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태 평전/[10장] 산자와 죽은 자에게 보낸 옥중메시지

2012/09/03 08:00 김삼웅

 

김근태는 이 해 12월 18일 역시 홍성교도소에서 <고 김병곤회고집, 영광입니다>의 편찬위원회로부터 청탁을 받고 <지혜 있는 용기>라는 제목의 회고담을 다시 썼다. 11쪽에 달하는 장문의 글을 하룻만에 다 썼다. 그만큼 고인에 대한 사랑, 동지애, 생전의 역할, 빈자리의 공허함, 천도의 무심 등이 배인 까닭이었다.

지금도 어쩌다가 잡지나 신문에서 병곤이의 사진과 마주치게 되면, 나는 상당히 긴장을 하게 됩니다. 흘끔 쳐다보고 딴청을 부리다가 또 쳐다보고, 그러다가 시선을 돌리는 것이지요. 병곤이의 안경 너머 그 시선과 마주치는 것이 정말 고통스럽습니다. 이렇게 여전히 나의 눈과 가슴에 친구, 동지들의 가슴에 살아 숨쉬고 있는 병곤이가 이젠 죽었고, 그래서 우리 곁을 떠난 것이며, 생동하는 오늘과 내일에서 그 큰 손을 뗀 것이라는 그 얘기를 도저히 수긍할 수가 없습니다. 병곤이의 떠났음을 사실로 인정하는 것은 우리가 그를 저버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생기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아직 그 때가 아니라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주석 5)

먼저 떠나간 동지에 대한 절절한 아픔이 서린다. 혈육이나 부부 중 상처의 경우에 사망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본성과 같은 ‘골육지정’의 발로였다.

지난 1960년대 이래, 1970년대, 1980년대 내내 올곧은 청춘들 상당수가 감옥에 갇혀 살 수밖에 없었을 때, 그 한 가운데서 병곤이는 한 번도 물러서지 않고 맞서 나아갔습니다. 캄캄한 어둠이 짙게 내리누를 때는 물론이고, 낮은 수준의 민주주의이기는 하지만, 그것의 실현에 대한 기대가 다시한번 산산이 부숴져 내렸을 때, 그리하여 폐허 같은 잿빛이 온통 사방을 휘둘러 감고 비통한 침묵에 빠져 우리 모두가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도, 그는 또 분연히 일어나 맨 앞에 서서 나아갔습니다.

그러다가 그 참을 수 없는 허망함과 분노, 그리고 고뇌를 부둥켜안고 버티다가 치명적인 암에 걸렸던 병곤이. 그런 그의 감옥에서 오늘을 살고 있는 내가, 그리고 전국의 많은 양심수들이 어떻게 지금 이런 상황에서 병곤이를 순순히 떠나보낼 수 있겠습니까. 그러기는커녕 그 큰 허우대로 되살아나 지금의 위기 상황에, 그러면서 동시에 다시 기회인 이 오늘과 내일에 철저히 개입해 줄 수 있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에서 병곤이의 민청련 시대를 되돌아보고자 합니다.

병곤이가 용기 있는 사람이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지요. 이제는 거의 신비가 되어 있는 “사형을 받아서 영광입니다.”라는 말 속에서 지금도 그의 담대함과 용기의 힘찬 꿈틀거림이 느껴질 것만 같습니다. 교도관들의 한결같은 증언에 따르면, 일단 사형 선고를 받으면 그 누구든지 얼굴이 하얗게 질리고 의자에 풀썩 주저앉아 멍한 상태에 빠진다고 합니다. 그리고 많은 경우 픽 하고 옆으로 쓰러지기도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병곤이는 그 아득함과 답답함을 딛고 일어서 그렇게 맞서 외쳤던 것입니다. ‘용기’ 이외에 어떤 말로 이것을 지칭할 수 있겠습니다.
(주석 6)

우리 항일독립운동과 반독재 민주화운동 과정에는 스스로 고난을 택한 많은 독립지사와 민주인사들의 희생이 있었다. 민족ㆍ민주제단에 바쳐진 ‘제물’이었다. 그들의 희생의 대가로 독립된 국가에서 친일파들과 군사독재의 후예들이 다시 주역이 되는, 가치전도의 세상이 되었다. 김근태는 홍성감옥에서 김병곤을 추모하면서 민청련 시대를 회상한다.

그리고 그에 못지않은 절실한 이유가 더 있었습니다.
당시 민청련을 대표하는 공개 운동에 대해 “소영웅주의적이며, 결국 저들의 아가리에 운동역량을 똘똘 말아 처넣고 말게 될 것”이라는, 어떻게 보면 당시로서는 그럴 듯하게 들릴 수 있는 비판과 비난이 우리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습니다. 1980년 광주의 좌절과 패배, 그리고 그와 동시에 덮쳐 온 공포 아래서 있을 수도 있는 주장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얼마나 엉터리인가는 사실 당시도 분명했습니다. 그것은 근원적 패배주의의 다른 표현일 뿐이고, 결과적으로 자신의 안전과 보신을 가장 중시하는 비겁한 비열함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연성수가 ‘두꺼비’를 들고 나와 민청련의 상징으로 하자고 했을 때 이구동성으로 동의하게 된 것도 바로 이런 비겁함에, 비열함에 반대하면서,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죽지도 않을 것이지만, “지금이야말로 죽는 것이 사는 것이다.”, “지금은 죽는 것이 바로 몇 배로 되살아나는 것이다.”라는 것을 명백히 보여 주고자 했던 것입니다.

이미 저명한 활동가이고 많은 수난과 고난을 겪어 온 병곤이가 다시 적극적으로 이러한 대열에 참여하는 것이 저 희극적이면서 비극적인 논리, 심한 경우 “머리카락 보일라 꽁꽁 숨어라.”는 이른바 안테나론을 결정적으로 물리치는 데 큰 힘이 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병곤이는 참으로 선선히 수락했습니다. 오랫동안 그 대답을 가슴에 담아 두고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아무것도 따지지 않고 그렇게 하겠노라고 하였습니다. 마치 그 모든 것에 부응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용기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생활의 타성에 묶이지 않고 언제나 자유로울 수 있는 그것은 그 밑바탕에 큰 용기가 있을 때만 가능한 것이지요.
(주석 7)

주석
5> <고 김병곤회고집, 영광입니다>, 264쪽, 거름, 1992.
6> 앞의 책, 264 ~ 265쪽.
7> 앞의 책, 26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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