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에서 본 난징대학살기념관 전경


난징대학살


1928년 남경에 국민정부가 성립되었다.

이에 일본에서는 동북 지역의 주도권 확보에 대한 위기감을 느껴 중국의 동북 지역을

무력으로 점령하려는 시도를 계속했고, 1931년 만주국이라는 괴뢰정부를 수립해 만주지역을 점령한다.


장제스는 국제연맹에 만주 문제를 제소했으나 국제 연맹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물러서지 않았고,

이에 공산당과 국민당은 항일 전쟁을 위해 손을 잡고 국공합작을 행했다.


그러나 끝내 해소되지 않았던 공산당과 국민당의 갈등으로 인해

결국은 다시 갈라져 각각 항일 전쟁을 진행하게 된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일본군은 1937년 11월에 상하이를 점령하였고

같은 해 12월, 중화민국의 수도 남경을 점령했다.


그리고 일본군은 상하이에서의 격렬한 저항으로 인해 입은 피해에 적개심을 불태우며

12월 13일부터 이듬해까지 약 두 달에 걸쳐 남경 시내 민간인들 및 포로들

수십만을 무차별적으로 살해하는 대학살을 자행했다.


그 시기 일본군은 오늘날 중국에서 三光 作戰이라고 부르는, 무차별한 학살을 계속했다.

三光은 殺光, 燒光, 搶光으로, 당시 일본군이 닥치는 대로 죽이고, 불태우고, 빼앗았다고 해서 붙여진 명칭이다.


난징대학살 기념관 건립 배경


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열린 전범 재판에서는 난징대학살의 총 책임자였던 마쓰이 이와네(松井石根)와

당시 외무대신이었던 이와타 고키가 그 책임을 지고 처형되었으나 대다수의 난징대학살 관련자들이 처벌을 받지 않았고,

처형된 이들도 일본 제국주의의 상징인 야스쿠니 신사에 합장되는 등 전범에 대한 처벌이 제대로 이루어 지지 않았다.


심지어 일본은 아직까지도 난징대학살이 본국의 소행임을 시인하지 않은 채

미온적인 태도만을 고수하고 있으며 일부 극우주의자들은 중국 공산당의 자작극이라는 주장까지 펼치고 있다.


난징대학살에 대한 논픽션 책《난징의 강간: 제2차 세계대전의 잊혀진 홀로코스트》

(The Rape of Nanking: The Forgotten Holocaust of World War II)의 저자 아이리스 장도

일본 극우주의자들의 협박에 못 이겨 정신이상을 앓던 끝에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이에 중국은 비극적인 역사를 잊지 않고자 난징대학살 기념관을 설립하였고

2014년에는 난징대학살 77주년을 맞이하여 12월 13일을 국가추모일(国际公祭日)로 지정하였다.


중국의 많은 유적들은 적지 않은 관람료를 받고 있는데 반해

이 곳 난징대학살 기념관은 예외적으로 입장이 무료이다.


최대한 많은 자국민들이 난징대학살이라는 사건을

생생히 기억하게 할 수 있도록 하려는 중국 정부의 노력을 엿볼 수 있다.


난징대학살 기념관 전시 구조


기념관은 1985년, 학살이 실제로 행해져 수많은 유골이 발견된 구덩이

만인갱이라는 곳에 건립되어 움푹 팬 형태를 띠며, 1995년 보수 및 증축 작업을 시행했다.


기념관은 야외와 실내로 나뉘어있는데 입장 후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실외전시관에는

그대로 보존된 희생자들의 유골과 당시의 상황을 재현한 동상들이 전시되어있다.


또한 희생자들을 위한 기념비와 그들의 이름이 새겨진 통곡의 벽,

그리고 생존자들의 발자국을 그대로 본뜬 부조가 자리하고 있다.


실내전시장에는 다양한 기법을 활용한 전시물들이 자리하고 있는데,

우선 일본군들의 잔혹한 행위를 그대로 담아낸 사진자료들과 영상이 방대한 양을 자랑한다.


또한 알파벳 순서로 정렬된 희생자들의 명단 및 그들의 신상정보를 기록한 파일,

난징대학살에 대한 자료, 현장복원모형, 영상, 유화, 학살에 사용된 무기 등이 전시되어있으며

다소 독특한 형태의 낙숫물 소리 전시장이라는 것도 있다.


낙숫물 소리 전시장의 이름은 12秒, 12초라는 뜻으로 어두컴컴한 홀 내부에서

12초마다 물방울이 똑똑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전시장이다.


이는 약 6주에 걸쳐 12초에 한명 꼴로 희생자들이 죽어나갔음을 의미하는 장치로

얼마나 많은 생명이 죽어나갔는지 실감하기 위한 전시이다.


대학살의 참상과 희생자들의 삶, 유족들의 인터뷰 등 난징의 과거를 생생하게 재현해놓은 이 전시의 끝은

현재의 중국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 몇 마디의 글이다.


"历史可以宽恕 但不可以忘却. 용서할 수는 있지만 잊어서는 안 된다.

前事不忘 后是之師. '과거를 기억해 미래의 스승으로 삼아야 한다."


등으로 결코 남경의 참상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해

두 번 다시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평화를 지켜 나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또한 전시관 출구 부근에는 분향소를 마련해 희생자들의 넋을 기릴 수 있도록 했다.

일본의 침략과 식민지배라는 공통적인 근현대사를 지나온 우리로서도 한번쯤 꼭 방문해 과거를 돌아보고

앞으로 일본과의 관계를 어떻게 형성해나가야 할지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학살당한 아이를 들고 절규하는 엄마의 동상
























학살 후 집단으로 매장된 현장


난징의 지앙동먼은 1만명의 사람들이 학살당해 매장된 장소다.

1998년 첫 발견시 208개의 해골이 발굴되었다.

발견된 뼈들에는 상당한 고문흔적과 총상 등이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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