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태 평전/[11장] 집권대체세력 ‘국민회의’ 결성

2012/09/11 08:00 김삼웅

 

김근태는 출소 직후 <월간 말>과 가진 인터뷰에서, 자신이 그동안 줄기차게 제기해온 정권교체를 위한 ‘민주대연합론’을 개진하였다. 옥중에서 긴 날 동안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야당의 일각까지 가세한, 수구세력을 깨는 데는 민주대연합 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민주연합의 내용은 사회과학적으로는 기층민중과 중간 제계층, 그리고 민족적 입장의 자본가가 상호 동맹세력으로 재배치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현상적으로는 재야와 제도야권의 결합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우리 운동의 현단계 전략적 목표인 자주ㆍ민주ㆍ통일을 이룩하기 위한 운동의 상호 대치선은 외세와 국내 지배세력을 한편으로 하고 재야와 제도야권의 연합세력을 한편으로 하는 대립으로 돼야 하며 이럴 때 어느 정도 승산 있는 싸움이 가능하다.

따라서 재야세력은 비제도권에서 자신의 본대를 꾸리고 이 본대를 확장시키는 과정에서 일부가 제도권에 들어가 제도야당 내부에 교두보를 확보하며, 이러한 민족민주세력의 의원단이 의회에서 민중적 대의를 널리 알리고, 대중운동을 엄호하는 활동을 전개하는 것이다.

이것이 이전까지 주장해온 이른바 ‘제도야당의 민주연합당으로의 개변’을 의미하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이것으로 민주연합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민주연합당의 주도권은 역사적으로 형성돼온 제도야당의 지도부에 남아 있다. 따라서 재야는 비제도권에 공개정치 조직을 결성해 재야의 연합전선을 형성하고 향후 민주연합당으로 개편되는 제도야당과 다시 연대하고 연합해 민주대연합의 완성태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올바른 민주연합이란 선거과정뿐만 아니라 만일 투표에서 이기고 개표에서 질 경우 대중운동을 통해 국민주권을 지키기 위해서도 절대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도 기존의 ‘정치세력화’ 주장은 재야는 이미 역사적으로 정치세력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데도 불국하고 재야의 일부가 제도권내에 어떻게 자기의 교두보를 구축하는가의 문제를 정치세력화로 잘못 해석함으로써 실천적인 패배를 겪었다. 따라서 과거 “독자정당결성이 올바르냐 틀리냐, 지금 가능하냐 불가능하냐”로 논쟁한 것은 전제부터가 오류였다고 생각한다.
(주석 5)

김근태의 ‘민주대연합론’은 많은 재야인사와 진보적 정당세력에서 크게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재야 중에서는 제도정치권의 참여를 사갈시하는 부류가 있었고, 제도권에서도 이들의 참여를 못마땅해 하는 부류가 있었다. 하지만 해방 이후, 더 멀리는 일제강점기에 친일 협력자들을 모체로 하여 인적ㆍ물적 기반을 구축해온 보수기득권 세력에 맞서 민주정권을 수립하기 위해서는 재야와 양심적 제도야당의 연대가 필수적이었다.

김근태는 혁명주의자이기보다는 개혁론자이다. 의회를 통해 민중이 주인이 되는 민주주의를 이루고, 이를 바탕으로 통일로 가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이를 위해서는 민주대연합이 중요하다는 주장을 폈다.

인터뷰 기자가 물었다.

“87년 김대중 씨를 지지했는데 지금은 통합민주당과 김대중 대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민주당의 성격은 중간 제계층, 민족자본가 일부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다고 본다. 역사적으로는 분단을 옹호하는 세력으로 출발했지만 지난 시기 지배세력의 일방적인 탄압 때문에 압박을 받아 반독재투쟁에 나섰고, 따라서 지배세력을 이탈한 국민들의 기대가 한때 제도야당에 대한 기대로 이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87년 야권분열로 민주정부 수립이 실패로 돌아가자 대중은 야당에 대한 실망이 재야 민족민주운동에 대한 기대로 모아졌는데, 재야는 불행히도 전민련 시절 관념적 조급성으로 인해 선배운동가들을 분리시켜내고 운동을 내부의 분화를 분열로 처리해버리는 정치력의 빈곤을 증명해보이고 말았다.

결국 87년 대선의 분열을 극복하지 못한 재야에 대해 국민들도 지지를 철회해버렸던 것이다. 문제는 이런 상태에서 대중이 공적 영역에서의 책임을 철회하고 사적 이해관계의 축으로 옮겨 자기의 이익만 추구하는 것을 정당화할 때 파시즘의 물적 기초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광역선거 전후 나타난 무서운 침묵과 정치적 무관심은 유신 중후기의 공포를 연상시키는 것이었다. 이것이 지난해 평민ㆍ민주당의 통합으로 일부 복원되었지만, 아직도 충분히 회복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지금 대선 승리의 묘수가 따로 있는 건 아니다.
또 이대로 가면 패배한다는 견해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대중이 마지못해서 후보를 선택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 민주대연합의 최대주주인 민주당의 김대중 대표는 이러한 책임을 면할 수 없다. 지배세력이 조장한 지역패권주의에 의해 분열된 대중의 힘을 이끌어내려면 이런 교착국면에서 지도자의 도덕적인 결단과 자기희생이 필요하다. 그리고 국민대중이 주관적으로나 객관적으로나 승리하는 민주대연합이 이루어져 수권의 준비가 다 이루어졌다는 일체감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런 점에선 대선승리를 위한 김대중 대표의 자기희생이 결국 궁극적인 승리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주석 6)

김근태는 ‘민주대연합의 최대주주’인 김대중의 존재나 가치를 부정하지는 않으면서 “도덕적 결단과 자기희생론”을 완곡한 표현으로 제기하였다. 향후 진로와 관련해서는 “민주대연합을 위해 동지들과 상의해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김근태는 다시 활동에 나섰다. 그의 위상은 이미 재야의 중진 지도자로서 손색이 없었다. 이론과 전략 그리고 투쟁 면에서 그를 따를 사람이 많지 않았다.

주석
5> 김택수, 앞의 책, 48쪽.
6> 앞의 책, 50~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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