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에로니무스 보스〈건초 수레〉 패널에 유채 / 135×190cm / 1516년경 제작/ 프라도 미술관 0층 56a실


현재 벨기에와 접한 네덜란드의 국경 도시 스헤르토헨보스(s-Hertogenbosch)에서 태어나 평생 그곳에서 살았다고 해서
‘보스(Bosch)’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히에로니무스 보스(Hieronymus Bosch, 1450?~1516)는
태어난 연대나 지도한 스승 혹은 후원자 등에 대한 기록이 무척 미미하다.


다만 먹고 살기 위해 그림을 그릴 필요는 없을 정도로 탄탄한 재정적 뒷받침이 있어
그 시대가 규범으로 삼는 그림보다는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지극히 도발적이고 실험적인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물론 그도 종교적 주제의 그림을 다수 그렸고, 〈건초 수레〉나 <쾌락의 정원>등에서 보듯
전통적인 교회 제단화 형식의 세폭화(triptych)를 제작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평범한 사람이면 상상조차 하기 힘든 반인반수의 생명체를 화면 가득 채운다거나
엉뚱하고도 기발하며 때론 지나치게 노골적이고 선정적이기까지 한 장면들을 여과 없이 그려 넣곤 해서,
과연 그의 그림이 교회에 세워질 수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이다.
실제로 이들 작품들을 소장했다는 교회에 대한 정보도 정확하지 않다.


왼편 날개 그림에는 상단에 하나님과 타락한 천사의 추락을 그려 넣었고,
그 아래로 ‘아담과 이브의 탄생’, ‘뱀의 유혹’, 그리고 ‘낙원에서의 추방’까지를 담고 있다.
가운데 그림은 시끌벅적하게 살아가는 인간 군상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중앙에 언덕처럼 높이 솟아 오른 건초더미는

“세상은 건초 수레와 같다. 우리 인간은 될 수 있는 한 더 많이 갖고자 욕심낸다”라는
네덜란드의 속담에서 비롯된 것으로 ‘탐욕’을 상징한다.


그림 하단에는 건초 더미 위에 도사리고 있는 악마나 자신들을 위해 기도하는 천사의 존재,
심지어 하늘 높은 곳에서 자신들을 위해 희생한 예수의 존재에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는 어리석은 이들이 흥에 겨워 노래하고 있다.


수풀 속에는 희희낙락 사랑을 나누는 커플도 있다. 사다리를 놓고 수레 위에 올라가려는 사람이 보이는가 하면,

바로 그 곁에는 교황과 황제까지 말을 타고 탐욕의 건초 수레를 따르는 것이 보인다.


중앙 그림 오른쪽에 등장하는 반인반수의 물고기나 머리 잘린 모습 등은 바로 인간이 악마로 변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들이 결국 닿는 곳은 오른쪽 날개에 그려진 불타는, 그야말로 생지옥이다.

히에로니무스 보스 〈일곱 가지 죄악〉 패널에 유채. 120×150cm. 1480년경 제작. 프라도 미술관 0층 56a실


이 작품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인간이 알게 모르게 저지르는 일곱 가지 죄악인

‘교만, 인색, 음욕, 질투, 탐식, 분노, 나태’를 그린 것으로, 탁자 상판을 장식하는 그림이었다.


중앙 그림에는 하나님의 동공이 그려져 있고, 그 안에 예수의 모습이 비친다.
바로 아래 “주의하라, 주의하라, 하느님께서 보고 계신다(Cave, Cave, Deus Videt)”라는 문장이 새겨져 있다.


이 글은 전체 그림의 위아래 띠에 적힌 성경 <신명기>의 구절

“그들은 모략이 없는 민족이라 그들 중에 분별력이 없도다”(32장 28, 29절)
그리고 “내가 내 얼굴을 그들에게서 숨겨 그들의 종말이 어떠함을 보리니”(32장 20절)의 내용과 이어진다.


동공 바로 아래 칸에는 옷까지 벗어던지고 싸우는 두 남자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바로 ‘분노’이다.
‘교만’의 칸에는 보석함을 곁에 둔 한 여인이 새로 산 모자를 뒤집어 쓴 채 거울을 들여다보고 있다.


예로부터 거울은 허영과 교만의 상징이었다.

심지어 그 거울은 머리는 늑대이고 다리는 메뚜기인 괴물이 들고 있다.


‘음욕’의 칸에는 남녀가 광대를 대동한 채 희희낙락하는 모습이 보인다.

‘나태’에는 성경과 묵주를 들고 교회에 가기 위해 여자가 남자를 깨우는 모습과 벽난로 앞에서 자고 있는 개가 있다.
주인 남자나 개나 게으르긴 마찬가지다.


‘식탐’의 칸에는 식탁 가득한 음식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는 남자, 그리고 술을 통째로 들이키는 남자가 보인다.
아이가 칭얼대지만 신경 쓸 겨를이 없어 보인다.


‘탐욕’은 재판관으로 보이는 남자가 가난한 자로부터 뇌물을 받아 챙기는 모습이다.

‘질투’에는 자기 가까이에 있는 것은 그냥 둔 채 남자가 손에 쥔 닿지 않는 뼈만 쳐다보며 짖는 개들이 있다.


이 질투 장면에 대한 설명은 여러 가지인데, 창 안의 부부 역시 남에게 일을 시키고

편히 노는 잘 차려입은 남자를 질투 어린 시선으로 바라본다는 해석도 있는가 하면,

구혼을 거절당한 부자가 처녀와 속삭이고 있는 남성을 질투하며 쳐다보고 있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사각형의 모퉁이, 네 개의 원에는 사람이 죽어 천국과 지옥에 이르는 장면을 담았다.
그림 왼편 상단에는 죽음을 상징하는 해골이 막 임종하는 이를 지켜보고 있다.

그의 곁에는 흰색 천사와 검은색 악마가 함께 있다.


오른쪽 상단은 최후의 심판으로 죽은 자들이 땅에서 솟아오르는 동안

예수가 천사들과 12사도를 대동하고 심판하고 있다.
아래에는 각각 천국과 지옥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히에로니무스 보스 〈쾌락의 정원〉패널에 유채 / 1500년경 제작 / 프라도 미술관 0층 56실


히에로니무스 보스히에로니무스 보스(Hieronymus Bosch, 1450?~1516)가 그린 악마 같은 생명체들 중 일부는
중세부터 죄의 심판과 그에 대한 두려움을 극대화하기 위해 기도서 등의 필사본에 삽화로 그려진 것을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보스는 그 삽화본의 악마들에 더 선명하고 짙은 색을 입혔고, 그 형상을 더욱 비틀고 과장했다.
그리고 수많은 유혹과 그 유혹에 지배되어 곧 다가올 운명의 날을 애써 외면하는

인간 군상의 타락을 무서우리만치 세밀하게 그려냈다.


이 그림은 누가 주문했는지, 또 어떤 의도로 제작했는지,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그림 속 장면들이 무엇을 말하는지에 대해
그저 추측만 난무할 뿐 정확하게 주장하는 바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다.


〈쾌락의 정원〉이라는 제목도 화가가 지은 것이 아니라 후대 사가들이 붙인 것으로,

과연 타당한 제목인가에 대한 이견도 적지 않다.


세면의 제단화 형식으로 제작되었지만 이 그림 역시

어느 교회의 제단에 걸려 있었는지 기록조차 남아 있지 않다.

히에로니무스 보스 〈쾌락의 정원〉 (왼쪽) 패널에 유채 / 220×195cm / 1500년경 제작 / 프라도 미술관 0층 56실


왼쪽 날개 그림에는 아담과 이브의 탄생을 담았다.
또 앞으로 인간과 함께 살아가게 될 온갖 종류의 동물이 역시나 갖가지 종류의 나무나 풀 등과 함께 그려져 있다.


이 중에는 더러 눈에 익숙한 생물도 있지만, 상상에나 존재하는 괴이한 모습의 것들도 많고,
부리 달린 새가 책을 읽는 등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행동이나 몸짓들도 빈번하게 등장한다.

히에로니무스 보스 〈쾌락의 정원〉 (가운데) 패널에 유채 / 220×390cm / 1500년경 제작 / 프라도 미술관 0층 56실


중앙 면에는 그야말로 삶 그 자체를 즐기는 여러 군상이 그려져 있다.
짝을 지은 남녀가 도색 잡지에나 나올 듯한 포즈로 사랑을 나누는 모습도 보인다.


먹고 죽어도 남을 만큼 큰 딸기도 눈에 띄는데, 이 그림에 〈딸기 그림〉이라는 별칭이 붙은 이유이기도 하다.
딸기나 앵두 등 과장된 크기로 그려진 과실은 비뚤어진 인간의 욕정, 탐욕, 그리고 그로 인한 죄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그밖에도 도처에 먹을 것이 떠다니는 이곳은 한편으로 보면 풍요로움이 넘치는 복된 공간이지만,
결정적으로는 주체할 수 없는 욕망을 마구잡이로 해소하고 있는 ‘타락과 과욕의 정원’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그림에 대한 다소 뜻밖의 해석도 존재한다.
빌헬름 프랑거(Whilhelm Fraenger)라는 학자는 이 그림이 인간의 타락상을 나열한 것이라기보다는

보스가 몸담았다고 추정되는 자유정신형제회에서 말하는 ‘성적 혼교를 통해

아담 이전의 순수함으로 돌아가자’는 종교적 실천을 위한 그림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히에로니무스 보스 〈쾌락의 정원〉 (오른쪽) 패널에 유채 / 220×195cm / 1500년경 제작 / 프라도 미술관 0층 56실


왼쪽 날개 그림이 창조의 순간이고 중앙이 쾌락의 정원이라면, 오른쪽 날개는 이 모든 일의 귀결인 심판의 세계를 담고 있다.
화면 중앙 하얀색 나무다리 모양에 둥그런 몸통을 가진 이상한 형태의 존재가 눈에 띄는데,
자세히 보면 심각한 표정을 한 어느 남자의 얼굴이 그려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전체 그림 중 가장 사실적으로 그려진 이 얼굴은 화가 자신의 것으로 추정된다.
상단에 사람의 귀와 같은 형태에 뾰족한 무언가가 튀어나와 있다.

아마도 귀를 뚫는 칼로 보이는데, 전체적으로 남성 성기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인간이나 동물의 내장 혹은 신체 일부 같은 이상한 형태들, 공상과학 영화에나 나올 법한 특수한 고문 장치,
사람이 사람을 먹고 배설하는 장면 등은 보스가 상상하던 지옥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중앙 그림에서 누릴 수 있는 쾌락을 다 맛본 그 인간 군상들은 이제 속수무책으로 지옥의 기계 속에 고통스레 끌려들어간다.

히에로니무스 보스. 천지창조(재단화 닫힘면) 패널에 유채 / 220×110cm / 1500년경 제작 / 프라도 미술관 0층 56실


이 작품은 평상시에는 양쪽 날개를 접어 닫아놓게 되어 있는데,

닫았을 때의 면에도 심상찮은 그림이 그려져 있어 눈길을 끈다.


닫힌 면 상단에는 각각 “말씀 한마디에 모든 것이 생기고”와 “한마디 명령에 제자리를 굳혔다”라는

《시편》33장 9절의 글귀가 적혀 있다.

수정 구슬 속에 들어 있는 세계는 그만큼 약하고 부서지기 쉬워 보인다.
왼쪽 면 상단 귀퉁이에는 책을 들고 앉은 창조주가 있고,

책은 하나님이 《시편》의 글처럼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는 중임을 상기시킨다.


첫째 날에는 빛, 둘째 날은 물, 그리고 셋째 날에 땅과 식물을 만든 하나님은 아직 해와 달은 만들지 않은 상태이다.
창조를 위한 하나님의 고심이 얼마나 컸을까 싶지만,

정작 그렇게 만들어진 피조물들은 앞면의 그림에서 보듯 죄에 허덕이고 있다.

안토니스 모르 〈메리 튜더의 초상화〉 패널에 유채 / 109×84cm / 1554년 제작 / 프라도 미술관 0층 56실


안토니스 모르(Anthonis Mor Van Dashorst, 1516?~1576?)는 영국 체류 시절

메리 튜더 여왕의 초상을 비롯해 왕실 초상화를 다수 그렸다.


죽어서도 영원히 남게 되는 ‘흔적’으로서의 기념품,

경우에 따라선 얼굴 한 번 못 보고 혼사를 진행하는 정략결혼을 위해 보내지곤 하던 왕실 초상화들은 사진이 없던 시절,

사진만큼이나 정확하되 오늘날의 사진 보정술만큼의 교묘한 ‘성형’을 필요로 했을 것이다.


화가가 아무리 열심히 그렸어도 주인공의 비위를 거스리지 않기 위해 최대한 ‘눈치껏’이 요구되는 왕실 초상화 작업은
최고의 경지에 오른 화가라 할지라도 손을 떨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메리 튜더는 헨리 8세와 그의 첫 왕비인 아라곤의 캐서린(Catherine of Aragon) 사이에서 낳은 딸로
영국 여왕이자 펠리페 2세의 두 번째 왕비이기도 했다. 메리 튜더와 펠리페 2세는 꽤 가까운 혈족이었다.

 
따라서 그들의 결혼은 족보를 왕창 꼬아 놓는 근친혼이었지만,
사실 합스부르크 왕가에게 ‘가족끼리 그러면 안 돼!’ 수준의 금기쯤은 이권을 위해서라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서른여덟까지 독신을 고수하던 메리가 굳이 스물일곱의 애송이 연하남 펠리페 2세와 결혼한 것은
그야말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수준의 외교적 정략에 의한 것이었다.


<메리 튜더의 초상화>는 그녀가 펠리페와 결혼하던 해에 그려졌다.
그림 속 메리 튜더는 튜더 왕가를 상징하는 장미를 가슴에 안은 채, 다소 근엄한 표정을 짓고 있다.

알론소 산체스 코에요 〈이사벨 클라라 에우헤니아 공주와 막달레나 루이스〉

 캔버스에 유채 / 200×129㎝ / 1585~1588년 제작 / 프라도 미술관 0층 56a실


훗날 마드리드에서 활동하던 안토니스 모르는 프로테스탄트에 동조했다는 의혹을 받고

종교재판에 회부될 처지에 놓이자 이를 피하기 위해 서둘러 궁정을 떠나게 되는데,

산체스 코에요(Alonso Sanchez Coello, 1531~1588)가 그의 자리를 대신하게 된다.


코에요의 〈이사벨 클라라 에우헤니아 공주와 막달레나 루이스〉는 펠리페 2세의 딸 이사벨 공주와
그녀의 보모이자 궁정의 시녀이기도 했던 막달레나를 함께 그린 초상화이다.


막달레나는 펠리페 2세의 두터운 신임을 얻은 덕분에 왕이 국내외 순방을 떠날 때 수행하기도 했고,
가끔은 직언을 서슴지 않아 왕실 사람들을 곤혹스럽게 만드는 일도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플랑드르 화가답게 이루 말할 수 없이 정교하고 꼼꼼한 터치로 그려진 공주의 의상은
막달레나가 입은 검은색의 수수한 옷과 대비되면서 더욱 압도적으로 그 화려함을 자랑한다.


이들은 서 있거나 무릎을 꿇은 자세의 차이뿐 아니라,

각자의 배경이 되는 고급스러운 커튼과 칙칙한 벽으로도 대비를 이룬다.


이사벨 공주의 손에는 이 모든 부와 권력을 가능케 해준 아버지

펠리페 2세의 얼굴이 새겨진 카메오가 들려 있다.


출처 :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144XX48100014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144XX48100015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144XX48100016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144XX48100017



해설 김영숙 : 서양미술사를 전공했다.
<그림수다>, <현대미술가들의 발칙한 저항>, <루브르와 오르세의 명화산책> 등 미술관련 서적을 20여 권 저술하여
대중이 미술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유쾌하고 친절한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
번역서로는 <엘그레코>가 있으며 현재 국공립단체를 포함하여 여러 곳에서 활발한 강연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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