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체스 코탄 〈사냥감과 과일, 채소가 있는 정물화〉 캔버스에 유채 / 68×88.2cm / 1602년 제작 / 프라도 미술관 1층 8a실


후안 산체스 코탄(Juan Sanchez Cotan, 1560~1627?)은 오르가스에서 태어나 주로 톨레도에서 활동했다.
많은 미술사학자들은 검은 배경이 인상적인 그의 깔끔하면서도 섬세한 정물화를 두고 고대 로마의 학자

대 플리니우스(Gaius Plinius Secundus, 23~79)의 《박물지(Naturalis Historia)》에 나오는 일화를 언급하곤 한다.


이야기는 이렇다. 고대 그리스의 제욱시스는 자신이 그린 포도송이가 너무나 완벽한 나머지

새가 날아들어 그것을 쪼려다가 죽었다며 의기양양해 했다.


자만에 찬 그는 파라시우스에게 어서 그림을 보여달라며 그림 앞 커튼을 열어젖히려 했는데

알고 보니 그 커튼이 바로 파라시우스의 그림이었다고 한다.

그만큼 고대 그리스인들은 그림이 ‘완벽할 만큼 진짜’ 같을수록 훌륭하다고 여겼던 것이다.


사람의 눈을 속여 그것을 그림이 아니라 실제 같이 느끼도록 하는 기법은

트롱프뢰유(trompe l’oeil, ‘눈을 속이다’라는 프랑스어에서 나온 말이다)라고 불리는데,
이 작품은 그런 면에서는 단연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정물화는 16, 17세기 플랑드르와 네덜란드 화가들이 자주 그렸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통치를 받는 만큼 이 지역 회화의 특성이 전해진 스페인에는 ‘보데곤(bodegon)’이라 하여
식기나 요리 재료들을 그린 그림이 유행했다.


그림은 스페인 가정의 부엌 모습을 마치 사진으로 찍은 듯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천정에는 레몬과 사과가, 그 곁에는 사냥물이 매달려 있다.


아래 왼쪽에도 잡은 새들을 꼬챙이에 꿰어 놓은 모습이 보인다.
선반 위 늘어진 당근과 무 옆에 엉겅퀴과의 채소 카르둔도 있다.


화가 자신이 카르투지오 수도회의 평신도 자격으로 세고비아의 한 수도원에 들어간 전력까지 있어

그의 작품은 말 그대로 영적인 훈련을 위한 묵상의 대상으로,

인간의 죄와 그 정화에 대한 일종의 종교화로 읽히기도 한다.


예를 들면 카르둔은 창세기의 “땅은 네 앞에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돋게 하고 너는 들의 풀을 먹게 되리라”(3장 18절)라는

구절을 근거로 원죄를 안고 낙원에서 추방된 뒤 시작된 인간의 노동, 그 힘겨움을 암시하는 것으로 본다.


나아가 사과는 원죄를 의미하며, 레몬은 독을 제거하는 효능으로 인해 죄의 정화로 읽기도 한다.
하지만 정물화를 무조건 종교적 상징으로만 읽는 것은 동전의 한 면만 바라보는 것과도 같다.


당시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상 모든 것’에 대한 호기심이 극에 달하던 시기였고,
그만큼 늘 봐오던 것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관찰이 요구되던 시기이기도 했다.

프란시스코 리발타 〈성 베르나르두스의 환상〉 캔버스에 유채 / 158×113cm / 1626년 제작 / 프라도 미술관 1층 7a실


프로테스탄트의 위협에 대한 저항과 가톨릭 자체의 개혁을 위해 몇 차례의 긴 공의회를 거친 교회는
신도들의 신앙심을 더욱 견고히 할 수 있는 ‘반종교개혁(Counter-Reformation)’ 미술을 주도하였다.


대체로 반종교개혁 성향의 그림에는 성인의 일화들이 자주 등장한다.
이는 신도들로 하여금 그들의 삶을 그저 머릿속으로만 묵상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눈으로 체험하게 함으로써
보다 크고 깊은 감동을 느끼게 하려는 의도였다.


스페인의 17세기 미술에서 유난히 성인들의 모습이 많이 보이고, 나아가 그들의 모습을 마치 실제 인물의 초상화처럼
크게 클로즈업해 등장시키곤 하는 것은 스페인이 그만큼 강력한 가톨릭 국가였다는 사실을 환기시킨다.


〈성 베르나르두스의 환상〉은 발렌시아에서 활동하던 화가 프란시스코 리발타(Francisco Ribalta, 1565~1628)가
자신의 후원자인 후안 데 리베라(Juan de Rivera) 대주교가 소장하고 있던 카라바조의 모사본들을 연구한 결과 탄생할 수 있었다.


극명한 빛의 대비와 압도적인 사실감이 특징인 카라바조의 화풍이

이제 지중해를 거쳐 발렌시아 항구를 통해 리발타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그림은 예수가 친히 십자가에서 내려와 성 베르나르두스를 보듬는 신비한 체험의 순간을 담고 있다.
성 베르나르두스는 클레르보 대수도원을 설립하고 수도원 제도를 창시한 성인이다.


짙은 어둠에 가려 있지만 성인을 바라보는 예수의 시선이 얼마나 따사로운지는 성 베르나르두스의 표정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두 사람의 친밀도는 거의 관능적인 느낌까지 준다.


감정적인 자극을 강조하는 바로크 미술에는 딱 꼬집어 ‘그렇다’고 말할 수 없지만,
왠지 야릇한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그림이 드물지 않았다.

프란시스코 리발타 〈천사에게 위안받는 성 프란체스코〉 캔버스에 유채 / 204×158cm / 1620년경 제작 / 프라도 미술관 1층 7a실


〈천사에게 위안받는 성 프란체스코〉는 성 프란체스코가 병석에 누워 있을 때 한 천사가 나타나 음악을 연주해 주어
어린 시절 성인이 즐긴 음악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켜 그 병을 치유했다는 전설을 담은 그림이다.


천사나 성인이 입고 있는 옷 그리고 침대보와 양털의 질감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것은
그만큼 리발타가 사물에 닿는 빛의 변화를 세밀하게 관찰해낸 결과라 할 수 있다.


천사의 몸에서 뿜어나오는 빛과, 바로 오른쪽 어둠 속에 모습을 드러낸 어느 존재는 그림의 분위기를 한껏 신비롭게 연출한다.
다소 과장된 바로크적 자세를 취하고 있는 성인의 발과 손에 난 상처는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의 오상을 실제로 체험했다는 전설에서 비롯된 것이다.

호세 드 리베라 〈아르키메데스〉 캔버스에 유채 / 125×81cm / 1630년 제작 / 프라도 미술관, 마드리드


호세 데 리베라(Jose de Ribera, 1591~1652)는 발렌시아에서 태어났지만, 스무 살이 되기 전 이탈리아로 건너가

로마에서 활동했으며, 이후 합스부르크의 통치하에 있던 이탈리아 남부 나폴리에 머물며 작업했다.


그의 이름 ‘호세’는 종종 이탈리아어 식으로 ‘주세페(Giuseppe)’라고도 표기되며,
‘스파뇰레토(사랑스러운 스페인 사람)’라는 별명으로도 불린다.


그의 그림은 한눈에 카라바조가 연상된다.
강렬한 명암 대비로 인한 치밀한 사실주의는 감상자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는 마력이 있다.


리베라는 카라바조로부터 명암법만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탁월한 현실 감각까지 전수받았다.
카라바조는 위대한 성자나 성녀 들을 저잣거리를 활보하는 갑남을녀의 모습으로 그려
교회 관계자들의 우려 아닌 우려를 낳곤 했다.


이전의 종교화에 등장하는 성인들은 대체로 화려한 의상에 조각같이 군더더기 없는 몸매를 과시하곤 했지만,

카라바조는 고난 속에서 핍박받고 산 이들이 그렇게 우아하고 세련되게 치장하고 살아갈 수 없었을 것이라는

‘현실적’인, 따라서 진정한 의미의 ‘사실주의’를 구축했다.


호세 데 리베라 역시 성서 속의 인물들뿐 아니라 신화나 고대 철학자의 모습까지도 평범하다 못해
심지어 다소 비천한 모습으로 묘사하곤 했다.

호세 데 리베라 〈성 필립보의 순교〉 캔버스에 유채 / 234×234cm / 1639년 제작 / 프라도 미술관 1층 9실


〈성 필립보의 순교〉는 스페인의 왕 펠리페 4세(Felipe Ⅳ, 1605~1665)의 수호성인 필립보(Philippus)를 주인공으로 한 그림이다.
한때 이 그림은 성 바르톨로메오(Bartholomew)의 순교 모습을 담은 그림으로 추정되었다.


성 바르톨로메오는 인도까지 가서 그곳의 귀신 들린 공주를 치료함으로써 왕가 일족을 기독교로 개종시킨 성자이다.
그러나 그는 곧 왕의 동생에게 붙잡혀 살가죽을 통째로 벗기는 고문을 당했고, 머리를 아래로 하는 십자가형에 처해졌다 한다.


이 때문에 바르톨로메오는 자신의 벗겨진 살가죽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그림 속 주인공에게는 그런 지물이 없다.


학자들은 성인 필립보의 이름이 후원자인 펠리페 4세(펠리페는 한국어로 필립보로 표기하는,

라틴어 필리푸스의 스페인식 이름이다)와 이름이 같다는 것, 그리고 결정적으로 필립보가

십자가형에 처해 순교했다는 사실을 들어 그림 주인공이 성 바르톨로메오가 아닌 성 필립보라 주장한다.

순교를 당하는 성인의 하얀 피부와 그에 닿는 빛에 비해 성인의 뒷부분은 칠흑 같은 어둠이 드리워 긴장감이 고조된다.
매달린 성인과 그를 고문하는 이들의 몸, 즉 근육과 뼈의 이음새 하나하나까지

해부학 교과서에 실어도 될 만큼 정확하고 사실적이다.


출처 :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144XX48100028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144XX48100029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144XX48100030


해설 김영숙 : 서양미술사를 전공했다.
<그림수다>, <현대미술가들의 발칙한 저항>, <루브르와 오르세의 명화산책> 등 미술관련 서적을 20여 권 저술하여
대중이 미술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유쾌하고 친절한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
번역서로는 <엘그레코>가 있으며 현재 국공립단체를 포함하여 여러 곳에서 활발한 강연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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