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태 평전/[9장] 짧은 자유, 또 투옥되다

2012/08/31 08:00 김삼웅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64세로 별세한 가운데, 2011년 12월 3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유가족들이 영정사진을 모시고 빈소로 향하고 있다. ⓒ유성호

 

세상에 어느 아빠가 딸을 귀여워하지 않고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만은 김근태의 딸 사랑은 각별했다.
“(남편이) 딸을 어찌나 예뻐하는지 꼭 자기만 딸 있는 거 같아요. 시집도 안 보낼 거래요. 딸애도 아빠 앞에서는 듣기 좋으라고 시집 안 간다고 하는 데 제가 슬쩍 ‘너 어느날 갑자기 뒤통수 치고 갈 거지?’ 했더니 ‘물론이죠’ 하더라구요.”  (주석 22)할만큼 병민이를사랑했다.

김근태의 남다른 딸 사랑의 편지 한 꼭지를 더 소개한다. 5월의 병민이 생일날 <드높은 자존심은 흉이 아니다>는 제목의 편지다.

병민에게
네 말마따나 병민이와 아빠는 짝꿍이란다. 병준이와 엄마가 그런만큼, 그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병민이 너를 좋아하고 사랑한단다.

어느 땐가 엄마가 와서 네 흉을 보던 얘기가 생각나는구나, 네가 괜히 징징거리고 짜면서 “내 편을 들어줄 아빠는 감옥에 가 있고……” 라고 하면서 꼴이 가관이라고 하더라, 이 얘기를 들으면서 나는 콧등이 찡하면서 매캐해졌었다. 아, 우리 병민이가 이렇게 커가는구나. 이렇게 아빠가 멀리 자주 떨어져 있는 데도 잘 자라고 있고, 또 그런 식으로 기억해주고 있고 말이다.
(주석 23)

병민아. 부모들은 자식들의 변화를 보고 느끼면서 감동을 하곤 한단다. 그리고 그런 변화를 자랑스러워하고 말이다.

김근태는 딸에게 보내는 편지를 통해, 세상의 모든 여성들에게 당당하고 떳떳하게 살아갈 것을 바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병민이 너는 네 일을 네가 스스로 하고 또 그에 대해 책임질 줄 알기 때문에 그런 드높은 자존심은 흉이 아니라 자랑이 되고 아름다움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병민이를 아빠는 자유인이라고 부르지 않을 수 없다.

노예처럼 아무에게나 머리를 숙이고 대신 동정을 받는 그런 사람과는 전연 관계가 없는 독립된 사람이지. 병민이는 아빠가 어른이 되어서야 비로소 가까워지고자 노력하고 있는 자유인에 벌써 한쪽 발을 들여놓고 있는 것이라고 믿고 싶구나. 이런 의미에서도 또 병민이와 이 아빠는 정말 친구이고,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고 말할 수 있을게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병민아.
(주석 24)

딸 얘기만 하다보니 아들에 대해서는 무관심했는가 하는 의문이겠지만, 역시 어느 부모가 아들, 딸 차별해서 사랑하겠는가. 이 무렵 병준이는 12살짜리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어릴적부터 가정의 풍파를 겪어서인지, 그 나이에도 무척 어른스러웠다. 김근태는 8월 16일 병준이에게 편지를 썼다. <한 줄기 바람처럼 향기로운 너의 노래>란 제목을 달았다. 병준이가 면회를 와서 불러준 노래를 듣고 감동한 것이다.

병준에게.
지난 번에 내려와 병준이 네가 불러준 노래 정말 잘 들었다. 워낙 노래를 잘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날은 더욱 각별한 것 같았다. 네 노래를 들으면서 노래에 빨려 들어갔고 괜히 콧등이 시큰해지면서 네 노래에 공명되어 아버지 가슴 속에서는 어떤 떨림의 물결이 일어났다.

처음 듣는 노래여서 그 가사가 정확히 어떤 내용인지, 또 곡조의 어디에 아름다움의 무게가 집중되어 있는지 가늠이 잘 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이런 것들이 느껴졌다. 상당히 긴 노래인데도 지루하게 생각되지 않았고, 비교적 밝고 명랑하며 또 호소력도 있는 멜로디를 갖고 있는 노래구나라고 말이다.(……)

병준이의 시원한 한줄기 바람 같았던 노래를 생각하면서, 지난날 아버지의 어둡고 슬프고 서러웠던 노래들, 그리고 실패했던 노래 ‘사랑의 미로’를 되돌아보았다. 그리고 노래는 무엇인가, 그리고 음악은 무엇인가도 약간 생각해보았다.

결론은 이렇다. 노래는, 음악은 정말 해볼 만한 것이다. 특히 병준이처럼 재능이 있는 경우에는 정말로 고려해 볼 만한 것이 아닐까 여겨진다. 물론 그 결정은 병준이 네가 하는 것이고…….

그러나 큰 성취를 이루고자 하는 경우에는 열정과 노력이 재능 못지않게 중요한 것임을 말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내년엔 중학생이 되는 병준이가 깊이 생각해 볼 만한 일일 것이다.
(주석 25)


주석
22> 인재근, <엄마가 뿔났다>, 41쪽.
23> 김근태, 앞의 책, 55쪽.
24> 앞의
책, 57쪽.
25> 앞의 책, 56~5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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