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태 평전/[10장] 산자와 죽은 자에게 보낸 옥중메시지 2

012/09/08 08:00 김삼웅

 

 

김근태가 온전히 서정시인 또는 서사시인인 것 같지만, 다음의 대목을 보면 ‘민중론’의 치열한 사회학자의 모습이다.

민중은, 그리고 대중은 사회와 역사의 주인이고 또 더욱 그렇게 되어야겠지요. 그러나 오늘의 민중이, 대중이 이미 자동적으로 그러한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주인이 되어 있다고 하는 주장에 대해 나는 여전히 어느 정도 비판적이고 회의적이기까지 합니다. 물론 이 원인은 그들에게 있는 것은 아니지요. 장애를 타고 넘어 스스로 사회와 역사의 주인이 되어야 하는 그 책임은, 그 과제는 민중 자신에게 짐 지워져 있는 것이지요. 이것은 만만치 않은 일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여기에 그것을 매개하고 안내하는 그 역할이 바로 운동과 활동가의 임무인 것이지요. 여기에 민중과 활동가, 대중과 운동 사이에 팽팽하고 긴장되면서 창조적인 변증법적 통일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또한 구호는 필요하지만, 단순한 그것의 반복으로써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주석 19)

그런가 하면 김근태는 격렬한 혁명가다. 혁명가 중에는 시인의 품성을 가진 사람이 적지 않았다. 김근태는 낭만주의적인 변혁운동가, 또는 사회혁명가이다.

그러나 나는 약간 달리 판단하고, 달리 주장했습니다. 단지 1단 기사로 나거나 아니면 뭉개져 버렸던 투쟁의 소식이 못지않게 중요하다. 그와 같은 탄압의 시기에 모든 투쟁은 자기희생과 헌신을 요구하고 있으며, 그리하여 거기엔 높은 도덕성이 살아 있다. 우리는 대중의 마음속으로 전파하고 전염시켜야 된다. 이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또한 중시되어야 하는 것이며, 민주 변혁의 시작은 오직 그럴 때 그 곳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그리고 그런 관점에서의 민생 문제 접근은 자칫하면 협소하게 될 수도 있고, 의도와는 다르게 민중을 수동적이고 이기적인 차원에 붙박아 놓는 결과가 될 수도 있다고 나는 주장하였습니다. (주석 20)

 



김근태 역시 여리고 흔들리는 연약한 자연의 산물인 보통사람이다. 시대가 그를 가족과 친구들로부터 떼어 철창에 가두었고, 내세우기는 공화제인데도 실제로는 전제자들이 독재를 하기 때문에 남들보다 앞서 그 부당함을 지적하다가 수인이 되었을 뿐이다. 그의 본성은 순하고 선한, 더불어 살아가기를 원하는 이웃이었다.

우리는 아무도 일생동안 거침없이 자기의 십자가를 메고 늠름하고 당당하게 이 세상을 살아갈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힘에 겨워 쓰러져 무르팍 깨지고 하염없이 눈물 흘릴 때가 있고, 외로운, 지독히 외로운 곳에 넘어져 신음할 때가 있습니다. 감옥에 갇힐 때마다 나는 그런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내가 보는 다른 분들도 대충 나와 비슷하다고 생각되는군요.

우리는 서로 위로가 필요합니다. 그런 취약함을 고백하는 속에서의 약함의 연대가 함께 할 때마다 우리의 강한 연대인 신념과 이상이 오만과 허위의 나락에 떨어지는 것을 방지할 수 있습니다. 아니 그럴 때마다 우리는 저 앞을 향해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야 구원이 있을 수 있습니다.
(주석 21)


주석
19> 앞의 책, 270쪽.
20> 앞의 책, 271쪽.
21> 앞의 책, 2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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