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항인 함석헌 평전/[11장] <씨알의 소리> 창간, 반유신투쟁의 선봉장

2013/01/31 08:00 김삼웅

 

 

함석헌과 장준하 ⓒ함석헌기념사업회

해외에서 반유신운동을 전개하던 김대중이 1973년 8월 일본 도쿄에서 한국 중앙정보부 요원들에 의해 납치되어 서울로 끌려오고, 1975년 8월 17일에는 박정희와 줄기차게 싸워 온 장준하가 의문사를 당하였다.
사망 당시부터 그의 죽음을 둘러싸고 각종 의혹이 제기되어오다가, 2012년 가을 묘소 이장 과정에서 오른쪽 두개골 부위가 지름 6cm 크기 원형으로 함몰돼 있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타살 의혹이 더욱 짙어진 것이다.

함석헌에게 장준하는 동지와 사제관계를 뛰어넘는 특수한 관계였다.
그의 죽음은 반신이 찢어지는 아픔이고 통분이었다. 그는 반독재 투쟁의 든든한 대들보이고, 자유언론운동의 맹장이었다. 함석헌은 그의 자택에서 열린 발인예배를 마치고 <장준하 만세>, <대한민국 만세>, <민주주의 만세>를 선창하고, 조문객들이 복창하였다. 장례식에서 만세삼창이 터진 것은 전무후무의 일이었다. 함석헌은 장준하의 죽음을 이런 방식으로 표시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함석헌은 <씨알의 소리>에 <아 장준하!>를 썼다.

장준하가 죽었다! 죽었다? 이 한 마디가 이 8월 노염의 무더위 공기 마냥 부처도 부처도 또 오고 또 와서 가슴을 누릅니다.

사실 나는 이 몇 해 동안을 하루도 장준하의 죽음을 생각 아니한 날이 없습니다. 그것은 여러분께서도 짐작이 가실 것입니다. 그런데 그 미리 다 알고 기대하고 각오했던 것이 막상 터지고 보니 청천벽력 같기만 합니다.(…)
꼭 있어야 하는 사람인데 왜 갖을까?
그 의지의 사나이가 그것을 왜 못 물리쳤을까?
이날껏 나하고 한 약속을 한번도 아니 어긴 이가 이번은 왜 이렇게 져버리고 말까?
그를 한 번 내세워보고 싶었는데, 그가 이 나라의 정치를 맘껏 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내가 흙덩이가 돼서라도 드디어 올라서게 해주고 싶었는데!(…)

아, 장준하야! 네가 나로 생각게 하는구나. 내가 생각을 파고 파빈 무덤을 발견하는 날 너를 우리가 다 같이 누리는 영원한 나라의 영광의 자리에 앉히리라….

생각해야 합니다. 되찾아야 합니다. 죽은 가운데서 부활시켜 영원히 말하는 자를 만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죽은 장준하를 통해 말씀하시는 것을 밝히 바로 알아들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주석 21)

 


2012년 8월 1일 검사한 고 장준하 선생의 유골. 오른쪽 귀 뒤쪽 두개골에 원형으로 함몰된 흔적이 있다. ⓒ장준하기념사업회 제공

 

함석헌은 뒷날 장준하의 죽임과 관련 김대중에게 이렇게 말했다.

“장준하는 김대중과 화해한 것이 죽음을 불러왔어. 저놈들이 둘이 합치면 어찌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지. 둘 중 하나는 죽어야만 했을 것이야.” (주석 22)


주석
21> <씨알의 소리>, 1977년 7,8월호, 1~7쪽, (발췌)
22> <김대중 자서전 1>, 349쪽, 삼인,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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