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스의 심판>. 패널에 유채. 199×379cm. 1639년 제작. 프라도 미술관 1층 29실


페테르 파울 루벤스는 플랑드르 바로크 최고의 반열에 오르는 화가였다.
카라바조의 바로크가 극적인 명암의 대비를 통해 관람자의 심리를 압박한다면 루벤스는 단연 활달하고 자유분방한 선과

다채로운 색으로 동영상의 한 장면 같이 살아 꿈틀대는 느낌을 주는 ‘동적인 바로크’의 대가라 할 수 있다.


루벤스는 훤칠한 외모와 언변, 그리고 그 언변을 든든하게 받쳐줄 방대한 지식의 소유자로,
심지어 다섯 개 언어를 능통하게 구사할 수 있었고, 사교적인 성품까지 겸해 합스부르크 왕가의 외교관 노릇까지 했다.


새로 지은 부엔레티로 궁을 장식하기 위해 펠리페 4세는 플랑드르와 이탈리아 등으로부터 다량의 작품을 주문하였다.
루벤스의 경우는 거의 100여 점이 넘는 작품을 제작하기로 계약되었는데, 〈파리스의 심판〉도 그중 하나다.


그림은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가 자신 앞에서 한껏 미모를 과시하는 세 여신을 심사하는 장면이다.
올림포스 신들의 연회에 정식으로 초대받지 못한 불화의 여신은

“가장 아름다운 이에게”라는 글자가 새겨진 사과를 신들의 식탁에 던졌다.


하지만 누구를 뽑아도 뒤끝이 좋지 않을 것을 염려한 신들은 그 사과를 인간 세상으로 던져버렸다.
신들의 분란이 인간 세계의 분란으로 이어진 것을 그림 속 파리스는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있다.


그의 뒤에는 뱀이 꼬여 있는 지팡이를 늘 들고 다니는 머큐리(헤르메스)가 서 있다.

물망에 오른 세 여신 중 가장 왼쪽은 미네르바이다.


곁에 있는 방패를 통해 전쟁의 여신인 그녀를 식별할 수 있다.
중앙의 여신은 화살통을 맨 아들 큐피드를 대동하고 있어 비너스임을 알 수 있다.


화려한 모피 옷을 걸친 오른쪽 여신은 주피터르의 아내 주노이다.
유난히 광채가 나는 비너스의 머리에 아기 요정이 장미가 달린 화관을 씌우려는 모습으로 보아,
사과는 사랑의 여신 비너스에게로 돌아갈 듯하다.


장미는 종교화에서는 주로 마리아를 상징하지만, 신화에서는 비너스의 꽃으로 그려지곤 한다.
그녀는 자신에게 사과를 주면, 인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과 사랑할 수 있게 해주겠노라고 약속했다.


‘예쁜 여자’에 대한 집착은 파리스도 비켜날 수 없는 유혹이었다.
그러나 비너스가 소개해준 여인은 하필이면 스파르타의 왕비 헬레네로, 유부녀였다.


이판사판, 파리스가 그녀를 데리고 야반도주를 감행하자 스파르타가

트로이에 전쟁을 선포해 그 기나긴 트로이 전쟁이 시작되었다.


여신들의 몸매는 살집이 강하게 느껴진다.
풍만한 여체는 루벤스 특유의 밝고 환한 빛을 타고 꿈틀대며 농밀한 관능을 자극한다.


〈사랑의 정원〉캔버스에 유채. 198×283cm. 1633년 제작. 프라도 미술관 1층 16b실


<사랑의 정원>은 바로 자신과 엘레나 푸르망의 재혼을 기념하여 그린 작품이지만

펠리페 4세가 특히나 좋아한 그림이라고 전해진다.


그림 속 어느 한 구석에서도 직선을 찾기가 쉽지 않다.
붓끝이 마치 춤이라도 추듯 꾸불꾸불하게 이어지면서 화사한 색과 함께 화면 곳곳을 누빈다.

이 역동성이 바로 루벤스의 힘이다.


다채로운 색과 반짝이는 빛이 가득한 아름다운 옷차림의 귀족 남녀들이

무리지어 한껏 흥에 겨워 있는 동안 화면 왼쪽에는 춤을 추는 두 남녀가 보인다.

바로 루벤스 자신과 엘레나 푸르망이다.


그림 속 젊은 귀족 여인은 죄다 얼굴이 비슷한데, 당시에 설마 ‘규격형 성형미인’이 존재하지는 않았을 테고,
루벤스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어린 아내 엘레나 푸르망의 얼굴을 여러 각도로 그려놓은 것이 아닌가 싶다.


화면 오른쪽 상단에는 돌고래에 앉아 있는 여신상이 보인다.
여신상의 젖가슴은 분수가 되어 물을 흘려보내고 있다. 다산을 기원하는 장치이다.

<삼미신> 목판에 유채. 220.5×182cm. 1630~1635년 제작. 프라도 미술관 1층 29실


루벤스의 말기 작품 중의 하나로, 죽을 때까지 자신이 보관하고 있던 작품이기도 하다.
그림 속에는 아글라이아, 탈레이아, 유프로시네 등 세 명의 미의 여신이 등장하고 있으며,

풍만한 여성미가 극대화되어 표현되어 있다.


맨 왼쪽에 그려진 여인은 루벤스가 만년에 만난 두 번째 부인 헬레나 푸르망을 모델로 하여 그려졌다.

루벤스는 첫 아내와 사별한 뒤 나이 쉰을 넘어 자기보다

무려 서른일곱 살이나 어린 엘레나 푸르망과 재혼했다.


결혼 당시 그녀의 나이는 열여섯이었다.
아내들에 대한 루벤스의 애정이 각별했는지,

이 그림 속 왼쪽 여신은 눈에 넣어도 안 아플 것 같은 엘레나 푸르망을,
그리고 오른쪽은 전 부인 이사벨라 브란트를 모델로 했다.


부인들에 대한 개인적인 감정이 다분한 만큼 루벤스는

이 작품을 누구에게도 팔지 않고 평생 간직했다고 한다.

페테르 파울 루벤스와 (대)얀 브뤼헐과〈시각과 후각의 우의화〉 캔버스에 유채 / 175×263cm / 1620년경 제작 / 프라도 미술관 1층 16b실


<죽음의 승리>등을 그린 피터르 브뤼헐에게는 화가인 두 아들이 있었는데,

이름이 같은 장남은 구분하기 위해 (소)피터르 브뤼헐이라고 부른다.


둘째 아들은 (대)얀 브뤼헐이라고 부르는데, 그의 아들 역시 이름이 같아 (소)얀 브뤼헐로 표기하기 때문이다.
(대)얀 브뤼헐(Jan Bruegel de Oudere, 1568~1625)은 루벤스의 공방에서 작업하면서 서로 친분을 쌓아갔다.


프라도 미술관에는 그가 인간의 오감, 즉 시각, 청각, 미각, 후각, 촉각 등을 주제로 하여
루벤스와 공동 작업한 그림들의 일부가 걸려 있다.


이 그림들 속에 빼곡한 갖가지 사물들은 정물화의 거장인 (대)얀 브뤼헐이 그렸고, 인체 묘사 등은 루벤스가 맡았다.

오감과 관련한 그림들은 농업의 발달과 각종 무역으로 인해 풍요로워진 물질세계에 대한 일종의 예찬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많은 것들을 탐하는 기쁨은 에로틱한 쾌감에 가까웠기에,

이들 감각을 의인화한 여인은 주로 누드나 반쯤 벗은 몸으로 그려져 있다.


〈시각과 후각의 우의화〉는 말 그대로 눈과 코가 하는 일에 관한 그림이다.
탁자에 기대서서 푸토(putto, 미술 작품 속 날개 달린 귀여운 어린아이의 이미지)가 건네는

향기로운 꽃을 받아드는 여인은‘후각’의 의인화이다.


그와 달리 앉아서 거울 속 자신을 바라보는 여인은 ‘시각’이다.
그림 속 실내에는 환한 햇살이 들어온다.


이 빛과 더불어 실내에 가득한 그림은 모두 시각과 관련된 것이다.
그림 오른쪽의 사향고양이는 항문에서 냄새를 풍기는 동물이며,

그 앞의 강아지는 역시 냄새를 잘 맡는 동물로, 여러 꽃들과 함께 후각을 상징한다.

그림 속 그림들 중 오른쪽 귀퉁이에는 두 화가가 함께 작업한 〈성모자상〉이 보인다.

페테르 파울 루벤스와 (대) 얀 브뤼헐 〈성모자상〉 패널에 유채 / 79×65cm / 1620년경 제작 / 프라도 미술관, 마드리드

페테르 파울 루벤스와 (대) 얀 브뤼헐 〈청각〉 패널에 유채 / 64×109.5cm / 1618년 제작 / 프라도 미술관 1층 16b실


〈청각〉 역시 그 감각이 의인화된 여인을 둘러싸고, ‘듣는 것’과 관련된 모든 것을 그려놓았다.
특히 이 그림은 17세기 플랑드르, 네덜란드 지역에서 연주되던 모든 악기들을 연구할 수 있는 좋은 사료로도 쓰인다.


의자에 기대놓은 사냥총마저도 이 그림에서는 ‘탕!’ 하는 소리와 관련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시계들 역시 ‘시간’이라는 추상적인 관념을 표현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째깍째깍’이라는 직접적인 감각의 세계를 상징한다.

페테르 파울 루벤스와 (대) 얀 브뤼헐〈촉각〉 패널에 유채 / 65×110cm / 1618년 제작 / 프라도 미술관, 마드리드


(대)얀 브뤼헐이 묘사한 갖가지 정물들은 그 세부 묘사가 워낙 뛰어나

이미 그림 그 자체로 우리의 오감 전체를 자극한다.


그의 그림들은 단지 보는 것에서 벗어나 손으로 만져질 듯하고, 소리가 들리는 것 같으며,
툭툭 씹힐 것 같은 식감을 자극하고 입 안 가득히 향기가 번질 듯 치밀하고 사실적이다.

페테르 파울 루벤스와 (대) 얀 브뤼헐〈미각〉패널에 유채 / 64×108cm / 1618년 제작 / 프라도 미술관, 마드리드

페테르 파울 루벤스와 (대) 얀 브뤼헐〈후각〉패널에 유채 / 65×109cm / 1618년 제작 / 프라도 미술관, 마드리드


출처 :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144XX48100045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144XX48100046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144XX48100047



해설 김영숙 : 서양미술사를 전공했다.
<그림수다>, <현대미술가들의 발칙한 저항>, <루브르와 오르세의 명화산책> 등 미술관련 서적을 20여 권 저술하여
대중이 미술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유쾌하고 친절한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
번역서로는 <엘그레코>가 있으며 현재 국공립단체를 포함하여 여러 곳에서 활발한 강연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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