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항인 함석헌 평전/[9장] 민권투쟁의 중심에 서다

2013/01/14 08:00 김삼웅

 

 

함석헌은 박정희 정권의 반역사적, 반민족적인 굴욕회담의 강행에 믿을 것은 국민의 힘밖에 없다고 판단하였다. 그래서 절절한 심경으로 고난의 역사 속에서도 민족혼을 이어온 국민의 정신을 일깨운다.

돌이켜 생각해 보라. 그렇게도 모르나? 이 4천년 넘는 역사가 무슨 역사인가? 결국 고난의 역사가 아닌가? 왜 고난인가? 제 정신 하나 부족했기 때문에 당한 고난이요, 욕 아닌가? 그러나 고난을 당하면서도 아주 망하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부족은 하지만, 그 때문에 늘 욕은 봤지만, 그래도 제 정신을 아주 잃지는 않고 지켜왔기 때문 아닌가? 4천년 동안 먹고 입고 놀아온 것이 귀한가? 죽을 고생을 하면서도, 중국에 압박을 받아도 중국 사람이 못 되고, ‘만주 되놈’의 침입을 받으면서도 되놈이 못되며, ‘왜놈’의 짓밟음을 입으면서도 왜놈이 못돼 버린 그것, 그 무엇, 그 정신이 귀하지 않은가? 미약은 하지만 그래도 이것이 보배요, 실날 같지만 그래도 이것이 생명 아닌가? 실로 우리가 해방을 당한 것은 우리 생활이 풍부해서도 아니요 우리 기술이 높아서도 아니다. 거지같은 생활이요 뒤떨어진 기술이지만, 그래도 한국 사람이란 정신 하나가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주석 31)

함석헌은 정치군부세력과 이에 놀아나는 정치인들의 행태를 신랄하게 규탄한다. 그는 이 글을 쓰면서 잠을 이루지 못했을 것 같다.

그런데 이제 이 나라의 생명이 되는 이 정신은 잊고 그것을 일부러 짓밟으면서 남의 세력을 힘입어 부흥을 꾀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또 일부 물욕과 권세에 미친, 민족과 역사를 모르는 정치인이란 것들은 비록 더럽고 옅은 이기주의에서 그렇다 하더라도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하는 민중이 그것을 능히 막아내지 못하고 주춤하고 서서 걱정만 하는 것은 얼마나 비겁하고 못생긴 일인가?

함석헌은 1965년 8월 30일 재야ㆍ종교계ㆍ학계ㆍ문인ㆍ예비역 장성 등 각 분야 지도급 인사 30여 명이 결성한 조국수호국민협의회의 상임대표로 선출되어 박정권의 굴욕회담 반대 투쟁을 지도하였다. 정부에 굴욕회담을 중지시킬 것을 호소했으나 막무가내였다. 오히려 군대와 경찰을 동원하여 반대시위에 나선 학생들을 무자비하게 진압했다.

서울법대생 90여 명이 단식에 들어갔다. 졸도하는 학생이 생겼다. 함석헌은 ‘신을사조약’으로 명명된 한일협정을 정치문제가 아닌 하나의 죄악으로 인식하고 단식을 시작했다. 비폭력 투쟁의 방법은 단식밖에 달리 길이 없다고 보았다. 이번에도 삭발을 하고 성경을 읽으면서 기약없는 단식에 들어갔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단식의 절박한 이유를 밝혔다.

오늘부터 문제의 해결이 나는 때까지 단식을 하기로 했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내가 생각하여 얻은 뜻을 여러분 앞에 간단히 설명하겠습니다.

첫째, 내 죄를 회개함으로써 내 혼을 맑히기 위해서입니다. 둘째, 다시 한 번 진정 겸손한 마음으로 정부 당국에 대하여 정성껏 반성을 독촉해보기 위해서입니다. 근본 문제는 내 죄에 있습니다.(…) 나는 죄인입니다. 미안한 말입니다만 그동안 여러분은 제게 유언 중 무언 중 민중을 대표한 발언권을 허해주었습니다.(…) 그러나 내 말은 힘이 없었습니다. 옳은 듯 하면서 악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의도 씨알 스스로의 의요, 죄악도 씨알 스스로의 죄악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가 살아나는 길은 진정한 국민운동에만 있습니다.
(주석 32)

한 연구가는 함석헌의 단식투쟁을 두고 “단식이라는 희생적 저항권을 강력한 도덕적 무기로 삼고, 굴욕외교에 대한 민족적 수치를 개인의 죄 문제로 접근함으로써 민중을 역사의 주체로 자각시키기 위한 자신의 도덕적 입헌성을 확고하게 만들어 놓을 줄 아는 정치력을 발휘하였다.”고 분석하고 “그것은 역사를 도덕적 의미의 행위로 인식한 자신의 역사관에 충실한 태도이기도 하다.” (주석 33)고 평가했다.

어느 시대나 권력의 비호를 받은 어용 곡필배가 있다. 언론계나 학계에서 많이 서식한다. 함석헌의 신문 연재가 끝나기가 무섭게 여기저기에서 중상모략하는 글이 쏟아졌다. 7월 26일부터 4일간 <서울신문>에 <억지울음 속에 숨은 음모 - 함석헌 씨의 ‘울음으로 부르짖는다’를 박함>이란 글이 연재되었다. 박달수라는 가명으로 쓰인 이 글은 반지성, 비상식의 인신공격이었다.

‘박달나무’ 또는 ‘박달몽둥이’를 뜻하는 익명의 박달수는 언론계의 중진 모씨로 알려졌으나 끝내 실체는 드러나지 않았다.

‘박달나무’는 “협조와 건설을 부르짖는 이 나라에서 분열과 파괴를 노리는 씨의 악랄한 매명 선동, 안정과 긍정을 찾고 있는 이 날 이 겨레에 불안과 부정을 던져주는 씨의 너무나 역리적인 소영주의의….”라고 매도하고, 그는 함석헌이 “노망하여 명예욕을 채워보고자” 날뛰고 있다고 비난했다.
(주석 34)


주석
31> 앞의 책, 22~23쪽.
32> <단식에 앞서 동포에게 드립니다>, <동아일보>, 1965년 7월 1일치.
33> 이치석, 앞의 책, 498쪽.
34> <서울신문>, 1963년 7월 26~30일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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