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토니오 데 페레다 <제노아의 구원> 캔버스에 유채 / 290×370cm / 1634~1635년작 / 프라도 미술관 1층 9a실


안토니오 데 페레다(Antonio de Pereda, 1611~1678)가 제작한 <제노아의 구원>은 스페인의 동맹국인 제노아가
사보이 공국과 프랑스 연합군에 의해 포위된 것을 스페인의 명장 산타크루즈 후작이 구원하는 장면을 담았다.


호호백발로 그려진 제노아의 통수권자는 중앙에 갑옷을 입고 위풍당당하게 서 있는 산타크루즈에게 경의를 표하고 있다.
그림 속 이들이 입고 있는 의상, 예컨대 모자 소매 장식 등은 워낙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어 티치아노를 연상시킨다.
화면 왼쪽의 창들은 그가 벨라스케스의 〈브레다의 항복>을 참고한 것으로 추정된다.

후안 바우티스타 마이노 <바히아 탈환> 캔버스에 유채 / 309×381cm / 1634~1635년 제작 / 프라도 미술관 1층 9a실


〈바히아 탈환〉을 그린 후안 바우티스타 마이노(Fray Juan Bautista Maino, 1581~1649)는 엘 그레코의 제자로,
이탈리아 고전 바로크의 대가 안니발레 카라치(Annibale Carraci, 1560~1609)에게도 그림을 배웠다.


한때 도미니쿠스 수도회에 들어가면서 붓을 꺾었지만, 펠리페 3세의 명을 받고 궁정에 들어와

당시 왕자였던 펠리페 4세의 개인 그림 교사로 활동하게 되었다.


이 시절 그는 궁정에서 열린 그림 경연대회에서 우승자로 벨라스케스를 선택하는 탁월한 안목을 자랑하기도 했는데,
이윽고 벨라스케스와 함께 부엔레티로 궁정의 방을 장식하게 된다.


그림은 스페인-포르투갈 연합군이 신대륙 브라질에서 네덜란드를 대파시킨 장면을 담고 있다.
오른쪽에는 네덜란드 군대의 장수가 초록에 노란 옷을 덧입은 스페인-포르투갈 연합군 총지도자

돈 파드리코 데 톨레도에게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돈 파드리코 데 톨레도가 가리키는 태피스트리에는 전쟁의 여신 미네르바로부터

승리의 월계관을 받아 쓰는 펠리페 4세의 모습이 보인다.


펠리페 4세의 곁에는 올리바레스 공작이 있다.

그림 왼쪽에는 바히아에 사는 포르투갈 여인이 쓰러진 병사를 치료해주고 있다.


후안 바우티스타 마이노는 살육이나 피비린내 나는 장면 대신 진지하고 침착한 표정의 여성들이
남성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아이들과 더불어 아군이건 적군이건 상관없이 고통받는 이들을 보살피는 모습을 그려 넣었다.
이른바 전쟁 속에 핀 자비의 꽃을 보는 듯하다

클라우디오 코에요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승리>. 캔버스에 유채. 271×203cm. 1664년 제작. 프라도 미술관 1층 18a실


클라우디오 코에요(Claudio Coello, 1642~1693)는 카를로스 2세 때 활동한 궁정화가였다.
당대 화가들이 그러하듯 그 역시 루벤스나 티치아노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벨라스케스처럼

사실주의적인 화풍을 펼쳤지만, 바로크 화가답게 웅대하고 환상적이며 동적인 구성이 가득한 화면을 펼쳐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승리>에서 성자의 근엄하고도 우아한 형상은 극도의 사실감을 과시하지만
하늘을 떠다니는 천사, 기이한 형태와 색으로 얼룩진 구름은 환상적인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다.


“마땅히 사랑해야 할 신을 사랑하는 자가 의인(義人)이고, 신을 미워하면서까지 자신을 사랑하는 자는 악인(惡人)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 성인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354~430)는 기독교 초기 시절의 유명한 철학자이자 사상가로
중세 신학의 기틀을 확립하는 데 기여했다.


그는 세계 3대 참회록의 하나로 자서전격인 신앙 고백서 <고백론>을 저술했다.

그림 속 아우구스티누스는 발치에 놓인 조각상을 무심한 듯 쳐다보고 있다.


고대 조각상들은 이른바 우상숭배를 암시하며, 그 곁에 악마의 상징이자 상상 속의 동물인 용이 그려져 있다.
너풀거리는 그의 하얀 옷은 구름과 뒤섞이며 푸른빛을 발하는데, 이는 주홍색 겉옷과 황금색 주교관의 색과 대비된다.

클라우디오 코에요 <성 루이 왕의 경배를 받는 성모자>. 캔버스에 유채. 229×249cm. 1665~1668년 제작. 프라도 미술관 1층 18a실


<성 루이 왕의 경배를 받는 성모자>는 십자군 전쟁에 두 번이나 참여했고,
역시나 전쟁 중 튀니지에 원정을 떠났다가 흑사병에 걸려 사망한

프랑스의 왕 성 루이 9세(Saint Louis, 1226~1270)를 그린 것이다.


아버지로부터 프랑스의 왕권을 물려받은 그는 열두 살에 왕위에 올라 카스티야 출신 어머니의 섭정에 의존했지만,
여러 개혁 정치를 통해 약한 자를 구제하는 데 앞장섰다.


아기 예수는 성모의 무릎에 앉아 천진난만한 모습으로 자신의 외할머니 안나가 건네는 꽃을 받아들고 있다.
그림 하단 왼쪽에는 양을 이끌고 있는 세례 요한이 자신의 상징이기도 한 낙타 털옷을 입은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그림 오른쪽에는 성 루이가 이들 가족에게 경배를 드리는 모습이 보인다.
그의 앞에는 홀과 왕관이 놓여 있다. 바로 자신의 신분을 상징하는 것이다.


드라마틱한 빛의 구성, 늘어진 커튼이나 호사스러움 등은

높은 경지에 오른 클라우디오 코에요의 바로크적 회화 기법을 반영한다.


출처 :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144XX48100042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144XX48100044



해설 김영숙 : 서양미술사를 전공했다.
<그림수다>, <현대미술가들의 발칙한 저항>, <루브르와 오르세의 명화산책> 등 미술관련 서적을 20여 권 저술하여
대중이 미술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유쾌하고 친절한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
번역서로는 <엘그레코>가 있으며 현재 국공립단체를 포함하여 여러 곳에서 활발한 강연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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