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태 평전/[15장] 대선 경선출마와 좌절의 아픔 2

012/10/17 08:00 김삼웅

 

 

대선경선에 뛰어든 김근태는 3월 3일 다시 기자회견을 통해 “2000년 전당대회(당 최고위원 경선) 때 권노갑 전 최고위원으로부터 2,000만 원을 받았고, 모두 2억 4,000만원을 선관위 신고에서 누락했다”고 폭탄적인 양심선언을 했다. 대선후보 경선 과정의 초입에서 폭로된 양심선언은 당내는 물론 정국에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다. 김근태는 “현재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엄청난 정치자금이 소요되고 있다. 캄캄하고, 이는 즉시 중단되야 한다”는 소신도 아울러 밝혔다.

대선후보 경선이 시작되면서 김근태는 일부 후보 진영이 보이고 있는 인력동원과 자금살포설을 우려하여 이를 시정하고자 하는 충정에서 ‘양심선언’을 택한 것이다. 당내 최대 계파의 수장이고 김대중 정부의 실세인 권노갑이 2000년 전당대회 당시 최고위원 경선에 나선 김근태를 비롯 일부 후보들에게 거액을 지원한 것이 폭로된 것이다. 정치자금 수수는 여야를 가리지 않고 오랜 당내 관행이기도 하고, 특히 전당대회를 앞두고는 성행했다.

김근태의 양심선언은 본질과는 다른 방향으로 비화되었다. 수구보수신문은 1면 머릿기사로 김근태와 권노갑의 정치자금에 공세의 초점을 맞췄다. 한나라당은 호재를 만난 듯이 날선 공격을 퍼부었다.

김근태는 사면초가의 신세로 몰렸다. 정치자금의 투명성과 깨끗한 정치풍토를 위해 자기희생으로 던진 양심선언이 정략의 빌미가 된 것이다. 진행 중인 민주당 후보 지역 경선에서도 악재로 작용했다. 자기만 깨끗한 척 당의 이미지를 실추시켰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여론조사에서 최하위권의 지지율에 맴돌자 자신의 ‘클린 이미지’를 이용, 지지도를 끌어 올려 보려는 돌출 행동이라는 악평에는 정말 견디기 어려웠다.

김근태는 MBC 라디오 프로그램에 나와 자신의 고백이 권 고문의 정치자금 문제로 비화되고 있는 대목을 개탄하여 “울고 싶은 심정” 이라고 답답한 심경을 토로했다. 자신의 발언은 순수한 양심선언이었지, 그 어떤 정치적 노림수도 없다고 밝혔다. 김근태는 “정치자금을 투명화하자는 내 양심선언을 정쟁화하지 말라”고 한나라당을 비판하며, “정치권 관행에 따라 선배로서 후배에게 격려금을 준 것이며 기본적으로 선의로 해석한다”면서 권노갑 전 최고위원을 엄호했다.

김근태는 주류측 경선 주자들과 조ㆍ중ㆍ동 그리고 한나라당의 협공을 받는 처지로 내몰렸다. 더욱이 야당으로부터 민주당 전체가 공격받고, 국민경선 자체가 ‘돈경선ㆍ조직경선’으로 폄하되고 있어, 그 정치적 책임이 고스란히 김근태가 떠안아야 했다. 민주당 지지층으로부터 “혼자 살려고 당을 다 죽인다”는 격한 비난이 따랐다.

김근태는 한 신문과 인터뷰에서 “나 스스로 정치자금 투명화의 ‘제물’로 삼겠다”며 “검은 정치자금의 굴레를 벗지 못하면 한국정치의 미래는 암울할 뿐”이라고, 거듭 소신을 피력했다. 자신의 ‘양심선언’이 정쟁화되는 데 대해 “나 한 사람을 공격하는 것은 참겠지만, 국민경선제는 건드리지 말라”고 경고했다. (주석 6)

다음은 한 신문의 사설, 제목은 <김 고문을 바보로 만들면 안돼>다. 사설의 중간 부분이다.

우리는 김 고문의 고백을 정치 철부지의 경망스런 행동으로 몰아가려는 이런 풍조를 경계한다. 정치에 엄청난 돈이 들어가며, 그 과정에 부정의 소지가 많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비단 한국만의 현상도 아니고 선진국에나 후진국에나 널리 존재하는 문제이지만, 많은 사람들은 돈과 정치의 얽힘에 사실상 해결방안이 없는 것으로 체념하고 있다. 자신의 발등을 찍는 심정으로 고해성사를 했다는 그의 말은 정치개혁을 이루기 위한 충정에서 나온 것으로 평가해야 한다. (주석 7)

김근태는 2월 25일 제주도 신산공원에서 열린 ‘반부패사회 정책을 위한 대국민 청결서약식’에 참석하여 가장 먼저 서약하는 등 부패정치의 청산을 위해 앞장섰으나 ‘관행’이 되다시피한 정치부패의 탁류를 정화시키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김근태가 양심고백을 했던 당사자 권노갑은 김근태가 타계했을 때 심경을 밝혔다.

깨끗하고 소신 있고 자기 주장에 흔들림이 없던 사람이다. 나도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물고문을 당할 때 자살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김 고문은 거기서 전기고문도 받았다. 학자풍이고 양심적 정치인으로 대성하기를 바랐는데 참으로 안타깝다. 2002년 대선후보 경선 때 김 고문이 2년 전 최고위원 선거에 나와 사무실 비용으로 2,000만 원을 나에게 받아썼다고 ‘고해성사’했는데 그 당시 나온 사람들에게 이래저래 다줬다. 두 사람(김근태ㆍ정동영)것만 나타난 거다. (주석 8)


주석
6> <경향신문>, 2002년 3월 6일.
7> <한겨레신문>, 2002년 3월 5일.
8> <경향신문>, 2012년 7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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