宣州謝眺樓餞別校書叔雲 (선주사조루전별교서숙운) / 이백(李白)
<선주의 사조루에서 교서 숙운을 전별하다>


棄我去者(기아거자)

나를 버리고 간 
昨日之日不可留(작일지일불가류)

지난 세월은 머물러 있게 할 수 없고


亂我心者(란아심자)

내 마음을 어지럽게 하는 
今日之日多煩憂(금일지일다번우)

현재의 세월은 번민과 근심이 많도다


長風萬里送秋雁(장풍만리송추안)

만리까지 부는 긴 바람이 가을 기러기를 보내고
對此可以 高樓(대차가이감고루)

이를 대하니 높은 사조루에서 술 마실 만하도다


蓬萊文章建安骨(봉래문장건안골)

봉래(이운)의 문장은 건안의 풍골(강건한 기상)이 있고
中間小謝又 發(중간소사우청발)

중간에 소사(사조)가 있어 또한 맑고도 수려하다 


俱懷逸興壯思飛(구회일흥장사비)

두 사람 다 아주 씩씩한 생각이 하늘을 날고  
欲上 天覽日月(욕상청천람일월)

푸른 하늘에 올라 해와 달을 보고자 한다


抽刀斷水水更流(추도단수수경류)

칼을 뽑아 물을 갈라도 물은 다시 흐르고 
杯銷愁愁更愁(거배소수수갱수)

잔을 들어서 수심을 녹여보지만 수심이 다시 솟아난다


人生在世不稱意(인생재세불칭의)

사람이 이 세상 살면서 세상과 뜻 맞지 않더라도  
明朝散髮弄扁舟(명조산발롱편주)

내일 아침에는 산발한 머리로 작은 조각배를 희롱하련다


중국 - 선성, 사조루
중국 - 선성은 이백이 말년에 머물렀던 안휘성 동남쪽에 있는 도시다.
이곳은 문방사우로 유명한 곳으로 우리가 흔히 말하는 화선지는 이곳 선성에서 나는 종이를 말한다.
선성에는 이백이 존경했던 남조의 시인 사조가 세웠다는 누각 사조루가 있다.


宣州 : 지금의 안휘성 선성 부근으로 산수가 깨끝한 곳으로 유명함.
謝脁樓 : 謝脁는 남북조 시대 제나라의 대표적 시인임. 사조루란 그때 지은 높은 누각으로서 北樓라고도 함.
餞別 : 송별회를 열고 이별함.
校書 : 궁중에 소장된 도서를 정리, 교감하는 일을 했던 비서. 성의 교서랑을 가리킴
者 : ‘~ 것’. 곧 사물을 가리킴.
長風 : 만리 밖까지 부는 바람.
酣 : 술 마시고 즐거워 함.
蓬萊 : 중요한 책을 간직하던 동해의 신선
建安 : 후한 말 獻帝의 연호
中間 : 후한 말 건안 연간과 당나라 중간을 뜻함.
小謝 : ‘사령운’을 대사라 하고 ‘사조’를 소사라 함.
逸興 : 자유분방한 감흥
散髮 : 속세와 의 교류를 끊고 유교적 가치체계에 등을 돌리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것. 후한의 원굉은 당파 싸움이 일자 머리를 풀어헤치고 산 속으로 들어가 세상과의 인연을 끊었다고 함.
扁舟 : 조각 배
宣(베풀 선; 宀-총9획; xuān)
脁(제사 고기 조; 肉-총10획; tiǎo)
餞(전별할 전; 食-총17획; jiàn)
叔(아재비 숙; 又-총8획; shū)
棄(버릴 기; 木-총12획; qì)
昨(어제 작; 日-총9획; zuó)
煩(괴로와할 번; 火-총13획; fán)
憂(근심할 우; 心-총15획; yōu)
雁(기러기 안; 隹-총12획; yàn)
酣(즐길 감; 酉-총12획; hān,hán,hàn)
蓬(쑥 봉; 艸-총15획; péng)
萊(명아주 래{내}; 艸-총12획; lái)
俱(함께 구; 人-총10획; jù,jū)
懷(품을 회; 心-총19획; huái)
攬(잡을 람{남}; 手-총24획; lǎn)
抽(뺄 추; 手-총8획; chōu)
鎖(쇠사슬 쇄; 金-총18획; suǒ)
愁(시름 수; 心-총13획; chóu)
弄(희롱할 농{롱}; 廾-총7획; nòng,lòng)


이 시는 안록산의 난이 일어날 조짐이 보이던 천보(天寶) 13년(753) 가을,

이백이 선주(지금의 안휘성 선성)에 머물 당시 감찰어사로 와 있던 이운(李雲)과 사조루에서 전별하면서 지은 것이다.


사조루는 남제(南齊) 때, 사조(謝眺, 464~499)가 선성 태수로 있을 때 지은 누각이다.
이백은 사조의 시를 몹시 좋아하여 죽을 때도 사조루 근처에서 죽었다.


이 시에서도 사조처럼 이백 자신의 문장도 맑고 구김이 없다고 하였다.

제목에서의 '숙(叔)'은 친척 관계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고 공경의 뜻으로 쓰인 글자이다.


위의 시는 선주(선성)의 사조루에서 교서 벼슬을 지낸 아저씨뻘 되는 이운(李雲)과 전별하면서 쓴 시로,

형식은 물론 내용도 파격적이다. 전별시의 느낌이 없기 때문이다.


이백이 당나라 궁중에서 쫓겨난 후, 10여 년을 떠돌다가 비서성 교서랑 이운을 만나서

그동안의 가슴 속에 응어리진 묵은 감정을 토로하고 있는 듯하다.


당시의 암울한 시대적 배경으로 인해 억제할 수 없는 어제와 오늘의 복잡한 심정이 낭만적으로 표현되었다.

지난 세월은 머물게 할 수 없고 내 마음을 어지럽게 하는 것은 현재의 근심과 번민이 많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전별시인데 자신의 이야기만 하고 있다.

그러면서 곧 떠날 이운은 문장이 뛰어났을 뿐만 아니라 건안 칠자의 풍모와 같은 강건한 기상이 배어 있음을 칭찬하면서

이백 자신의 문장도 남조의 사조에 비유하여, 맑고 구김이 없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백은 자신과 이운의 기상을 낭만적 상상력으로 표현하여 푸른 하늘에까지 올라가서 해와 달을 구경하자고 하였다.

이별의 생각이 안 드는 시이다. 또한 수심은 칼로 물 베기처럼 베고 베도 끝이 없으며

그 수심을 술로 달래보고자 하나 자꾸 더 솟아난다고 하였다.

 이 세상과 자신이 품은 뜻이 맞지 않으면 내가 이 세상을 미련 없이 떠나면 된다고도 하였다. 


이처럼 이백은 이운과의 전별을 통해 자신의 과거와 이별하고 있다.

그래서 내일 아침에는 미련 없이 산발을 하겠다고 한 것이다.


이것은 벼슬에 대한 미련을 버린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백이 서서히 신선의 세계로 다가가고 있다.


사조루(謝眺樓)


안후이성 선성시(宣城市) 선성은 이백이 말년에 머물렀던 안휘성 동남쪽에 있는 도시다.

문방사우로 유명한 곳으로 우리가 흔히 말하는 화선지는 이곳 선성에서 나는 종이를 말한다.

선성에는 이백이 존경했던 남조의 시인 사조가 세웠다는 누각 사조루가 있다.





사조루 앞에 있는 이백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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