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항인 함석헌 평전/[11장] <씨알의 소리> 창간, 반유신투쟁의 선봉장

2013/01/27 08:00 김삼웅

 

 

3선 개헌이 날치기로 처리되고 박정희의 장기집권이 가시화되면서 언론은 급속히 위축되었다. 해가 바뀌어 1970년이 되었다. 이 해는 3선 개헌의 상처가 아직 아물기 전이며, 이듬해로 다가온 대통령ㆍ국회의원 양대 선거를 앞두고 정치ㆍ사회적으로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되고 있었다.

1970년 6월 2일 새벽 1시 50분쯤 중앙정보부 요원과 종로경찰서 소속 사복 경찰 30여 명이 종로 관훈동 신민당중앙당사를 기습하여 당기관지 10만 7백부와 옵셋 아연판 4장을 압수했다. 이와 함께 <사상계> 사장 부완혁과 편집장 김승균, <민주전선> 출판국장 김용성 그리고 시인 김지하를 반공법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민주전선>이 6월 1일자 (제40호)에 김지하의 담시 <오적>을 게재했다는 이유로 정부가 제1야당 당사를 심야에 철문을 뜯고 들어가 당기관지를 압수하고 관계자들을 구속한 것이다. 전대미문의 폭거였다. 당초 <오적> 시는 <사상계> 5월호에 실렸던 것을 <민주전선>이 ‘군부’ 관련 부문을 빼고 전재한 것이다. <사상계>는 시판을 하지 않는 조건으로 ‘묵계’하여 넘어갔던 것이다.

박정희 정권이 <오적>을 이유로 <민주전선>을 덮친 데는 달리 이유가 있었다. 국회에서 행한 야당의원들의 발언을 실었기 때문이다. 당시 정가를 뜨겁게 달구었던 ‘정여인 사건’에 대해 조윤형 의원이 폭로한 <눈물의 씨앗>등이었다. 시에서 인용된 ‘승일’이는 정여인이 낳은 사생아였다.

아빠가 누구냐고 물으신다면
OOO의 미스터 X이라고 말하겠어요
그대가 나를 죽이지 않았다면
영원히 우리 만이 알았을 것을
죽고보니 억울한 마음 한이 없소.

승일이가 누구냐고 모르신다면
고관의 씨앗이라고 말하겠어요
그대가 나를 죽이지 않았다면
그렇게 모두가 미웁지 않았을 것을
죽고 보니 억울한 마음 한이 없소.
(주석 12)

여기서 묵은 얘기를 꺼낸데는 까닭이 있다.
제1야당 당사를 수색하고 당기관지를 압류해가는 상황에서 사회와 언론은 더욱 위축되었고, 이 사건에 대해 비판이 사라졌다. 지식인들이 말문을 닫았다. <민주전선>은 제41호에 함석헌을 인터뷰하며 한 쪽 절반 이상을 실었다. 정당 기관지로서는 이례적이었다.

<민주전선>은 “민주전선의 압수사건을 계기로 새삼 언론의 사장(死藏)이 뼈아프게 거론된다. 지금은 정치권력의 교묘한 간섭으로 글 쓸 지면을 사실상 완전 봉쇄당한 함석헌옹도 민주전선의 위기에 크게 분노하며 본기자와 만나 ‘언론의 게릴라전’을 비롯하여 모든 정신적 투쟁을 강화할 시기가 왔다고 역설했다.”며 회견 내용을 실었다. 요지다.

“한밤중에 기관원들이 신민당사에서 민주전선을 압수해간 건 일제 때에도 없던 비겁하고 파렴치한 처사야. 그때는 차라리 검열제도라도 있었지.”

“도둑촌 같은 특권층을 만드는 것이 이적이지 그런 사실을 고발한 자가 이적일 수 있느냐고 자기들끼리도 그러더라는 거야.”

“민주전선이 <오적>때문에 압수당했다는 건 구실에 불과할 것이고 내용인 즉 다른 글에 있는 것 아니겠어?”

“근본들은 잘못됐어도 왜 좀 잘해보지 않고 억지로 완력과 폭력으로 억누르는 거야. 국민을 깔보지 말아야 해. 정권은 망해도 또 서지만 씨알을 억눌려 숨통을 막아버리면 끝장이야.”

“온통 세상을 독재의 장막에 몰아넣고 백만 년 해먹자는 건가. 역사는 냉엄한 고리대금업자야. 받아낼 것은 받아내고 찾아낼 것은 찾아내며 빼앗을 건 빼앗아야 돼.”

“언론이 옳게 쓰지 못하고 비판적인 압력을 받을 곳이 없으니 거칠 것 없이 날뛰는 것 아니겠어? 고쳐야지, 언론부터 고쳐야지. 나도 보고만 있을 수 없어 <씨알의 소리>라는 책을 만들어 옳은 소리 해보자고 했더니 엉뚱한 시비 만들어 폐간시켰어. 하늘 무서운 줄 모르더군.”

“지식인 중에 안 넘어간 사람 별로 없지만 때는 아주 어려운 시기야. 불의의 시대에 의인이 갈 곳은 감옥이라고, 몇 해 전에 말했지만 그게 참다운 생각이라면 벌써 감옥에 갔어야 했는데 못 간건 불행이야. 하긴 철창에 둘러 쌓인 곳만이 감옥은 아니지.”

“수양대군의 폭정에 억지 미치광이가 된 매월당 김시습은 한양 거리에다 대낮에 오줌을 갈기며 이 백성이 무슨 죄가 있소” 하고 통곡했다더군. 미친놈이 필요해. 미친 놈의 세상에 미치지 않는 놈이 미친놈이니까.”
(주석 13)


주석
12> <민주전선>, 1970년 6월 1일치.
13> <민주전선>, 제41호, 1970년 6월 22일치, 인터뷰어 - 김삼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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