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태 평전/[11장] 집권대체세력 ‘국민회의’ 결성

2012/09/16 08:00 김삼웅

 

 

김근태는 1993년 7월초 미국 미시건대학의 초청으로 다시 미국을 방문하였다.
로버트 케네디상 수상자로 선정되고도 수상식에 참석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이어진 수배와 투옥으로 남들이 이웃집 드나들듯 하는 미국행이 쉽지 않았던 것이다. 미시건대학은 초청장과 함께 여비 일체와 체류비까지 부담하여서 방미에 달리 신경쓰지 않아도 되었다. 대신 미시건대학에서 특별 강연을 하기로 하였다.

김근태는 7월 10일 미시건대학 대강단에서 많은 교수와 학생들이 참석한 가운데 <한국민주주의의 전망>이란 주제의 강연을 하고 청중의 질문도 받았다.

당시 국내정세는 김영삼이 취임하면서 공직자 재산공개와 노태우 정권의 최대 의혹사건으로 떠오른 차세대전투기 도입 의혹 감사원 감사 등 개혁 드라이브로 국민적인 지지를 받고 있었다. 반면 김대중이 없는 민주당은 야당의 트레이드마크인 ‘개혁’을 정부 여당에 빼앗긴 채 야당으로서의 입지를 위협받고 있었다.

김근태는 이런 상황에서 한국민주주의를 전망하는 연설문을 준비하였다. 그는 대단히 합리적이어서 맹목적인 반대나 비난을 위한 비난과 같은 것은 하지 않는 성품이었다. 그러나 현상적인 것과 본질적인 것, 가식적인 것과 진실한 것을 구분하고 평가하는 예리한 지성을 갖췄다. 이 연설문에서도 그런 부분을 찾게 된다.

 



김영삼 정권 수립 이후 특히 개개인의 시민은 상당히 자유를 누리게 되었다.
위로부터의 개혁을 통해 더 이상 공포와 모욕감을 감수하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선거과정에서 찬성과 반대 어떤 쪽이었던 간에 자신들이 직접 참여하여 이뤄진 결과로 수립된 정부이고, 민간 출신이 최고 권력자가 됨으로써 그렇게 되었다. 여하튼 지난 시기보다는 많이 나아졌고, 이제 그 고통스런 대결과 도덕적ㆍ정치적 책무감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은 대중적 분위기도 일조를 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미 민주주의는 실현되고 있다”라는 지배적 언술의 반복과 일부 비판적인 운동그룹의 ‘지금은 진보적 수준을 향한 투쟁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주장도 결과적으로 더 이상 민주주의 실현을 둘러싼 논쟁과 대결은 불필요한 것이라는 분위기를 조성하게 만들었다.
(주석 18)

김근태는 초기에 김영삼 정권의 실체를 벗겼다. 본질적으로 군사정권과 별로 달라지지 않았음을 설명한다.

아직도 감옥에는 많은 정치범이 있다. 지난 시기 절차적 민주주의를 난폭하게 유린했던 국가보안법은 개폐되지 않았으며, 최고 권력자는 앞으로도 계속 국보법을 유지하겠다고 천명하였다. 독소조항이 웅크리고 있는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이나 노동관계법도 그대로이다. 이렇게 볼 때 최소한의 기본권이 어느 정도 보장되고 부분적 자유화는 실현되고 있으나 민주화가 이루어졌다고 하기는 어렵다고 해야 할 것이다. (주석 19)

 



김근태는 두 차례나 국보법과 집시법의 희생자이고, 원래 노동운동 출신이기에 노동관계법의 독소조항이 얼마나 노동자와 노동운동가들을 옥죄이고 있는가를 누구보다 잘 안다. 그래서 이같은 악법이 개폐되지 않고 있는 ‘문민정부’를 진정한 민주정부라고 부를 수 없었던 것이다. 김영삼 정부의 ‘개혁’에 관해서도 예리한 메스를 가한다.

개혁이 지배적인 언술이 된 것은 김영삼 정권의 성립 이후다. 오늘날 광범위하게 주장되고 있는 ‘개혁’이라는 슬로건 속에는 시대정신이 관철되고 있는 측면과 이데올로기가 작동하고 있는 측면이 동시에 존재하고 있다. 이 양측면은 반드시 상호배제적인 것은 아니지만 대립이 존재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우리 사회의 당면 요구로서의 진정한 ‘개혁’을 보다 힘차게 추진하기 위해서는 그것은 이데올로기로서의 힘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개혁이 주로 자기 자신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서의 이데올로기가 될 때 그것은 어떤 것에 대해 우리는 비판적으로 주목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재의 조건상 그리고 힘의 관계로 볼 때 지금 추진하고 있는 개혁 이외에 다른 대안이 존재하지 않으며, 그런 개혁을 통해 민주주의는 전면적으로 실현될 수 있다는 함축이 그 속에 담길텐데 과연 그럴까? ‘개혁’이 이처럼 이데올로기가 될 때 그것은 개혁을 실질적으로 진전시키기보다 그것을 오히려 제한하고 망상한 것으로 만들 가능성이 있다. (주석 20)

 



김영삼 정부의 ‘개혁’을 이처럼 예리하게 분석한 학자ㆍ언론인ㆍ야당정치인은 드물었다. 문민 정부의 개혁드라이브는 제도와 구조개혁이 아닌 현상에 머물고 있었다. 그나마 1년이 못가서 국회날치기, 남북갈등, 노동자탄압 등 ‘유사문민정부’ 로서의 허상을 드러냈다.

80년 광주민주화운동을 계기로 군부독재는 지역감정을 더욱 심화시켰다.
80년 이후 광주는 민주화 실현의 대장정에서 희생양이었고, 저항의 근거지였다. 호남에 적대하는 지역감정은 이제 민주주의 실현을 반대하는 악성의 퇴영적 본질을 갖기에 이르렀다. 이렇다면 이것은 이미 인간의 내면에 있는 이성과 양심 그리고 민주적 가치에 대한 거부로까지 되고 있다해야 할 것이다. 사실이 이런데도 80년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상규명을 회피하면서 그것을 역사의 심판에 맡기겠다고 선언하는 이른바 ‘문민정부’를 우리는 뭐라고 해야 하겠는가?
(주석 21)


주석
18> 김근태, <희망의 근거>, 23쪽.
19> 앞의 책, 23~24쪽.
20> 앞의
책, 25쪽.
21> 앞의 책, 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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