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회하(秦淮河)


중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계곡 12 중 열 한 번째인 진회하(秦淮河)는

여섯 조대의 도읍이었던 고도 남경(南京, Nanjing)의 젖줄이면서 금릉 고 문화의 요람이기도 하다.


진회하의 안쪽 총 길이가 5킬로이어서 역사상 “10리 진회”라고 불린다.

진회하는 자연경치、산수원림、묘우학당、거리민가、향토인정을 일체로 담은

진회풍경의 중심이며 국가 AAAA급 관광지이기도 하다.


풍경구는 부자묘의 고건축물들을 중심으로, 10리 내의 진회하를 축선으로 하여

동쪽은 동수관공원으로부터 시작되어 서쪽은 서수관공원(지금의 수서문)까지다.


“강남의 금수지방, 금릉의 풍아지수”, “10리 주렴” 으로 일컬어지는 부자묘 —

진회풍경구에는 명승고적들이 해아릴수 없을 만큼 모여 있고 수많은 옛 이야기가 담겨 있다.


남경 도시 최초의 발상지이고 도시 발전상 2천여 년의 역사와 문화가 담겨져 있다.

또한 남경 역사상 제일 번화한 문화와 상업의 중심이기도 해서 남경 역사의 부침과 변화를 대표한다. 


진회하는 수려한 경치와 불빛 밝은 야경이 사람들의 발길을 끌지만

그 보다도 깊이를 알수 없는 역사의 뿌리와 강물에 어려 있는 전설이 더욱더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킨다.


사람들은 진회하라고 하면 장강(長江)의 한 지천이나 남경의 젖줄인 강물을 머리에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강가에 운집한 상인과 문인, 우아하고 옛 스러운 건물, 그 속의 아름다운 여인과 선비를 생각한다.


그토록 진회하는 자연명소보다는 인문명소에 더 어울린다.

과거 진회하 양안에 즐비한 절과 정원, 누각을 드나드는 사람들 모두가 귀족이었다면

오늘날 이 곳은 강남의 풍속을 보여주는 관광명소로 탈바꿈해 누구든지 다녀갈 수 있다.


진회하 기슭에서 가장 대표적인 문화명소로는 부자묘(夫子廟)를 들수 있다.

공자의 사당인 공묘(孔廟)격인 부자묘는 영성문(棂星門)과 대성문(大成門), 대성전(大成殿),

명덕당(明德堂), 존경각(尊敬閣) 등 건물들을 거느리고 있다.


단, 과거 성인을 기리던 곳이 오늘날은 번화한 상가로 변하고 옛 거리를 본따서 조성한 골목에는

남경의 온갖 음식과 특산물이 즐비해서 남경을 찾는 관광객들이 필히 거쳐가는 관광명소로 부상했다.


바로 이 부자묘에서 진회하 유람이 시작된다.

하지만 진회하 유람에서는 아름다운 강물과 화려한 야경만을 보는 것이 아니다.

진회하 물길 밑에 깊숙이 숨은 역사와 문화적 내용을 읽는 것이다.


진회하 기슭의 강남공원 (江南貢院)에서 장원급제자 58명이 나왔고

이름만 거론하면 거의 모든 사람들이 다 아는 명사들도 이 곳 출신이다.


사랑을 위해 목숨을 내놓은 명기들도 이 물가에서 자랐다.

과거 강남공원의 맞은켠에는 여인들에게 음악을 가르치는 곳이 있었고

그 곳에서 가장 유명한 강남의 명기 8명이 키워졌고 그들은 사랑을 위해 절개를 꺾지 않았다.


그들이 바로 진회팔염(秦淮八艶)이고 그들의 이야기는 오늘날까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고 있다.

총명하고 아름답고 꿋꿋하며 재능을 갖춘 절색의 그 여인들이 있기에 오늘날 진회하는 여성다운 부드러움을 갖추고 있다.


첨원(瞻園)은 원래 왕부였다.

정자와 누각, 꼬불꼬불한 복도, 동산 등 강남풍의 아기자기한 정원으로 된 이 곳은

오늘날 중국역사의 한 단락인 태평천국(太平天國) 역사박물관으로 되었다.


옛스러운 건물과 고요한 정원을 거닐며 박물관에 전시된 1,600여 점의 문화재를 보면

기세좋게 시작되었다가 비극으로 끝난 태평천국의 그 한 단락 시대를 읽을 수 있다.


진회하는 수많은 이야기를 싣고 흐른다.

밤색이 짙어질 즈음 유람선을 타고 불빛이 명멸하는 속에서 노젖는 소리와 더불어

조용히 눈을 감으면 지난날의 장면이 그림처럼 떠오른다.


지난날의 진회하가 절망에 흔들리는 곳이었다면 오늘날 진회하는

그 아픔을 아련한 추억으로 감추고 아름다운 모습과 화려한 단장으로 남경의 관광승지로 탈바꿈했다.


진회하 유람선은 대부분 부자묘나 대성전앞 나룻터에서 출발한다.

소요되는 시간은 약 50분이다.


진회하 배놀이는 낮보다 밤에 하는 것이 좋다.

화려한 불빛이 어젯날의 비사를 더 잘 떠오르게 하기 때문이다.


부자묘는 남경에서 가장 유명한 상가로 다양한 가게와 식당들이 다 모여 있고

따라서 이 곳에서는 남경의 모든 음식을 맛 보고 원하는 남경의 모든 특산물을 다 찾을 수 있다.



진회하에서 주원장과 유백온


명나라 개국 황제 주원장은 남경을 도읍으로 정한 후 홍무 5년(1372) 정월에

진회하 강변에 만 잔의 등불을 태우는 것으로 전쟁에서 죽은 병사의 차례를 지낸다고 반포했다.


이를 계기로 진회 등회는 그후 점차 화려하게 흥성하였을 뿐아니라 강 양안에도 하방(河房)이 생기고

수중에 화방(画舫)이 흥성해졌으며 10리진회에 무사가대(舞榭歌台)의 변화가 생겼다.


전하는 이야기에 의하면 홍무 모년 8월 보름밤, 주원장이 군사 유백온(刘伯温)을 데리고 암행하였다. 

이 두 사람은 주인과 몸종으로 변장하고 누구도 몰래 살짝 황궁을 나가 진회야경을 구경하러 갔다.


그 누구가 알았으랴, 흐린 공중에는 달이라고는 없었다.

유백온은 화방을 하나 구해와 배위에서 술을 마시고 배의 주인더러 사주에 불을 달게 하고 흥을 돋구었다.


술자리에서 유백온은 황제께서 마음껏 즐길수 있도록 

화제를 주원장이 취미가 있어 좋아하는 대련(对联)으로 이끌었다. 


유백온은 주위를 둘러 본 다음 상연(上联)하기를 :

“추석에 달이 안 보이니 불을 몇잔 켜놓고 강산에 생기를 띄우는구나”라고 하니


말이 끝나기도 바쁘게 주원장이 받아서

“경첩에 우뢰 소리 안들리니 북을 수차례 두드려 천하에 위풍을 떨치더라”고 하였다.


유백온은 듣더니 좋다고 무릎을 탁쳤다.

주원장은 유백온과 같이 서서히 행진하는 화방에서 경치를 구경하거나

또는 술집, 가녀(歌女)를 주제로 시를 읊고 재미있게 즐겼다.


술좌석이 끝난후 유백온은 주원장과 함께 언저리 언덕에 올라 술집 간판기가 바람에 흩날리고

해금소리가 끝없이 들려오는 와중에 남녀들이 어깨동무하고 있는 낭만적인 모습을 구경하였다.

그들은 미녀를 흠상하고 해금소리를 들으면서 진회 강변을 밤늦도록 구경하고서야 돌아왔다.


궁으로 돌아오는 길에 주원장은 흥에 겨워 진회의 시구를 한 소절 읊었는데 

“좋은 물에 좋은 산, 좋은 바람에 좋은 달, 천추의 좋은 자리여라;

색상에 반하고 소리에 반하고, 정에 반하고 꿈에 반하고, 대대손손 반할 사람이구나” 라는 내용이다.


마두장(馬頭墻)


지붕의 경사에 따라서 계단식으로 구성된 주택의 측벽으로, 집 사이에 설치되어 화재시 불길이 번지는 것을 차단하는 역할도 한다. 

휘주(徽州) 지방의 민가에서 특징적으로 사용되었다. 산처럼 높다고 해서 ‘산장(山墻)’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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