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항인 함석헌 평전/[12장] 유신타도, 박정희와 전면대결

2013/02/08 08:00 김삼웅

 

 

함석헌에게 ‘씨알’이 정신적ㆍ이데올로기적인 호라면 바보새ㆍ신천옹ㆍ알바트로스는 상대적이라 해도 될 듯하다. 그는 살아온 방식이 바보스러웠다. 항일운동을 하고도 남한에서 애국자연하지 않았고, 반독재투쟁을 하고도 4월혁명과 10ㆍ26사태 뒤에 민주인사연하지 않았다. 특히 반독재투쟁이라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다. 그래서 바보새ㆍ신천옹ㆍ알바트로스로 자처한 호는 적격이다.

1962 일우사

함석헌은 한때 ‘넝마주이’로 자처하기도 하였다. 1961년 8월 평론집 <인간혁명>을 내면서 서문을 <한 넝마주이의 말>이라고 붙였다. 민중의 쓰레기, 역사의 쓰레기를 좁은 넝마주이라는 것이다.

“민중아, 네 가슴은 쓰레기통이지! 못 받을 것 없이 다 받아가지고 거기서 재생을 시켜 보자. 네가 쓰레기통이 되면 나는 넝마주의가 되마. 인생의 넝마, 역사의 넝마 주워보자! 내 말은 쓰레기통 뒤지는 넝마의 말이다.” (주석 23)

넝마주이는 바보새와 알바트로스와 상통하는 것 같다. 함석헌에게 이것들은 한 묶음이다. 그의 ‘넝마철학’을 더 들어보자.

세상은 살게 마련이다. 쓰레기를 더럽다고 버리는 양반 집이 있는가 하면 또 그것으로 살아간다고 사자는 사람이 있다. 주워 모은 쓰레기 사겠다기에 가져다 팔았더니 국가재건최고회의 어느 어른이 나를 “정신분열증 들린 사람 같다”고 했다고 한다. 최고의 자리에서 보니 넝마주의쯤은 미친놈으로 뵈는 것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내 눈에는 사람이란 다 내 친구, 곧 넝마를 주워 먹고 사는 것으로만 보여서 한 말인데, 재건이라 하면서 재생의 진리를 모르나 봐. 아기씨의 고운 살갗이 새우, 조개를 통째 먹고 된 것인 줄 모르고, 영웅 선비의 훌륭한 이론, 옛 사람의 먹고 난 찌꺼기 모아놓은 것인 줄 모르나 봐! 세상 제일 큰 넝마주이, 우리 왕초가 누군지 아느냐? 천지의 쓰레기통을 안고 있는 하나님이다. (주석 24)

좀 뒷날 얘기지만, 1982년 1월 한 출판사는 함석헌의 수상록을 펴내면서 <바보새>란 제목을 부쳤다.
당시는 <씨알의 소리》가 두번째 폐간기였다. 편집위원을 지냈던 법정 스님이 서문을 썼다.

“바보새(信天翁)을 좋아한다는 선생님, 아니 바보새처럼 살아가시는 선생님! 이 수상록은 바보새처럼 살아가려는 많은 씨알들에게 글들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읽겠습니다.” (주석 25)

1961 일우사

함석헌이 1948년 쯤 지은 시 <수평선 너머>에는 이미 알바트로스를 ‘예감’하고 있었다.
바다! 넓이 끝없이 까만
깊이 한없이 아득한! 바다 또 바다! 저 바다 너머는 무엇이 있나?!! 물결
앞에도 앞에도 푸른 푸른 . 옆에도 옆에도 하얀 하얀
물결 또 물결
이 물결 뒤에는 또 무엇이 있나?
(후략)
(주석 26)

함석헌은 노년에 알바트로스를 좋아하고 이 새를 바보새라고 이름하면서 자기를 신천옹이라 하였다.

“유동식 교수의 함석헌의 기독교 중심사상을 소개하는 글에서 신천옹인 자신을 바보새에 비유한 것을 시사하고 있다. 얼핏 보면 알바트로스는 거대한 새지만 바보스럽고 부끄러워하는 연약한 마음의 새이고 독수리 같은 사나운 새는 아니라는 것이다. 바보새는 하늘을 믿고 좋아하며 하늘을 날기를 좋아하고 우주를 바라보며 밤낮을 날고 있는 새로서 죽을 때까지 날다. 떨어지는 고상한 새임을 함선생은 자랑하며 존경하고 귀여워했던 것 같고 이것을 거룩하고 신비스럽게 느끼는 것은 나만의 느낌이 아닐 것이다.” (주석 27)

‘바보’새, 씨알들이 사랑하고 존경하는 사람이었다. 씨알은, 민중은 교활한 출세주의자보다 바보스러운 함석헌을 더 존경하고 사랑하였다.

함석헌은 ‘겉으로가 아니라 속내가 알짬 씨알이고 들사람이다. 권력은 탐하고 부를 추구하고 종교나 교육계의 자리를 원했다면, 그의 능력이나 성실성과 치열함으로써 얼마든지 성취가 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들사람이고 야인정신이기 때문에 세속의 부나 관직 따위는 관심 밖의 일이었다.

반면에 그는 어리숙하고 바보스럽고 타산적이지 못하고 처세에 약하고 세상의 물정을 잘 몰랐다.
그는 자신을 우리말로 바보새, 한자로 신천옹(信天翁), 영어로 알바트로스(allbatros)라고 부르는 ‘바보새’가 되었다. 바보새를 닮았고, 휘호에도 신천을 낙관으로 썼다. 프랑스 <악의 꽃>의 시인 보들레르는 가난한 민중, 소외된 자, 고아, 창녀들을 노래하며 그들의 벗이 된 ‘저주받은’ 시인이다. 보들레르는 알바트로스의 모습을 자신의 자화상으로 그렸다.

뱃사람들은 자주 장난거리로
항해의 벗인 양
뱃길따라 미끄러지는 선박을 뒤쫒는
아주 커다란 알바트로스를 붙잡는다.

간판 위에 막 던져진 순간.
이 창공의 임금님은 힘들게 노를 젓듯
조롱을 받으면서
그 큼직한 흰 날개를 질질 끌어댄다.(후략)
(주석 28)

함석헌이야말로 20세기 알바트로스다. 장자, 노자, 제논, 디오게네스, 플로티노스, 두보, 비용, 김시습, 이탁오, 브르노, 이달, 허균, 스피노자, 소로, 셀리, 하이네, 조르주 상드, 애드가 앨런 포우, 보들레르,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의 혼과 얼과 행동이 전해지고 융합된 바보새이고 신천옹이고 알바트로스다. 


주석
23> <인간혁명>, 머리말, 제일출판사, 1961.
24> 앞과 같음.
25> <함석헌 수상록 바보새>, 12쪽, 동광출판사, 1982.
26> <수평선 너머>, 78쪽.
27> 김해암, <함석헌과 알바트로스의 비유>, <씨알의 소리>, 2010년 9ㆍ10호, 108쪽.
28> 이치석, 앞의 책, 35~36쪽, 재인용, 시대의 창,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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