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브란트 하르먼스 판 레인 〈아르테미시아〉 캔버스에 유채 / 142×152cm / 1634년 제작 / 프라도 미술관 1층 16b


렘브란트(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1606~1669)는

스페인으로부터의 독립을 쟁취한 17세기 네덜란드의 황금기를 구가한 화가였다.


바로크 시대의 화가답게 그는 카라바조를 연상시키는 명암법을 주로 썼으나

훨씬 부드럽고 서정적인 빛을 구사해 다소 슬프고도 애잔한 분위기를 주도한다.


이 그림은 샤스키아와의 결혼을 기념하기 위해 그녀를 모델로 그린 그림이다.

그림 속 여주인공은 기원전 4세기경 오늘날 터키 보드룸에 있던

카리아의 여왕 아르테미시아(ArtemisiaⅡ ?~BC 350?)이다.


그녀가 남편을 위해 지은 마우솔로스의 묘 ‘마우솔레움(Mausoleum)’은

그 거대함과 정교함으로 ‘세계 7대 불가사의’로 꼽힌다.


아르테미시아에 관해서는 죽은 남편을 잊지 못해

그의 유해를 태운 뒤 남은 재를 잔에 넣어 마셨다는 이야기가 있다.


따라서 아르테미시아는 강한 부부애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고혹적인 빛을 듬뿍 받은 채 아르테미시아가 앉아 있고, 그 앞에는 여종이 잔을 들고 앉아 있다.


렘브란트는 여종의 등에 닿는 빛뿐 아니라,

여왕을 비췄다가 반사되어 다시 여종의 얼굴을 밝히는 빛까지 그려냈다.


화면 왼쪽은 짙은 어둠이지만 여분의 빛으로 어렴풋하게 형체를 드러낸

또 다른 여종의 모습이 보인다.


레이덴 출신의 렘브란트는 초상화로 명성을 얻었고,

엄청난 지참금의 소유자였던 샤스키아와 결혼에 성공하면서 인생의 절정을 달리게 된다.

그러나 샤스키아가 죽은 뒤 쇠락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과감한 붓질에 물감 덩어리를 그대로 노출시키는 대담한 그의 화풍은
매끈한 채색과 명료하고 단정한 고전적인 취향으로 돌아선 네덜란드 사회에 더 이상 먹혀들지 않게 된 것이다.


그의 몰락은 비단 자신의 진보적인 그림 세계에 대한 몰이해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샤스키아가 죽자 그는 하녀로 있던 헤이르테 디르크와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하지만 그녀는 렘브란트가 자신을 배신하고 또 다른 하녀 헨드리케 스토펠트와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되자 일종의 혼인빙자 간음죄로 고발, 그를 법정에 세움으로써

엄격하고 도덕적인 생활을 강조하던 네덜란드 사회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렘브란트는 이후 헨드리케 스토펠트와 동거하면서 아이까지 낳았지만,

그녀와 정식으로 결혼하지 않아 또 세간의 입방아에 올랐다.


욕을 먹으면서도 그녀를 호적에 올리지 않은 것은 아내 샤스키아가 남편이 다른 여자와 결혼할 경우
남겨진 유산을 한 푼도 사용하지 못하게 막아놓았기 때문이었다.

루이스 멜렌데스 〈정물화〉 캔버스에 유채 / 42×62cm / 1772년 제작 / 프라도 미술관 2층 87실


루이스 멜렌데스(Luis Egidio Melendez, 1716~1780)는 화가인 아버지 밑에서 자라 1752년에 정식으로 출범한
산페르난도 왕립미술아카데미의 전신 격인 곳에서 공부했고 상을 탄 이력도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와 회원들 간의 불화로 인해 부자가 모두 아카데미에서 제명을 당하자 적당한 후원자를 구할 수 없게 되었다.
문제 많은 집 아들이라는 식의 낙인 때문에 왕실 화가로의 입성 역시 좌절한 그는 이탈리아 등지를 전전하다 마드리드로 돌아왔다.


재력 있는 후원자를 구하지 못한 많은 화가들이 그러하듯

멜렌데스는 주로 정물화를 선주문 없이 그려 직접 판매해가며 생계를 유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신양명의 꿈을 버리지 않았던 멜렌데스는 자신이 그린 그림 몇 점을
훗날 카를로스 4세로 왕위에 등극하는 왕세자 부부에게 보내 인정받으면서 그림 주문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왕세자 부부가 멜렌데스의 그림을 걸어두려고 했던 곳이 하필이면 왕립아카데미 건물 2층이어서
결국 전시되지 못하고 있다가, 훗날 아란후에스 궁정으로 옮겨져 소장되었다.


이는 당시 스페인 사회가 심지어 미술계마저도 실력보다 인맥과 처세술에 좌지우지되는 상황이었음을 짐작케 한다.

검은 배경, 명료한 선 그리고 사진을 방불케 하는 사실적인 묘사는 산체스 코탄이나 수르바란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그의 그림 속 대상들의 표면 처리가 너무나도 뛰어나 눈으로 보는 그림이 아니라
거의 귀로 듣고, 손으로 만지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

루이스 멜렌데스 〈정물화〉 캔버스에 유채 / 49×37cm / 1770년 제작 / 프라도 미술관 2층 87실


물고기를 뜻하는 그리스어 ‘이크티스(Ichthys)’는 ‘Iesous Christos Theous Yios Soter’
즉 ‘구세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머리글자를 딴 말과 일치한다.


기독교 박해시절, 신자들은 물고기 그림으로 자신의 종교를 암호처럼 드러내곤 하였다.
따라서 그의 정물화 속 물고기들은 바로 신앙의 고백이라 설명할 수 있으며,
빵이 놓여 있는 식탁은 ‘빵과 포도주’로 대변되는 미사 의식을 떠오르게 한다.


그러나, 멜렌데스의 작품은 이런 설명보다는 그저 화면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은 사실감으로,
일상에서 무심하게 보아오던 것들이 그림으로 그려졌을 때 찬란하게 회복하는

‘사물 그 자체의 존엄성’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라파엘 멩스 〈파르마의 마리아 루이사의 초상〉 캔버스에 유채 / 152×110cm / 1765년경 제작 / 프라도 미술관 1층 20실


라파엘 멩스(Anton Raphael Mengs, 1728~1779)는 독일에서 태어났다.
화가인 아버지로부터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고, 로마에 머물면서 고대 로마와 그리스 문화를 동경하던 당대의 유행을 좇아

엄격한 데생과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고전주의적 화풍을 전개했다.


드레스덴의 궁정화가로도 활동했던 그는 주로 초상화 작업을 했다.
그는 고전의 아름다움을 칭송한 미학자 요한 요아힘 빙켈만(Johann Joachim Winckelmann, 1717~1768)과

함께 고대 조각상을 연구하기도 했다.


빙켈만은 ‘근대의 그리스인’이라는 별명으로 불릴 정도였는데,

특히 고대 그리스의 미술을 “고귀한 단순함과 고요한 위대함”이라 칭하며

모든 미술의 모범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빙켈만으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은 라파엘 멩스의 작품은 따라서 고대 조각상과도 같이
단단하고 완성미 높은 데생에 입각하여 차분하고도 고고한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그 또한 빙켈만 못지않은 이론가로 《회화에서 미와 취미에 관한 성찰》(1762)이라는 저서를 남기기도 했다.

멩스는 이탈리아 문화에 높은 취향과 관심을 가지고 있던 카를로스 3세에게 발탁되어 스페인 궁정에 입성하게 된다.


〈파르마의 마리아 루이사의 초상〉 속 그녀는 왕세자 시절의 카를로스 4세와 결혼한 직후의 모습이다.
고야가 그린 합죽이 할머니와는 전혀 다르다.


열네 살 어린 나이에 결혼한 그녀는 주로 아란후에스에 거주하였는데,
그림 속 배경도 그녀가 자주 거닐던 그곳 정원일 것으로 짐작된다.


멩스는 이런 저런 잡다한 배경을 가능한 한 생략하고 단순화했고,

파스텔 색조에 꼼꼼한 세부 묘사, 선명한 윤곽선으로 인물의 품위를 드높였다.

라파엘 멩스 〈왕세자 시절의 카를로스 4세의 초상〉 캔버스에 유채 / 152×110cm / 1765년경 제작 / 프라도 미술관 1층 20실


〈왕세자 시절의 카를로스 4세의 초상〉 속 카를로스 4세 또한 아직 젊어서인지 제법 훈훈한 미남이다.
멩스의 그림 속 그들은 30년 뒤 고야의 그림 속에서 보듯이 타락하고 다소 지쳤으며,
음모와 배신의 희생양이 되어 자신이 고용한 화가 고야에게조차 조롱거리가 되지만,
그조차도 깨닫지 못한 바보 아닌 바보가 되어 버린 것이다.


출처 :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144XX48100049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144XX48100050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144XX48100054



해설 김영숙 : 서양미술사를 전공했다.
<그림수다>, <현대미술가들의 발칙한 저항>, <루브르와 오르세의 명화산책> 등 미술관련 서적을 20여 권 저술하여
대중이 미술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유쾌하고 친절한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
번역서로는 <엘그레코>가 있으며 현재 국공립단체를 포함하여 여러 곳에서 활발한 강연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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