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태 평전/[15장] 대선 경선출마와 좌절의 아픔

2012/10/14 08:00 김삼웅

 

 

김근태 의원과 부인 인씨가 후원의 밤에서 희망돼지모임 회원들에게 희망돼지 저금통을 전달받고 기뻐하고 있다. 사진은 오마이뉴스 이종호

 

김근태의 성실한 의정활동과 폭넓은 대내외 활동에도 대중적 인기는 크게 오르지 않았다. 어느 주간지가 “재목은 대통령감, 인지도는 시장감”(<시사저널>)이라고 뽑을만큼 다른 ‘잠룡’들에 비해 지지율이 따르지 않았다. 하지만 ‘역사의 책무’를 생각하면서 경선출마를 서둘렀다.

능력이나 인품과 대중성은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한국의 정치풍토는 더욱 그런 편이다. 연꽃은 흙탕물에서도 곱게 피지만 흙탕물 못지 않는 한국 정계의 탁류에서 식견과 품성이 우수한 사람이 성공하기란 쉽지 않다. 김대중과 노무현의 경우는 지극히 이례적이었다. 김근태는 당내 대선 경선을 앞두고 여러날 고심을 거듭했다. 지난해 최고위원 경선 때에도 돈이 없어 쩔쩔맸던 터였다. 최고위원 경선이 지역주의와 돈이 당락을 좌우하는 것을 지켜보던 터라 고심은 더욱 짙었다.

김근태는 2001년 5월 작가 공지영과 가진 인터뷰에서 “나도 정치적으로 폭발할 기회가 온다”면서 대선 의지를 밝힌 바 있다. 긴 대담에서 공지영이 뽑은 발문에서 이즈음 김근태의 고뇌의 일단을 살피게 된다.

“정당 내부의 민주화를 이뤄야 합니다. 집권민주당 역시 이념과 정책과 역사성에서는 민주정당이지만 그 행태와 정책 실현의 과정에서는 그렇지 못합니다. 맹목적 지역주의, 그에 기초한 보수체제와의 연결고리를 혁파해야 합니다.”

“정치가 무너지면 나라가 무너져요. 높은 수준에서 보면 다 똑같이 보이겠지만 그래도 조금은 더 나은 사회, 좀더 땀흘리는 사람이 공정한 대접을 받을 수 있는 사회를 위해 노력하는 의원들에게는 관심과 격려를 보내주고, 그것과 반대의 길을 걷는 사람들에게는 준엄한 비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진보라는 것은 법치주의ㆍ법치사회를 만들고자 동의하는 모든 사람들은 포용할 수 있어야 돼요. 포용이 아니면 적어도 더불어 함께할 수 있는 연합을 이룰 수 있어야 되지요.…자기 세력을 특별하게 규정하면 거기에 포함되지 않은 사람은 다 상대편으로 쫓아내는 결과로 나타나고, 그래서 소수화시키면서 어려움이 발생하죠.”

“저는 사회심리적으로 한국사회가 굉장히 위험하다고 봅니다. 미국경제가 스태그플레이션으로 가면 한국 국민의 심리가 어떨까… 걱정되요. 국민통합은 지역주의 때문에 이뤄지지 않고, 정치참여는 불신 때문에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 김대중 정부가 선택할 수 있는 운신의 폭은 매우 좁습니다.”
(주석 1)

중국의 근대혁명을 주도한 문인 루쉰의 산문에 ‘불의 얼음’이란 대목이 나온다. 표면은 얼음처럼 차갑지만 그 안은 용암처럼 뜨겁게 분출하는 힘이 있다는 뜻이다. 김근태를 여기에 대입하면 맞을 듯 하다.

김근태는 2002년 2월에 시작되는 민주당의 제16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후보를 뽑는 국민경선에 나서기로 했다. 1년 전 기존의 새정치국민회의를 확대 개편하여 새천년민주당을 창당하고, 김근태는 상임고문에 추대되어 당의 중진으로서 활동하고 있었던 참이다.

김대중 정권에 이어 개혁진보세력이 다시 정권을 맡아서 민주화와 서민생계, 그리고 남북관계를 더욱 화해협력 체제로 이끌어야 한다는 것이 시대정신이라 믿었다. 보수세력이 반세기 이상 한국사회를 독점적으로 지배하면서 빈부ㆍ지역ㆍ도농ㆍ남녀ㆍ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를 가져오고, 남북 대결을 불러온 파행성을 김대중의 5년 집권으로는 바로잡기 어렵다는 것이 김근태의 확고한 신념이었다.


주석
1> <월간중앙>, 2001년 5월호, 136~148쪽, 발문.


01.jpg
0.07MB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