군주와 하렘의 황실 가족들에게 음식이 제공되었다.


주방에서 만들어진 음식은 200여 명의 사람이 줄을 서서 접시를 손에서 손으로 전달하는 방식으로 식탁에 올려졌다.
궁전의 주방에서는 주로 양고기를 포함한 육류가 준비되었는데, 하루에 양 200마리가 소비되었다고 한다.
생선은 원하면 요리할 수도 있었으나, 거의 먹지 않았다.

주방이 있던 자리


주방으로 샤용되었던 곳으로 굴뚝의 규모를 보면 당시 톱카프 궁전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겠다.
지금은 도자기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전시된 도자기가 무려 12,000여 점에 이를 정도로 방대하다.


정의의 탑 (Tower of Justice)


디완과 하렘 사이에 위치한 정의의 탑은 궁전에서 가장 높은 건물로 부정에 대항하는

술탄의 영원한 경계를 상징한다고 하는데 높이 14m의 이 탑은 내부를 감시하는 망루로 쓰였다고 한다.


정의의 탑 (Tower of Justice)


이곳 제2 중정 마당에서는 처형된 죄인의 목을 걸기도 했으며,
이 문 안쪽에는 사형집행인이 칼에 묻은 피를 씻었다는 우물이 남아 있다.


오스만 제국의 대신들의 국정회의인 디완(Divan)을 주관하던 건물에 바로 붙어 있으며

궁궐 내에서 집행된 모든 처형, 처벌들은 이 사진이 찍힌 제2 중정 마당에서 이루어졌다.


황제는 저 탑 위에 올라가서 사형집행 윤허 여부를 전달하고 집행을 지켜보았는데,
터키 드라마 무흐테솀 유즈이을을 보면 꽤 자주 볼 수 있다.


디완(diwan)


경의의 문 뒤에 있는 넓은 마당은 제2중정(II. Avlu)으로 이곳에는 대신들이 국사를 논의하던 디완 건물과
거대한 황실 주방인 부엌 궁전(Saray Mutfakları)이 자리하고 있다.


제2 중정 왼쪽(서쪽)에 아름다운 제국 대회의실(Imperial Council Chamber; Dîvân-ı Hümâyûn)이 있다.
대신들이 국정을 논의하던 곳으로, 술탄이 이따금 벽 상부에 설치된 황금 창살을 통해 회의 내용을 엿들었다고 한다.


오른쪽 공간에는 궁전의 시계가 전시되어 있다.
북쪽의 외부 금고(Outer Treasury)에서는 오스만 제국 및 유럽의 무기와 갑옷을 볼 수 있다.


디완(diwan) 내부.


디완은 오늘날의 내각(內閣)을 말하는 것으로, 조정의 주요 업무가 이곳에서 논의되고 결정되었다.
디완 건물을 ‘쿱베알트’라고 부른다. 콥베는 ‘돔’이라는 뜻이고, 알트는 ‘아래’라는 뜻이다.


내각회의는 톱카프 궁전 초기에는 매일 열렸으나,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줄어들다가
18세기 초에 이르러서는 일주일에 하루만 열리게 되었다.


디완 회의 초기에는 군주가 직접 회의에 참여하였으나,

얼마 안 있다가 디완 회의는 총리대신이 주재하게 되었다.


긴 소파가 있다.


디완(diwan)은 터키어로 '소파'라는 뜻인데 여기에서

각료들이 소파에 앉아 국가의 중대사를 결정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원래 신하들의 회의에 왕도 참관했는데 나중에는 동석하지 않고 벽 뒤에 숨어서 지켜봤다고 한다.


오스만 제국의 관료들이 디완 회의를 했던 건물 내부의 모습.


사진 우측 중앙을 보면 황금 창살로 막혀 있는 창문이 보이는데 이곳을 통해
황제가 직접 회의를 관찰하거나 대리인을 보내 관찰하게 했다.


한편 황제는 회의 자체에는 참여하지 않았지만
디완 회의 이후 대재상(Vezir-i âzam)을 불러 접견을 통해 자신의 의중을 전달했다.


술탄이 가끔 이 뒤에 숨어서 지켜 봤다고 하는 창문.


왕이 이 뒤에 있을 때도 있고 없을 때도 있어서

신하들은 맘 편하게 회의를 하지 못했다고 한다.


디완의 화려한 천장 장식.


외부 금고(Outer Treasury)에서는 오스만 제국 및 유럽의 무기와 갑옷을 볼 수 있다.


참조 ; https://ljhoi.blog.me/221363753799
https://blog.naver.com/fightclub/221380539496
https://blog.naver.com/ahnys0/221229580348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387694&cid=43079&categoryId=43079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160465&cid=40942&categoryId=31600
https://ko.wikipedia.org/wiki/%ED%86%B1%EC%B9%B4%ED%94%84_%EA%B6%81%EC%A0%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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