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병동(藏兵洞)


장병동은 성루에 마련된 터널식 공간으로 평소에는 곡식을 저장하는 창고로 사용되었지만,

전시에는 병사들을 숨겨두는 장소나 숙소로 이용되었다.


작은 쪽문을 통해 들어가면 길다란 통로가 나오고 통로 끝에 넓은 공간이 나온다.

성루에는 병사를 숨겨두었던 장병동(藏兵洞)이 200곳 있었다.


장병동(藏兵洞)

"장병동"은 우리나라 고대 성문옹성 가운데의 독특한 건축이다.

고대 전쟁에서 물자의 저장과 병원의 매복 등 면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옹성에 건설된 장병동(藏兵洞)


성벽은 장방형의 돌을 바닥에 깔아 기초를 다지고, 돌을 깔아 다진 바닥 위에 흙으로 토성을 쌓고,

그 겉면에는 벽돌을 쌓아 성을 완성하는 방식이었다.


이 같은 방법을 사용하면 벽돌을 절약하면서도 충분히 강한 성벽을 만들 수 있었기 때문에,

고대 중국의 성벽은 대부분 이 같은 방법으로 건설되었다.

다만 남경성 황궁의 경우에는 동쪽과 북쪽의 성벽은 전부 벽돌로 건설되었다.


성벽의 평균높이는 12m정도이며, 그 위에는 활을 쏘도록 고안된 타구(垛口)가 있다.

타구는 총 13,616곳이 있었으며, 벽돌의 기본 크기는 10cm X 20cm X 40cm으로

무게는 30 ~ 40근이었고, 재질은 두 가지였다.


양자강 중하류 지역인 강소(江蘇)성, 안휘(安徽)성, 강서(江西)성,

호남(湖南)성, 호북(湖北)성의 28개 부(府), 152개 현에서 제작되었다.


벽돌의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서 벽돌의 측면에는 “OO府 OO州 OO縣”이라고 제조지가 기재되었고,

제작자와 품질관리 관원, 그리고 감독자의 성명이 표기되었다.


이것으로 벽돌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 원인을 추적할 수 있었고,

관련자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었다.


벽돌에 써넣는 정보는 대게 70여자였으며, 정보를 넣는 방법은 세 가지가 있었다.

벽돌에 글자를 찍어 넣는 방법이 있었고, 새기는 방법이 있었으며, 직접 써넣는 방법도 사용되었다.


글자의 형태는 전서(篆書), 예서(隸書), 위서(魏書), 해서(楷書), 행서(行書)가 사용되었으며

일부 간략화 된 필기체도 발견되었다.

약 10억 개의 벽돌이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장병동(藏兵洞) 내부


장병동(藏兵洞) 내부


뢰석(礌石)

"뢰석은 명조시기에 성문을 방비하는 주요한 병장기였는데 청석으로 쫗아 만든 크고 작은 원형의 돌멩이 이다."



뢰석(礌石)


뢰석(礌石)은 돌을 쪼아 만든 볼링공 형태의 병기이다.

명나라 시기의 주요 방성(防城)도구로 성벽을 오르는 적병에게 던져서 상해를 입혔다.

가장 큰 것은 무게가 200근에 달한다.


뢰석(礌石) 저장고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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