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1/12 08:00 김삼웅
귀국한 함석헌은 정부의 굴욕적인 한일회담의 반대 투쟁에 나섰다.
7월 8일 오산학교 강당에서 강연한 것을 시작으로 그리고 언론 기고를 통해 정부의 실정을 격렬하게 비판하면서 국민에게 호소하였다.
함석헌이 1963년 7월 16일치 <조선일보>에 쓴 <3천만 앞에 울음으로 부르짖는다>는 글은 큰 파문을 일으켰다. 당시만 해도 이 신문은 <동아일보>와 함께 박정희의 군정연장을 반대하는 의미에서 ‘백지 사설’을 내는 등 언론의 상도를 걷고 있었다. 아직 박정희의 권력체제가 굳혀지기 전이다. 한 쪽을 다 차지한 이 논설은 ‘박정희님에게! 남은 길은 공약 준수뿐’, ‘정치인들에게! 민중은 다 알고 있다’, ‘지식인들에게! 모두 진정을 말하라’, ‘군인들에게! 정치가 혼란할수록 밖을 지켜주오’, ‘학생들에게! 역사의 대국(大局)을 내다 보라’는 주제로 전개되었다.
먼저 박정희에게는 “내가 당신을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라고도, 육군대장이라고도 부르지 않는 것을 용서하십시오”라 전제하고, 여러 가지 잘못 중에 쿠데타를 한 것이 가장 큰 잘못이라고 질타했다. 이어서 “당신이 정말 나라를 사랑한다면 이제 남은 오직 하나의 길은 혁명공약을 깨끗이 지킬 태세를 민중 앞에 보여주는 일이다”고 권고했다.
지식인, 종교인, 언론인들에 대한 질책은 등에 식은 땀이 날 정도다.
지식인들 이제 어쩌렵니까? 종교가들 여러분 마음은 가륵한 줄 압니다마는 생각이 너무 좁습니다. 삼천만이 벙어리가 되고 앉은뱅이가 되는 데 기도는 무슨 기도를 한다고 불단, 성당, 기도원, 바위 밑에 중얼거리고 있는 것입니까? 나라의 구원을 내놓고 또 무슨 구원이 있단 말입니까?
신문인들 왜 그리 비겁합니까? 닭은 길러서 새벽 울음 한 번 듣자는 거요, 돼지는 먹여서 제삿날 한 번 잡자는 거요, 신문 잡지는 해서 필요한 때에 한 마디 하자는 것입니다. 새벽이 와도 울지도 않고 제삿날은 왔는데 도마위에 올라오기 싫다는 닭이나 돼지가 못 쓸 거라면 말을 할 때에 하지 않는 언론인도 못 쓸 것일 것입니다.
함석헌의 군인들에게 바라는 바는 간절했다.
“제발, 여러분의 자리를 한 순간도 떠나지 마십시오. 만일 한 때라도 떠난 분이 있거든 즉시로 돌아가주십시오. 요새 정국이 어지러운 틈을 타서 정치에 관계하려는 일부 그릇된 생각을 하는 군인이 있으면 그것은 큰 잘못입니다. 그러다가 내외의 환이 한꺼번에 일어납니다.”
학생들에게는 정부의 분열책에 흔들리지 말 것을 당부한다.
“대적이 노리는 것은 학원의 분열입니다. 하나되면 강하고 갈라지면 자멸하기 때문입니다. 분열은 어디서 오나? 순일치 못한 데서 옵니다. 저들은 여러분의 영웅심을 도박하려 할 것입니다. 권세와 이익을 약속하려 할 것입니다. 쓸데없는 이론의 대립을 시키려 할 것입니다. 가장 속기 쉬울 것은 감상적인 애국심을 가지고 흥분시키는 일입니다. 속지 마십시오.”
함석헌이 이 글에서 정작으로 하고 싶었던 대상은 민중이었다.
여러분 무조건 뭉쳐라. 복종해라. 하는 독재자의 말에 속지 마십시오. 우리는 개성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가 돼야 하지만 그 하나는 분통에 들어가서 눌려서 똑같은 국수발로 나오는 밀가루 반죽같은 하나는 아닙니다. 우리의 하나는 개성으로 하는 하나입니다. 3천만에서 2천 9백 9십 9만 9천 9백 99가 죽는 일이 있어도 남은 한 알 속에서 다시 전체를 찾고 살려낼 수 있는, 하나 속에 전체가 있고 전체 속에 하나가 있는 그런 개성적인 하나입니다.(…)
그럼 생각합시다!
그럼 꿈틀거립시다!
그럼 겁을 내지 말고 속에 있는 대로를 외칩시다!
자, 이젠 일어섭시다! 일어섭시다!
<조선일보>에 쓴 함석헌의 글이 국민적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반향이 뜨겁게 나타나자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 신사훈이 같은 신문(7월 26~8월 2일)에 7회에 걸쳐 반박하는 글을 썼다.
<함석헌 선생 사상을 비판하면서>란 제목부터가 이른바 ‘사상검증’이었다. 그는 함석헌의 주장을 신랄한 어조로 반박하면서 “함석헌의 사상은 공산주의자에게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고 용공으로 몰았다. 신사훈은 4월혁명 당시 학생들로부터 퇴진 요구를 받은 어용교수였다.
또 정부대변인 임성희 공보부장관은 같은 신문에 함석헌이 “종교의 탈을 쓰고 일부 정파의 앞잡이 노릇을 하고 있는 사람의 무책임한 선동”이라고 매도하였다. 정부의 공식 논평인 것이다. 사심없는 함석헌의 충정어린 비판을 어용교수와 정부대변인이 반박을 한 것이지만, 박정희 정권의 저급한 수준만 보여주었을 뿐이다.
함석헌의 <조선일보> 기고문이 엄청난 파문을 일으키자 이번에는 <동아일보>가 원고를 청탁했다. 자신들의 손으로는 박정희의 불의를 지적하지 못하고 함석헌의 글을 빌리고자 한 것이지만, 함석헌은 망설이지 않았다. <동아일보>에는 8월 16일치에 <왜 말을 못하게 하고 못 듣게 하나 - 정부 당국에 들이대는 말>로, 역시 한 면 전체에 실렸다. 정부는 이 무렵 함석헌의 강연회를 원천적으로 봉쇄했다. 옥내 집회는 장소를 빌려주지 못하게 하고, 옥외집회는 청중의 참여를 막았다. 함석헌은 이 글에서 당국의 강연 방해 사례를 일일이 고발했다. 그리고 ‘본론’을 편다.
묻노니, 정치당국 여러분, 낡은 정치의 부패와 무능을 한 번 쓸어버리고, 경제부흥을 첫째로 해야겠다고 했고, 약속의 2년이 다 지난 오늘엔 그 기다렸다던 “참신하고 양심적인 정치가”는 바로 다른 사람 아닌 ‘나’라고 해서 덧눌려 앉아 정권을 쥐려고 하는 여러분 당신들은, 이 나라를 어떤 나라로 알며 이 민중을 무엇으로 아나.(…)
당신들은 툭하면 선동이라 하고 유언비어라 하지만, 가슴에 손을 얹고 한번 생각해 봐. 누가 과연 민중의 가슴 속에 불이 일어나게 만들며, 누가 정말 터무니없는 쓸데없는 말을 해 돌리나 당신들은 그것도 모르리만큼 마음이 어두운가. 아니라면 어떤 한 문제만 너무 가까이 보기 때문에 전체의 대세가 가리워져 그러는 것 아닐까. 붇는 불을 끄자는 것이 어리석은 짓이라면 말이 듣고 싶고 말을 하고 싶어 몰려드는 민중에 장소를 아니 주고 주최자에게 음성적인 압력을 더해서 헤쳐 보자는 것은 더 어리석지 않은가.(…)
당신들 마음엔 언론을 활짝 열어 놓으면 큰일이 날 것 같다, 당신들은 왜 그렇게 반동적인 자리에 스스로 서는가. 왜 그렇게 스스로 압박자의 심리를 가지는가. 큰 일이 난다 해도 그것은 당신들이 지키고 있는 현 정부가 큰 일이 나면 낫지, 이 나라가 큰 일이 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당신들이 만든 정부가 곧 나라라고 그런 스스로 속고 남을 속이는 말 마. 그것은 루이 16세나 히틀러 같은 것들이나 할 소리다.(…)
나라를 위해 사회의 질서를 위해 언론을 취체한다는 그런 약은 소리 마. 나라가 뉘 나란데. 당신들이 무슨 걱정을 해. 공산당의 선전이 틈타겠으므로 그런다고 하지만, 그것도 맞지 않는 구실이다. 나는 서독에 가 봤어도, 국경에 경비원 하나 서 있지 않고, 길거리에 공산당 막으라는 표어 따위, 라인강가에 기적을 일으켰다면서도 ‘재건’이라는 구호 어디다 써붙인 것 못 보았다.(…)
다시금 정부 당국에 문노니, 당신들은 왜 우리들의 자유를 뺏고 짓밟는가. 우리는 목숨을 사랑하고, 가정을 지키고 싶고, 사회의 안녕질서를 유지하고 싶기에 참을 수 있는 데 까지 참을 것이다. 그러나 참아도 참아도 대답이 아니 나오고 맨 것이 풀리지 않는 한 우리는 종시 노하고야 말 것이다.
말 못하는 민중이라 업신여기지 마. 어리석어 그런 것 아니다. 착해서 그러는 거지. 무지해 그러는 거 아니다. 도리가 우리 속에 있어 그러지. 겁나서 가만 있는 것 아니다. 크기 때문에 그러는 거지.
이 민중을 뒤에 두고 나는 정부 당국에 묻는다. 민중이 내 말을 듣고 싶어 하는데, 왜 내가 말하는 것을 방해하나. 대답하라. 천하에 내놓고 대답하라. 대답이 나오는 대 까지 나는 물을 것이다.
7월 8일 오산학교 강당에서 강연한 것을 시작으로 그리고 언론 기고를 통해 정부의 실정을 격렬하게 비판하면서 국민에게 호소하였다.
함석헌이 1963년 7월 16일치 <조선일보>에 쓴 <3천만 앞에 울음으로 부르짖는다>는 글은 큰 파문을 일으켰다. 당시만 해도 이 신문은 <동아일보>와 함께 박정희의 군정연장을 반대하는 의미에서 ‘백지 사설’을 내는 등 언론의 상도를 걷고 있었다. 아직 박정희의 권력체제가 굳혀지기 전이다. 한 쪽을 다 차지한 이 논설은 ‘박정희님에게! 남은 길은 공약 준수뿐’, ‘정치인들에게! 민중은 다 알고 있다’, ‘지식인들에게! 모두 진정을 말하라’, ‘군인들에게! 정치가 혼란할수록 밖을 지켜주오’, ‘학생들에게! 역사의 대국(大局)을 내다 보라’는 주제로 전개되었다.
먼저 박정희에게는 “내가 당신을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라고도, 육군대장이라고도 부르지 않는 것을 용서하십시오”라 전제하고, 여러 가지 잘못 중에 쿠데타를 한 것이 가장 큰 잘못이라고 질타했다. 이어서 “당신이 정말 나라를 사랑한다면 이제 남은 오직 하나의 길은 혁명공약을 깨끗이 지킬 태세를 민중 앞에 보여주는 일이다”고 권고했다.
지식인, 종교인, 언론인들에 대한 질책은 등에 식은 땀이 날 정도다.
지식인들 이제 어쩌렵니까? 종교가들 여러분 마음은 가륵한 줄 압니다마는 생각이 너무 좁습니다. 삼천만이 벙어리가 되고 앉은뱅이가 되는 데 기도는 무슨 기도를 한다고 불단, 성당, 기도원, 바위 밑에 중얼거리고 있는 것입니까? 나라의 구원을 내놓고 또 무슨 구원이 있단 말입니까?
신문인들 왜 그리 비겁합니까? 닭은 길러서 새벽 울음 한 번 듣자는 거요, 돼지는 먹여서 제삿날 한 번 잡자는 거요, 신문 잡지는 해서 필요한 때에 한 마디 하자는 것입니다. 새벽이 와도 울지도 않고 제삿날은 왔는데 도마위에 올라오기 싫다는 닭이나 돼지가 못 쓸 거라면 말을 할 때에 하지 않는 언론인도 못 쓸 것일 것입니다.
함석헌의 군인들에게 바라는 바는 간절했다.
“제발, 여러분의 자리를 한 순간도 떠나지 마십시오. 만일 한 때라도 떠난 분이 있거든 즉시로 돌아가주십시오. 요새 정국이 어지러운 틈을 타서 정치에 관계하려는 일부 그릇된 생각을 하는 군인이 있으면 그것은 큰 잘못입니다. 그러다가 내외의 환이 한꺼번에 일어납니다.”
학생들에게는 정부의 분열책에 흔들리지 말 것을 당부한다.
“대적이 노리는 것은 학원의 분열입니다. 하나되면 강하고 갈라지면 자멸하기 때문입니다. 분열은 어디서 오나? 순일치 못한 데서 옵니다. 저들은 여러분의 영웅심을 도박하려 할 것입니다. 권세와 이익을 약속하려 할 것입니다. 쓸데없는 이론의 대립을 시키려 할 것입니다. 가장 속기 쉬울 것은 감상적인 애국심을 가지고 흥분시키는 일입니다. 속지 마십시오.”
함석헌이 이 글에서 정작으로 하고 싶었던 대상은 민중이었다.
여러분 무조건 뭉쳐라. 복종해라. 하는 독재자의 말에 속지 마십시오. 우리는 개성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가 돼야 하지만 그 하나는 분통에 들어가서 눌려서 똑같은 국수발로 나오는 밀가루 반죽같은 하나는 아닙니다. 우리의 하나는 개성으로 하는 하나입니다. 3천만에서 2천 9백 9십 9만 9천 9백 99가 죽는 일이 있어도 남은 한 알 속에서 다시 전체를 찾고 살려낼 수 있는, 하나 속에 전체가 있고 전체 속에 하나가 있는 그런 개성적인 하나입니다.(…)
그럼 생각합시다!
그럼 꿈틀거립시다!
그럼 겁을 내지 말고 속에 있는 대로를 외칩시다!
자, 이젠 일어섭시다! 일어섭시다!
<조선일보>에 쓴 함석헌의 글이 국민적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반향이 뜨겁게 나타나자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 신사훈이 같은 신문(7월 26~8월 2일)에 7회에 걸쳐 반박하는 글을 썼다.
<함석헌 선생 사상을 비판하면서>란 제목부터가 이른바 ‘사상검증’이었다. 그는 함석헌의 주장을 신랄한 어조로 반박하면서 “함석헌의 사상은 공산주의자에게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고 용공으로 몰았다. 신사훈은 4월혁명 당시 학생들로부터 퇴진 요구를 받은 어용교수였다.
또 정부대변인 임성희 공보부장관은 같은 신문에 함석헌이 “종교의 탈을 쓰고 일부 정파의 앞잡이 노릇을 하고 있는 사람의 무책임한 선동”이라고 매도하였다. 정부의 공식 논평인 것이다. 사심없는 함석헌의 충정어린 비판을 어용교수와 정부대변인이 반박을 한 것이지만, 박정희 정권의 저급한 수준만 보여주었을 뿐이다.
1963년 7월 22일 사상계 주최 함석헌선생 귀국 시국강연회
묻노니, 정치당국 여러분, 낡은 정치의 부패와 무능을 한 번 쓸어버리고, 경제부흥을 첫째로 해야겠다고 했고, 약속의 2년이 다 지난 오늘엔 그 기다렸다던 “참신하고 양심적인 정치가”는 바로 다른 사람 아닌 ‘나’라고 해서 덧눌려 앉아 정권을 쥐려고 하는 여러분 당신들은, 이 나라를 어떤 나라로 알며 이 민중을 무엇으로 아나.(…)
당신들은 툭하면 선동이라 하고 유언비어라 하지만, 가슴에 손을 얹고 한번 생각해 봐. 누가 과연 민중의 가슴 속에 불이 일어나게 만들며, 누가 정말 터무니없는 쓸데없는 말을 해 돌리나 당신들은 그것도 모르리만큼 마음이 어두운가. 아니라면 어떤 한 문제만 너무 가까이 보기 때문에 전체의 대세가 가리워져 그러는 것 아닐까. 붇는 불을 끄자는 것이 어리석은 짓이라면 말이 듣고 싶고 말을 하고 싶어 몰려드는 민중에 장소를 아니 주고 주최자에게 음성적인 압력을 더해서 헤쳐 보자는 것은 더 어리석지 않은가.(…)
당신들 마음엔 언론을 활짝 열어 놓으면 큰일이 날 것 같다, 당신들은 왜 그렇게 반동적인 자리에 스스로 서는가. 왜 그렇게 스스로 압박자의 심리를 가지는가. 큰 일이 난다 해도 그것은 당신들이 지키고 있는 현 정부가 큰 일이 나면 낫지, 이 나라가 큰 일이 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당신들이 만든 정부가 곧 나라라고 그런 스스로 속고 남을 속이는 말 마. 그것은 루이 16세나 히틀러 같은 것들이나 할 소리다.(…)
나라를 위해 사회의 질서를 위해 언론을 취체한다는 그런 약은 소리 마. 나라가 뉘 나란데. 당신들이 무슨 걱정을 해. 공산당의 선전이 틈타겠으므로 그런다고 하지만, 그것도 맞지 않는 구실이다. 나는 서독에 가 봤어도, 국경에 경비원 하나 서 있지 않고, 길거리에 공산당 막으라는 표어 따위, 라인강가에 기적을 일으켰다면서도 ‘재건’이라는 구호 어디다 써붙인 것 못 보았다.(…)
다시금 정부 당국에 문노니, 당신들은 왜 우리들의 자유를 뺏고 짓밟는가. 우리는 목숨을 사랑하고, 가정을 지키고 싶고, 사회의 안녕질서를 유지하고 싶기에 참을 수 있는 데 까지 참을 것이다. 그러나 참아도 참아도 대답이 아니 나오고 맨 것이 풀리지 않는 한 우리는 종시 노하고야 말 것이다.
말 못하는 민중이라 업신여기지 마. 어리석어 그런 것 아니다. 착해서 그러는 거지. 무지해 그러는 거 아니다. 도리가 우리 속에 있어 그러지. 겁나서 가만 있는 것 아니다. 크기 때문에 그러는 거지.
이 민중을 뒤에 두고 나는 정부 당국에 묻는다. 민중이 내 말을 듣고 싶어 하는데, 왜 내가 말하는 것을 방해하나. 대답하라. 천하에 내놓고 대답하라. 대답이 나오는 대 까지 나는 물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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