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원장(朱元璋)과 주승(朱升)


몽골족인 원조(元朝)의 통치는 매우 참혹했다.

통치자들은 백성들을 몽골인(蒙古人),색목인(色目人), 한인(汉人),남인(南人) 등 4개 급으로 나누어 다스렸는데

특히 원조 말년 원 순제(顺帝) 재위 기간, 전례없이 참혹했고 정치는 부패하기 그지없었다.


몽골통치자들은 백성들의 목숨은 아예 안중에도 없었고,

특히 한인과 남인들에게는 소나 말보다도 못한 취급을 했다.


궁지에 몰린 백성들은 반란을 일으켜 원조 통치자의 폭정에 반항했고

백성들의 연이은 봉기는 원조의 반동통치를 급속도로 와해시켰다.


기원 1353년, 봉기군의 수령 장사성(张士诚)이 고우(高邮)지역을 점령하고

장강을 넘어 상숙(常熟),호주(湖州),송강(松江),상주(常州) 에 수도를 세우고 왕으로 자처했다.


기원 1357년, 호북인 진우량(陈友谅)이 평장(平章)이라 자칭하고

강서(江西), 복건(福建)을 점령하고 구강(九江)을 수도로 정해 한왕(漢王)이라 자칭했다.

이와 동시에 절강사람인 방국진(方國珍) 역시 기회를 이용해 병사를 일으켜 점동(渐東)을 차지했다.


봉기군 가운데서 비교적 세력이 강했던 주원장(朱元璋)은 기원 1356년에

집경(集庆—오늘의 남경)을 점령하고 오국공(吴国公)이라 자칭했다.


주원장은 상당히 많은 지역을 점령하고 일정하게 승리도 거둔 뒤, 

앞으로 해야 할 일들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천하의 대권은 눈앞에 왔으나 확실히 제 것으로 만드는 작업이 필요했던 시점이었다.

이때 주원장에게 주승(朱升)이라는 사람을 찾아

가르침을 받으면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귀띔해 주는 자가 있었다.


주승(朱升)은 세상의 욕망이 뿜어내는 속진(俗塵)을 피해

산간에 숨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었다.


주원장은 주승을 찾아가

천하의 대권을 어떻게 잡을 것인가에 대한 방략(方略)을 주승에게 물었다.


몇 가지 대담을 주고받았을 터이지만,

지금 전해지는 기록으로는 주승이 주원장에게 전한 말은 아주 간단하게만 남아 있다.

“성을 높이 쌓고, 식량을 많이 모으고, 선포식을 늦추라”는 말이었다.


한자(漢字)로 적으면 아홉 글자다.

 ‘高築墻(고축장), 廣積糧(광적량), 緩稱王(완칭왕)’이다.


대세(大勢)를 형성했으나 아직 지방 군벌(軍閥)이 남아 경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

그래서 명분보다는 실질에 주목하며 더 힘을 길러야 하는 상황.


명나라 건국을 눈앞에 두고 있지만 아직 결정적인 무엇인가가 부족했던

주원장의 그런 처지를 꿰뚫어 본 가르침이었다.


주승이 알려준 비결을 듣고난 주원장은 바로 주승의 말을 따랐다.

군량과 마초를 사들이고 병마를 훈련시키며 군웅(群雄)들을 제거하고 화하(华夏)를 통일할 준비를 했다.


자신의 군대가 머무는 곳의 축성(築城) 작업에 몰두하는 한편

군량과 무기 등 기초적인 부분을 더욱 보강했다.


아울러 섣부른 ‘창업 선포식’을 뒤로 미루고

형세(形勢)를 치밀하게 살피면서 때를 기다렸다.


주원장의 행동을 살피던 장사성(张士诚)과 진우량(陈友谅)은

자신들에게 가장 큰 위협이 되고 있는 주원장을 없애버리려 계획했다.


하지만 주원장 역시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그는 부하대장인 화운(华云)을 장사성의 아들로 변장시켜

진우량의 군에 파견해 군사계획을 상의하게 했다.


하지만 진우량측의 대장인 장정변(张定边)에 의해 발각되었다.

장정변은 몇번이나 진우량에게 충고했으나

진우량은 장정변의 건의를 받아들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화김에 장정변의 군권마저 박탈했다.


주원장과 끝을 보려고 작심한 진우량은 전투를 벌였고

결국 진우량의 수십만 대군은 주원장 부대에 의해 얼마 남지 않게 되었다.


진우량 역시 전투에서 화살을 맞고 숨을 거두었다.

따라서 진우량의 아들은 얼마 남지 않은 병사들을 거느리고 주원장에게 항복하고 말았다.


팔면위풍(八面威風)  위풍이 당당하다


큰 승리를 거둔 주원장 부대는 구강구(九江口)에서 술을 마시며 경축했다.

병사들이 마음껏 술판을 즐기게 하려고 주원장은 대장 서달(徐达)과 함께 조용히 그 장소를 나왔다.


편안한 복장으로 갈아입은 그들은 달밝은 밤길을 함께 거닐며 이야기를 나누던 중

강가에서 한쌍의 노 부부가 배를 젓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서달은 정중하게 예의를 갖춰 그 부부에게 강을 건너줄수 없겠느냐고 물었다.

노 부부는 흔쾌히 승낙하고 그들을 태웠다.


배가 강심에까지 도착했을 때 배를 젓던 노인이 갑자기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앞에 있는 대장군은 팔방에 위풍이 당당(八面威風 팔면위풍) 하다네… "


주원장과 서달은 소리내어 기분좋게 웃었다.

그후, 주원장은 마침내 어느 누구도 견줄 수 없는 힘의 구축에 성공하고

대륙의 풍운(風雲)을 질타하는 황제의 자리에 오른다.


남경을 수도로 정하고 명나라의 개국황제가 된 후 

그때 강가에서 만났던 노부부를 찾아 상을 내리고

그때 탔던 배에는 특별히 빨간 칠을 하여 기념으로 남겼다 한다.

팔면위풍(八面威風)은 바로 이 이야기에서 유래된 성구이다.


주원장(朱元璋)


주승(朱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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