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 그레코 (El Greco, 1541~1614)
엘 그레코 (El Greco, 1541~1614)는 그리스 크레타 섬의 칸디아에서 태어나
베네치아와 로마를 거쳐 스페인의 수도였던 톨레도로 이주했다.
엘 그레코는 ‘그리스 사람’이라는 뜻의 스페인어 별명으로,
본명은 도메니코스 테오토코폴로스(Domenikos Theotokopoulos)이다.
그의 스페인 행은 펠리페 2세가 마드리드 인근에 에스코리알 궁을 짓기 시작하면서
건축가들을 포함한 미술가들에 대한 수요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진 것과도 관련이 있다.
당연히 엘 그레코도 에스코리알 궁 안의 교회당을 장식할 제단화 제작에 참여했지만,
당대에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독특한 화풍 탓에 교회 내부 전시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펠리페 2세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지 못한 탓에 궁정화가 발탁이라는 행운에서도 멀어졌지만,
이탈리아 체류 시절부터 제법 행세깨나 하는 지식인이나 귀족층과의 친분을 쌓아둔 덕에
톨레도를 제2의 고향으로 삼아 살 수 있었다.
엘 그레코는 반듯하고 완벽한 인체 묘사와 비례, 균형 등을 최고의 규범으로 생각하는
르네상스의 고전적 그림에서 많이 동떨어진 매너리즘 화풍의 대가였다.
매너리즘 화가들은 라파엘로나 미켈란젤로 등과 같은 대가들의 정점에 달한 ‘기교’를 답습하면서도
그것을 자신만의 독창적인 ‘방법’으로 변형시키곤 했다.
매너리즘(이탈리아어로 마니에리스모(manierismo))은 기교,
방법을 뜻하는 ‘마니에라(maniera)’라는 말에서 비롯된 단어이다.
엘 그레코의 역량이 고스란히 담긴 〈수태고지 1596~1600년 제작〈그리스도의 세례 1596~1600년 제작〉
〈십자가 처형 1597~1600년 제작〉<오순절 1596~1600년 제작><부활 1596~1600년 제작> 이 다섯 작품은
현재 마드리드 마리나 에스파뇰라 광장(Plaza de la Marina Espanola)에 있던 수도사를 위한 아우구스티노 교단 소속
부설 학교 예배당의 제단화로 제작된 일곱 점의 작품 중 일부다.
궁정화가가 되겠다는 야망을 실현하지 못한 엘 그레코는
1596년 이 제단화들뿐 아니라 내부 장식을 위한 조각품 제작도 의뢰받았다.
그는 이전까지 자신이 번 것보다 훨씬 많은 금액을 사례로 받고 3년여의 작업 끝에 이 작품을 완성했다.
안타깝게도 그가 그린 제단화 일곱 점은 나폴레옹의 침략 기간 동안 이리저리 흩어졌다.
이후 이 다섯 작품은 스페인으로 반환되었지만, 여섯째 작품인 〈목자들의 경배〉는 루마니아 국립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일곱째 그림은 소실된 상태이지만 학자들은 그것이 〈성모의 대관식〉을 주제로 하였을 것으로 보고 있다.
〈삼위일체〉 캔버스에 유채 / 300×179cm / 1577~1579년 제작 / 프라도 미술관 1층 8b실
구름과 빛이 가득한 신비롭고도 기이한 배경과 길쭉길쭉하게 늘어진 신체,
화려하면서도 생경한 느낌이 드는 원색 등은 매너리즘 화가 엘 그레코의 특징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림 속 하나님은 죽은 예수의 몸을 받쳐 들고 있다.
그들 주위로 날개 달린 천사들이 마치 새 떼처럼 부산스럽게 모여들고 있다.
염려와 공포 그리고 두려움으로 가득한 이들의 표정은 감상자의 ‘공감’을 자극적으로 유도한다.
축 처진 상태에서도 위엄을 잃지 않는 예수의 몸은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를 연상시킨다.
노랑, 빨강, 파랑 그리고 초록 등의 생생한 색이 화면 곳곳을 채우는 동안
예수의 피부만큼은 말할 수 없이 창백해 보여 시선을 압도한다.
가슴에서 허리 사이에 난 작은 상처는 십자가 처형 당시의 고통을
가능한 한 빨리 덜어주기 위해 롱기누스가 창으로 찔러 생긴 것이다.
<수태고지> 캔버스에 유채. 315×174cm. 1596~1600년 제작. 프라도 미술관 1층 9b실
엘 그레코(El Greco, 1541~1614)의 <수태고지>에는 노란 빛에 싸인 성령의 비둘기가 천상과 지상을 나누고 있다.
성령의 비둘기 바로 아래로 천사들의 머리가 마치 포도송이처럼 주렁주렁하다.
이 천사들의 형체는 구름과 이어지다 끊어지길 반복하며 감상자들을 두려움에 가까운 경외심에 휩싸이게 한다.
오른편의 가브리엘 천사가 날개를 퍼덕이며 내려와 마리아에게 수태고지를 하고 있고,
이에 마리아는 다소 놀란 모습으로 그를 올려다보고 있다.
<수태고지>. 캔버스에 유채 / 315×174cm / 1596~1600년 제작 / 프라도 미술관 1층 9b실
같은 주제의 작품으로 그가 베네치아에서 로마로 떠나기 전에 완성한 초창기 작품과 비교하면 그의 화풍이 어떤 식으로
변화되었는지를 알 수 있는데, 베네치아 체류 시절에 그린 그림이 훨씬 더 자연주의적 르네상스의 이상을 실현하고 있다.
비록 천정 어디선가부터 들이치는 모호한 빛 처리는 꿈이나 환상 등의 신비감으로 가득해 비현실적인 느낌을 주긴 하지만,
후기에 그려진 그림보다 인체 왜곡이 훨씬 덜해 비교적 적절한 비율을 유지하고 있다.
또한 바닥의 타일과 중앙 출입문 밖으로 이어지는 건물들에서 보이는 잘 계산된 원근법은
화면 속 공간을 현실의 그것처럼 자연스럽게 연출한다.
<그리스도의 세례>. 캔버스에 유채 / 350×144cm / 1596~1600년 제작 / 프라도 미술관 1층 9b실
<그리스도의 세례>도 <수태고지>처럼 천상과 지상의 두 부분을 화면 전체 구성에 이용했다.
그림 상단에는 하나님이 갖가지 자세의 천사들에 둘러싸여 있고, 하단에는 세례 요한이 세례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세례 요한은 조개에 물을 담아 예수에게 세례를 하고 있다.
종교화에서 조개는 종종 예수의 ‘빈 무덤’을 상징하므로 앞으로 그가 죽은 뒤 다시 부활하게 됨을 암시하는 장치로 볼 수 있다.
중앙에는 성령의 비둘기가 강한 빛과 함께 수직으로 내려오고 있다.
천사들이 예수의 머리께로 들고 있는 붉은색 천이 이 길쭉한 화면을 구획하고 있다.
〈십자가 처형〉 캔버스에 유채. 312×169cm. 1597~1600년 제작. 프라도 미술관 1층 9b실
〈십자가 처형〉에는 흔히 이 내용을 주제로 한 그림에 주로 등장하는 마리아와 사도 요한 그리고 막달라 마리아가 등장한다.
사도 요한은 예수가 가장 사랑한 제자로, 자신이 세상을 떠난 뒤 어머니인 마리아를 특별히 보살펴줄 것을 부탁할 정도였다.
화면 오른쪽이 사도 요한, 왼쪽이 마리아이다.
십자가 아래 예수의 발치를 지키고 있는 여인은 매음굴을 전전하다 회개한 막달라 마리아이다.
그녀는 자신의 죄를 참회하며 예수의 발에 향유를 바른 일이 있는데, 그로 인해 주로 예수의 발과 가까운 곳에 그려지곤 한다.
그림은 좌우 대칭의 르네상스적 구도를 취하고 있다.
상단에는 두 천사가, 중앙에는 마리아와 사도 요한이,
그리고 하단에는 날개달린 천사와 막달라 마리아가 서로 대칭하며 균형을 이루고 있다.
막달라 마리아와 천사는 수건으로 십자가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닦고 있다.
〈오순절〉 캔버스에 유채. 275×127cm. 1596~1600년 제작. 프라도 미술관 1층 9b실
<오순절>은 《사도행전》 2장 1절~13절에 기록된, 오순절에 사도들에게 일어난 기적의 순간을 담고 있다.
오순절은 유대인들이 시나이 산에서 모세의 율법을 받은 날을 기념하는 날이다.
예수가 승천한 뒤 오순절을 함께 지내기 위해 모인 사도들은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를 듣게 되었고,
이어 ‘불의 혀가 각자의 머리 위에 나타나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강한 바람 소리와 불의 혀는 곧 성령 체험이자 그 은혜를 입은 자들이 쏟아내는 방언의 기적으로 해석되어
이후 이 작품은 ‘성령강림절’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게 된다.
엘 그레코는 빛과 어둠의 강한 대립, 강하고 거친 붓질과 연극 배우들처럼 과장된 자세를 취한 등장인물을 통해
그림을 보는 이들에게 강한 심리적 압박감을 주고 있다.
〈부활〉캔버스에 유채. 275×127cm. 1596~1600년 제작. 프라도 미술관 1층 9b실
〈부활〉은 〈오순절〉과 같은 크기로 제작되어 있다.
아마도 이 둘은 제단의 양측에 걸려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예수가 든 깃발은 죽음에 대한 승리를 상징한다.
예수의 몸은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단단하고 이상적인 신체를 살짝 벗어나 있다.
신비로운 빛에 둘러싸인 예수를 목격한 병사들은 소란스러울 만큼 과장된 자세로 현장을 드라마틱하게 연출한다.
놀라 나자빠진 병사의 몸과 공중에 떠 있는 예수의 몸이 서로 대조되며 묘한 긴장감을 유도한다.
현재 톨레도의 타베라 병원에 있는 조각상 〈부활한 예수〉는 엘 그레코가 직접 제작하지는 않았지만
분명 이 그림 속 예수를 모델로 한 것으로 추정된다.
엘 그레코 <가슴에 손을 얹은 기사> 캔버스에 유채. 81.8×66.1cm. 1580년경 제작. 프라도 미술관 1층 8b실
왕실 입성은 실패했지만, 엘 그레코는 스페인 지식인들과 활발히 교류했으며,
귀족들로부터 많은 초상화를 의뢰받았다.
그야말로 잘생긴 손이 압권인 〈가슴에 손을 얹은 기사〉는
‘스페인 신사’의 한 유형을 만들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톨레도에 체류할 당시 《돈키호테》의 저자 미겔 세르반테스가 엘 그레코와
자주 교류했다는 주장으로 인해 그가 이 그림의 주인공일 것이라는 설도 있지만,
혹자는 톨레도 시장이었던 후안 데 실바 이 리베라 3세(Juan de Silva y Rivera III)를 그린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가슴에 손을 얹은 자세는 맹세를 의미하는 것으로, 그 아래로 왕에게서 받은 메달이 보인다.
화면 오른쪽에 보이는 검은 당시 수준 높은 검 제작으로 유명한 톨레도의 장인이 만든 최고급 제품으로 보인다.
〈우화〉 캔버스에 유채. 50.5×63.6cm. 1580년경 제작. 프라도 미술관 1층 8b실
〈우화〉는 한 소년이 막 초에 불을 붙이는 모습을 담고 있다.
투박하고 거친 붓질이지만 어둠 속에서 환한 빛에 노출되었을 때 변화되는 피부색의 표현이 참으로 예리하다.
‘불씨를 붙인다는 것’을 성적 행위로 보는 일반적인 해석에 따르면,
원숭이나 넋이 나간 듯한 표정의 오른쪽 남자는 성적 방종을 의미한다.
출처 :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144XX48100025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144XX48100026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144XX48100027
해설 김영숙 : 서양미술사를 전공했다.
<그림수다>, <현대미술가들의 발칙한 저항>, <루브르와 오르세의 명화산책> 등 미술관련 서적을 20여 권 저술하여
대중이 미술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유쾌하고 친절한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
번역서로는 <엘그레코>가 있으며 현재 국공립단체를 포함하여 여러 곳에서 활발한 강연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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