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항인 함석헌 평전/[5장] 민족정신 세례, 저항의 젊은 시절

2012/12/13 08:00 김삼웅

 

 

함석헌은 뒷날 두고두고 자기는 오산의 교육을 받지 않았더라면 사람구실을 못했을 것이라고 고백하였다. 남강ㆍ도산ㆍ고당은 민족적 지도자인 한편 오산학교에 깊이 관계하여 오산을 민족ㆍ정신교육의 요람으로 만들었다. 함석헌의 <오산학교> 사랑을 들어보자.

칼과 활로 하는 혁명이 껍데기의 혁명이라면, 속알의 혁명은 교회와 학교를 통해 하는 정신의 운동이다. 홍경래가 들다가 못 들고 만 민중혁명의 정말 큰 불은 그가 간 지 한 세기 후에 남강 이승훈 선생, 도산 안창호 선생, 고당 조만식 선생에 의해 일으켜졌다.

남강 선생은 홍경래가 하늘에 사무치는 한을 품고 죽던 그 정주성에, 양반의 사냥개인 관군이 혁명에 나섰던 민중을 단으로 묶어세우고 무찔러 흐르는 피가 내를 이루던 그 광경이 아직도 생생한 가운데 자랐을 군인의 아들로 태어났고, 도산 선생은 그 홍경래가 났던 용강에서 났고, 조만식 선생은 그가 성공했더라면 필시 새 나라를 거기에 배반했을 평양에서 자랐다.

그들은 홍경래처럼 칼과 활을 들지는 않았다. 그처럼 술책을 쓰고 선동을 하지는 않았다. 다만 붉은 가슴을 가지고 민중의 붉은 가슴에 대했다. 그렇지만 그 운동은 홍경래의 혁명으로는 비할 수 없는 맹렬한 형세로 퍼져나갔다.
(주석 8)

함석헌은 오산학교에서 이들의 정신적 세례를 받으면서 공부하였다. 여기서 ‘한글’을 처음 배웠다. 우리 글을 배워야 할 시기에 나라가 식민지가 되면서 일본어의 상용이 강제되었기 때문이다.

다석 유영모 선생. 사진은 다석 사상연구회에서.

오산학교에는 3인의 민족지도자 외에도 첫 교사였던 독립운동가 여준(呂準), 체육교사 서진순(徐進淳), 뒷날 친일파로 변신한 이광수, 그리고 함석헌의 또 다른 정신적 스승 다석(多夕) 유영모(柳永模)가 있었다.

함석헌이 오산에서 유영모를 만난 것은 큰 축복이었다.
다석은 그때 서른두 살, 투옥된 남강의 부탁으로 오산학교 교장으로 부임하였다.

<노자>, <장자>ㆍ<사서오경> 등 중국 고전은 물론 기독교 신앙에도 정통하여 스물한 살의 함석헌에게 우상과 같은 존재였다. 일본 동경물리학교를 갓 졸업한 개명 지식인이었다. 그러나 유영모는 조선총독부가 교장 취임을 불허하여 1922년 4월 서울로 돌아가고 말았다.

함석헌은 1년 밖에 안 되는 기간의 사제관계였으나 평생 스승으로 모셨고, 그로부터 폭넓은 중국 고전과 속 깊은 기독교신앙을 배우게 되었다. 함석헌은 유영모 선생 밑에서 오산학교 교가를 부르면서 2년여 동안 혼과 신체를 단련하였다.

백두산서 자란 범은 백두호라고
범 중에 범으로 울리나리라
우리들은 오산에서 자라났으니
어디를 가든지 오산이로다.

함석헌은 오산학교의 유영모 교장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다. 그를 통해 일본 무교회주의 지도자 우치무라 간조와 기독교의 지도자 야마무로 군페이를 알게 되었다.

또 스코틀랜드 출신 토머스 칼라일을 배웠다. 그의 시 <오늘>은 함석헌이 나이가 많아질때까지 좋아했다.

오 늘

여기 흰 날이 왔도다
낭비하자 말지어다

영원에서 이 날은 나왔고
영원으로 밤이면 돌아간다

이날을 미리 본 눈이 없고
보자마자 사라져 버린다
여기 흰 날이 왔도다
낭비하지 말지어다.

함석헌은 오산학교에서 여러 훌륭한 스승을 만나고 생애를 두고 많은 영향을 받는 책을 읽었다.
HㆍG, 웰즈의 <세계사>, 토머스 칼라일의 <의상철학>, 죠지 폭스의 <일지>, PㆍB, 쉘리의 <시 모음> 등이다. 특히 웰즈의 <세계사>의 영향이 컸다.

웰즈의 저서는 감수성이 민감한 청년 함석헌에게 평화주의의 필요성, 세계주의에 입각한 역사관 및 종교관 형성에 근본적 영향을 심어주었다. 또한 웰즈의 <세계사>에 대한 감동 때문에 함석헌은 역사, 진화론, 과학주의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훗날 함석헌이 역사라는 학문을 좀더 진지하게 공부하고 그 스스로 ‘역사가’가 되기로 결심하는 데에도 웰즈의 영향이 자리잡고 있었다. (주석 9)

함석헌은 회고한다. 오산시절을 “오산학교는 그때 민족운동, 문화운동, 신앙운동의 산불도가니였습니다. 그때 그 교육은 민족주의, 인도주의, 기독교 신앙이 한데 녹아든 정신 교육이었습니다.”


주석
8> 함석헌, <남강ㆍ도산ㆍ고당>, <전집> 4, 157쪽.
9> 김성수, <함석헌 평전>, 104~105쪽, 삼인,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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