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항인 함석헌 평전/[13장] 동서양 고전 넘나들며 통섭하다

2013/02/09 08:00 김삼웅

 

 

함석헌은 <씨알의 소리> 1976년 1ㆍ2월호부터 표지 뒷면에 <우리의 내세우는 것>을 제정하여 실었다.
일종의 사시(社是)인 셈인데, 8가지를 들었다. <씨알의 소리>의 나갈 길과 존재 목적을 뚜렷하게 제시한 것이다. 자신의 신념의 일단이기도 하다.

ㅇ 씨알의 소리는 순수하게 씨알 자신의 힘으로 하는 자기 교육의 기구입니다.
ㅇ 씨알은 하나의 세계를 믿고 그 실현을 위해 세계의 모든 씨알과 손을 잡기를 힘씁니다.
ㅇ 씨알의소리는 어떤 종교ㆍ종파에도 속해 있지 않습니다.
ㅇ 씨알의 소리는 어떤 정치세력과도 관계가 없습니다.
ㅇ 씨알은 어떤 형태의 권력 숭배도 반대합니다.
ㅇ 씨알은 스스로가 역사의 주체인 것을 믿고, 그 자람과 활동을 방해하는 모든 악과 싸우는 것을 제 사명으로 압니다.
ㅇ 씨알의 소리는 같이 살기 운동을 펴 나가려고 힘씁니다.
ㅇ 씨알은 비폭력을 그 사상과 행동의 원래로 삼습니다.
(주석 1)

이것은 함석헌의 기본철학이고 사상이기도 하다. 그러면 왜 새삼 통권 50호인 1976년 신년호에 이와 같은 사시를 내걸게 되었을까. 한 해 전에 인혁당 관련 8명의 처형과 긴급조치 9호의 발동, 장준하의 의문사 등을 목격하면서 유신체제와의 정면 싸움을 위해서 자신의 입장을 보다 선명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것은 곧 3ㆍ1민주구국선언사건으로 나타난다.

이즈음 함석헌의 관심은 국내문제에 국한되지 않았다. 1975년 4월 베트남 전쟁이 종식되고, 1976년 1월 중국에서는 실용주의 노선의 주은래가 사망했다. 그래서 중국의 국가주의의 팽창을 우려했다. <씨알의 소리>에 쓴 <세계구원의 꿈>이라는 대논설은 그의 폭넓은 국제정세, 특히 중국관을 투시한다. 40여 년이 되는 오늘에도 생명력이 넘치는 논설이다.

앞을 내다볼 때 가장 걱정되는 것은 중국의 민족주의 혹은 국가주의다.
지금 중국은 공산국가요 아직 세계는 자유주의 대 공산주의의 긴장 속에 있지만 나는 공산주의는 그리 두렵지 않다고 본다. 그것은 하나의 사상인데 사상은 아무리 험악하다 하더라도 멀지 않아 변하는 날이 올 것이다. 두려운 것은 민족감정 혹 국가주의적 횡포다. 그것은 좀해서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사실 지금도 세계 여러 약소민족을 괴롭히는 것은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그들의 국가주의다. 국가라는 이름 아래 민중을 완전히 그 수단으로 삼고 지배하려는 생각이다. 그 점에서는 두 진영이 일반이다. 그런데 중국은 이제 강력한 폭력 밑에 통일이 됐고 남들은 거의 바닥이 난 천연자원을 풍부히 가지고 있는 그동안 오래 서구 세력에 눌렸던 반감은 불같이 솟으려 하기 때문에, 그것이 큰 나라로 강해질 때 주위에 대한 그 교만과 횡포가 얼마나 할까? 지나간 긴 역사에 비추어 보아 거의 확실한 것 아닐까?

그렇다면 그 턱 밑에 있는 우리 운명은 어떤 것일까? 그래서 그것을 일찍이 곤륜산에서 내리 구르는 바위 앞에 놓인 달걀로 비유했던 것이다. 그 점을 생각한다면 남북이 이렇게 갈라져 싸우는 이 민족은 참 어리석은 민족이다. 예로부터 생각있는 선인들이 우리의 소량(小量)과 천식(淺識)을 걱정해 지적해 오지만, 참말 새삼 걱정되는 일이다.
(주석 2)

함석헌은 우리가 살 길은 탈민족주의, 탈국가주의에 앞장 서는 것과 “동남아의 군소국이 그것(공동체-필자)을 만들어야 한다”고 방법론을 제시한다. 함석헌은 이어진 글에서 “우리 이상대로 한다면 세계가 한 나라가 되고 그 다음 각 지역별로 자치하는 공동체가 생겨나는 것이지만, 세계적으로 이루어지기 전 우선 그 중간 과정으로 몇 개의 연방이 있어서 마치 미합중국 모양으로 대소에 관계 없이 한 표의 권리를 가지고 연합해 나가야 할 것” (주석 3)이라 피력한다.

함석헌은 이 책에 김계숙(건국대) 교수의 <영구평화란 가능할 것인가>를 실어 자신의 ‘세계구원의 꿈’을 밑받침하는 현실적 방안을 강구한다. 김계숙은 “인류의 앞날은 몰락이나 평화냐 하는 준엄한 양자택일의 위기에 직면하여 참다운 민주주의적 이념의 구현을 위하여 전인류가 최선을 다할 때에 비로소 영구평화는 가능할 것이다” (주석 4)라고, ‘민주주의적 이념의 구현’을 제시한다. 이것은 함석헌이 추구하는 길이었다.


주석
1> <씨알의 소리>, 1976년 1,2월호, 2쪽.
2> <세계구원의 꿈>, <씨알의 소리>, 1976년 1,2월호, 27쪽.
3> 앞과 같음.
4> 앞의 책, 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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