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태 평전/[11장] 집권대체세력 ‘국민회의’ 결성

2012/09/13 08:00 김삼웅

 

3당 대표회담에 앞서 김영삼, 민자당 대표, 정주영 국민당 대표와 함께 포즈를 취한 김대중 민주당 대표.

 

12월 19일 실시된 대통령선거는 예상대로 김영삼이 유효표의 41.4%를 얻어 33.4%를 득표한 김대중을 누르고 제14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정주영 16.10%, 박찬종 6.3%, 이병호0.2%, 백기완 1%였다. 이번에도 정주영ㆍ박찬종ㆍ백기완 등 군소후보가 야권표를 갈라먹었다.
개표결과를 지켜본 김대중은 김영삼에게 당선 축하를 전하고 정계은퇴를 선언, 파란많았던 정치생애를 접었다. 그는 끝내 완고한 보수와 지역의 벽을 넘지 못했다. 김근태의 실망은 적지 않았다. 이번에도 야권후보 단일화에 실패한 데 대한 무거운 책임감을 느껴야 했다. 대선이 끝난 뒤 김근태는 선거법위반 혐의로 검찰과 경찰에 두 차례 소환되었다. 그리고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김근태는 진보 민주세력이 보수 야합세력에 패배한 데 대한 허탈과 좌절감은 쉽게 떨치기 어려웠다.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김근태 위원장은 선거 평가이야기가 나오자 매우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선거 이후 심한 허탈감 속에서 힘든 나날을 보내왔음”을 솔직히 고백하였다. 그는 새로운 모색은 “쓰라림 속에서의 모색이 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솔직하고 겸허하게 이 사태를 받아들이자. 섣부른 합리론으로 이 고통을 외면하려 한다면 더 큰 좌절을 만들 것이다.”

김근태는 대선 패배 뒤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심경을 밝히고, 이어서 패배의 이유를 진단한다.

표의 흐름과 결과를 보면서 느껴지는 것은 국민대중의 도덕적 판단이 마비된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다.
예를 들면 부산기관장 대책회의를 이야기할 수 있다. 이 사건은 지배집단의 도덕성과 정치적인 의식이라는 것이 얼마나 엉망인가 여실히 드러나는데 이 부분에 대하여 국민은 표로 응징하지 않았다.

영남지역에서는 위기감을 조성하여 오히려 몰표를 가져오고 수도권은 이를 응징하지 않았다. 또 지배세력은 색깔론을 통해서 제기된 일정한 바람과 변화에 대한 두려움의 이중성을 가진 중간층이나, 심지어 생활수준과 소비수준이 나아졌다고 생각하는 기층민중의 동요를 일으키면서 안정희구심리를 도출해냈는데 이것도 참 어이가 없다. 아파트에서 지배세력의 몰표가 나왔다. 도대체 아파트 17평, 20평을 가진 사람들, 상대적으로 이야기해서 20~30평을 가진 사람들이 정권교체가 이루어졌을 때 자기들의 기득권에 부담과 손해가 올 것이 무엇이 있는가?
(주석 10)

‘남은 자’들의 역할을 강조하며 기층민중에 한 없는 애정을 가져왔던 그가 제14대 대선의 결과를 두고는 “국민의 도덕적 판단이 마비되지 않았는가”하는 격한 분노를 터뜨렸다.

김근태는 하지만 절망하지 않았다.
여전히 민중에 대한 신뢰를 떨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패배의 원인을 냉정하게 성찰한다.

먼저 지적되어야 할 하나의 편향은 의사개량화 조치를 통해서 민주 대 반민주의 구도가 대중 속에서 갖는 위력이 일정하게 삭감돼온 것을 명백히 인식하고 대응하지 못한 문제점을 이야기할 수 있다. 민주 대 반민주 구도가 기축적으로는 존재했으나 그것의 일정한 변화가 존재했다. 이것은 질의 변화는 아니고 양의 변화이다. 이 양의 변화가 있는데 이것에 대하여 본질은 변화가 없다는 무책임하고 무능한 답변 이상을 제출하지 못하고 거기에 고착되었다. (주석 11)

 



김근태의 특장의 하나는 사안에 대한 냉철한 분석력이다. 여러 차례 좌절과 절망을 겪으면서도 정확하고 냉철한 분석을 통해 대안을 마련하고 살아남을 수 있었다.

지난 대선 이전에 나는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바이마르 공화국 후반기에 정치세력의 교착이 발생한 상황에서 상당한 부분이 공적의사결정과정으로부터 퇴각해버렸다. 지금 우리 사회의 상황은 이와 유사한 측면이 있다. 국제 사회의 일정한 변화, 국민 대중의 요구가 고조되었을 때 민주권력의 창출에 실패한 것의 결과라고 생각되는 측면도 있지만 그에 못지 않는 것은 민족민주운동이 짊어져야할 자기 책무를 다하지 못한 것, 그 중에서도 분열이 결정적이었다고 본다. 특히 분열이 제도정치세력화를 어떻게 이룰 것인가를 놓고 발생했는데, 대중들은 그런 분열세력을 신뢰할 수 있는 대안세력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주석 12)


주석
10> 김근태, <민족민주운동의 활로는 무엇인가>, <월간 길>, 1993년 3월호, 66쪽.
11> 앞의 책과 같음.
12> 앞의 책, 67~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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