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항인 함석헌 평전/[13장] 동서양 고전 넘나들며 통섭하다

2013/02/13 08:00 김삼웅

 

 

1983년 12월 한길사

함석헌이 쓴 <마하트마 간디>에 대해 부문적으로 살펴보자. 간디의 길은 곧 함석헌의 길임을 보게 된다.

나는 꽃들을 사랑하지만 누가 묻기를 어느 꽃이 가장 아름다우냐 하면 대답을 못하고 “글쎄….”하고 만다.
여러 가지 책을 감격을 가지고 가장 읽지만 좋은 책을 골라 추천하라면 “글쎄….” 하다 마는 일이 많다.
인물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다. 그런데 요새 누가 만일 추천을 해달라고 청한다면, 그보다도 청이 오기 전에 내 편에서 권하고 싶은 것은, 간디의 자서전이다. 그것은 물론 내가 그 책을 지금 우리말로 번역하고 있기 때문이겠지만 또 깊이 반성해 봐도 그런 것만이 아닌 것이 있다.
(주석 15)

인용문대로 함석헌은 이 무렵 <간디 자서전>을 번역하였다.
1927년과 1929년 마하데브 데자이가 1, 2권으로 번역한 영문판을 한글로 번역한 것이다. 간디는 1925년에 이 자서전을 썼다. <간디 자서전> 관련해서는 뒤로 미루고, 함석헌의 글을 다시 조명한다.

“어느 사람의 생애는 아니그럴까마는, 특히 간디의 일생은 마치 큰 나무의 자라나는 것을 보는 것 같다. 날 때에는, 모든 도토리가 꼭 끝이 뵈는 도토리 알이듯이, 간디도 각별히 천재적인 면이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자람에 따라 점점 그것이 보통이 아닌 위대함을 보여준다.”

“한마디로 해서 간디는 자기를 개발한 사람이다. 이 의미에서 내가 한 것은 누구든지 할 수 있는 일이다 한 그의 말은 그대로 옳은 말이다. 그러기 때문에 자서전을 읽어가노라면 꼭 소금을 집어 먹는 것 같다. 언제든지 같은 맛이다. 같은 맛인데 싱거운 대목이 하나도 없다.”

“사람은 나기는 물질적인 존재로 나지만 나중에는 정신적인 존재에까지 올라가야만 한다는 것이 힌두교의 올짬이라면, 인도 민족이 간디에게 마하트마라는 칭호를 준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할 것이다. 간디 자신은 물론 그것을 아주 싫어했다. 참의 사람인 그가 그런 우상숭배적인 떠들썩을 좋아할 리 없다. 그러나 역사를 굽어보는 견지에서 한다면 그것은 역시 인도 씨알의 자기 발견의 한 발걸음, 나아가는 한발 걸음이라해야 할 것이다.”

“마하트마란 마하 곧 크다는 말과 아트만, 곧 영혼 혹은 자아라는 말을 합해서 만든 말인데 인도 역사에는 여러 마하트마가 있다. 민중에 의해서 불리워진 이름이지 어떤 제도에서 나온 자위가 아니다. 동양 말로는 대성(大聖)이라 해야 옳을 것이다. 간디의 본명은 모한다스인데 마하트마에 이르렀으니 m에서 M으로 올라간 것이다. 힌두교에서 인생의 목적이 self(小我)에서 Self(大我)의 발견에까지 가야한다는 그대로다.”

“그러면 간디를 마하트마에까지 올라가게 한 원동력은 무엇인가? 그것을 그는 ‘힘’(진리-필자)이라고 했다. 그래서 자서전의 이름을 “나의 힘에 대한 실험”이라고 했다. 그 실험이라는 말이 중요하다. 자기 일생을 하나의 실험으로 보는 데 간디의 간디된 점이 있다.”

“하나 더 말한다면, 그를 몰아 총알에 쓰러지는 순간까지 지칠줄을 모르고 그저 올라만 가게한 것은 씨알에 대한 사람이라는 점이다. 소위 말하는 자신이니, 박애하는 그런 것이 아니다. 간디는 자기와 씨알의 구별이 없다. 자기가 곧 씨알이 돼서 하는 것이다. 그래서 아무도 감히 손을 대지 못하는 불가촉민제도를 철폐할 것을 주장했고, 완전히는 못되어도 제도상으로는 평등의 기초를 놓아 줄 수 있었다.”

“자서전을 읽어가며 놀랍고도 또 눈물로 감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그저 페이지마다 사건마다 씨알, 씨알, 봉사, 봉사로 옷의 실밥처럼 무늬가 놓여있다는 점이다.”
(주석 16)

함석헌은 간디 자서전을 번역하여 <나의 진리 실험이야기 - 간디 자서전>을 1983년에 단행본으로 간행하였다. 여기에는 기왕에 쓴 간디 관련 논설도 한데 묶였다.

여러 군데서 눈시울이 뜨거워 그냥 써 내려갈 수가 없어서 손수건을 찾곤 했다. 특히 말하고 싶은 것은 간디의 인격적 매력이라 할까. 영어로 한다면 참말 스위트한 점이 있다. 선배의 존경을 어쩌면 그렇게 하는지 자기의 위대함은 전면 잊고 그저 어린애처럼 선배를 위한다. 자기의 위대함을 잊으니 정말 위대하지 않겠는가? (주석 17)


주석
15> <씨알의 소리>, 1976년 10월호, 19쪽.
16> <씨알의 소리>, 1976년 10월호, 19~22쪽, 발췌.
17> <씨알의 소리>, 52쪽, 한길사,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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