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항인 함석헌 평전/[13장] 동서양 고전 넘나들며 통섭하다 2

013/02/11 08:00 김삼웅

 

 

함석헌은 오산학교 시절 유영모에게 <노자>를 처음 배웠다. 그리고 험난한 시대를 살아오면서, 또 이질적이라고 할 수 밖에 없는 기독교를 믿고 인도철학을 배우면서, 고난의 삶을 지탱하였다. 항일ㆍ반소ㆍ반독재 투쟁의 질곡에서도 정신적으로는 노ㆍ장의 세계에서 ‘소요유’를 함으로써 균형을 유지하게 되었다.

나도 2차대전이 끝나면서 우리는 동양고전 속에 지혜가 있지 않겠느냐, 자유하는 민중으로 가는데 무엇이 있지 않겠느냐 생각한데서 공맹이나 노장을 파기 시작한 거지요. 될 수 있는 대로 크게 생각하자는 거지요. (주석 10)

함석헌은 가파른 생애만큼이나 정신적ㆍ종교적ㆍ학문적으로도 가파랐다. 그의 시대가 전통사회 - 식민지 - 분단 - 전쟁 - 독재로 점철되면서 이에 대응하는 학문, 정신세계도 변화와 융합을 거듭하게 되었다.

한 연구가의 분석이다.

함석헌은 기독교인이면서 유가와 노장은 물론 불교에까지 넘나들면서 진리관에 있어서는 일종의 진리다원론적인 진리관을 펼친다. 기독교와 노장은 매우 이질적인 것에 속한다. 기독교가 유일절대신을 섬기는 종교라면 노장은 창조적인 신의 개념을 부정하고 ‘자연스럽게 그러한 것(自然而然)’과 ‘스스로 생하고 스스로 화(自生自化)’ 하는 것을 말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함석헌에게는 그것이 공존한다.

함석헌이 진리다원론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은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다. 그는 기독교 집안에서 자라났고 초등학교 때에는 기독교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이런 점에서 그는 대체로 기독교적 인생관을 가지게 된다. 그런데 어렸을 때에는 비록 기독교의 교리가 진리의 전부였다고 생각했는지 모르지만 오산 시절에 종교를 과학적인 자리에서 바라보게 되면서부터 그것에 대한 변화가 일어난다.
(주석 11)

함석헌은 모든 종교는 궁극적으로는 하나이요, 그 알짬되는 진리에 있어서는 국경이나 시대를 초월한다고 보았다. 그래서 진리다원설을 체득한다. 이로 인해 ‘정통기독교’ 측에서는 이단으로 배척했다. 그의 진리관은 기독교적인 유일신관을 뛰어넘고, 진리는 시대에 따라 적합해야 한다고 보았다. 신채호가 말한 “불교의 조선, 유교의 조선, 기독교의 조선”이 아니라, “조선의 불교, 유교, 기독교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과 맞닿는다.

그럼 여기서 다원적으로 생각하라는 것을 노장과 관련지어보자.
함석헌은 1978년 그의 나이 여든이 다 되었을 때 생각하는 방식에서 ‘이것이냐 저것이냐(either -or)'라는 사고방식은 안 된다는 말을 한다. 다원적으로 생각하라는 것이다. 노장의 말을 빌면 무위(無爲)의 정신으로 판단하라고 한다. 이것은 다른 말로 하면 성인도 판단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자기 마음으로 판단한 것이 아니고 백성의 마음을 자기의 마음으로 삼아 판단했다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 말은 함석헌이 노자의 말 가운데 가장 좋아하는 말 중의 하나인 “어진 이는 지어먹은 마음이 없고 씨알의 마음으로 삼는다”를 응용하여 말한 것이다. 함석헌이 말하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다. 즉 전체의 자리에 서 있으면 자기주장만을 고집하지 않으며, 비록 선택을 한다고 해도 그것이 절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주석 12)

1996 한길사. 함석헌 주석

함석헌은 힌두교 경전 중 가장 중요하다는 <바가바드 기타>와 세계에서 가장 긴 시(詩)라고 하는 <마하바라타(Mahabharashtra)>를 번역하였다. 그는 ‘기타’를 번역하면서 간디 이야기를 서문에 썼다. 간디가 어려운 문제에 부딪힐 때마다 이 책을 읽었고, 젊어서 공부할 때 이 책을 외우기 위해 아침마다 세수할 때는 그 한 절씩을 써붙여 놓고 칫솔질을 하는 동안 그것을 속으로 외웠다고 전했다. 그리고 자신이 이 책을 처음 만나게 된 과정을 밝힌다.

 


마음에는 항상 기억하면서도 못 보고 있었는데 6·25전쟁에 쫓겨 부산 가 있는 동안 하루는 헌책 집을 슬슬 돌아보고 있었는데 우연히 어느 집 책 틈에 에브리맨스 문고판에 <바가바드 기타>가 한 권 끼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때의 나의 놀람, 기쁨! 주도 설명도 하나 없으니 옳게 이해했을 리가 없습니다. 그래도 읽고 또 읽으니 좋았습니다. 그 이래 오늘까지 놓지 않고 읽습니다. (주석 13)

‘기타’의 연대는 기원전 4~5세기의 작품으로 알려지고, “신의 노래”라는 뜻을 갖는다고 한다. 힌두교에서는 신이 직접 인간에게 계시해준 경전으로는 알지 않고 화신이나 성자, 예언자가 경전에 주를 달아서 한 가르침으로 한다. 함석헌의 번역으로 두 책이 처음으로 한국에 소개되었고, 우리나라는 이슬람경전의 무지로부터 조금은 벗어나게 되었다.


주석
10> <전집>17, <언로 열려야 시민정신 깬다>.
11> 조민환, <함석헌의 노장이해>, <한국사상과 문화> 제11집, 229쪽, 수덕문화사, 2001.
12> 앞의 책, 231~232쪽.
13> <전집>13, 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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