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태 평전/[9장] 짧은 자유, 또 투옥되다 2

012/08/30 08:00 김삼웅

 

김근태 부부에게는 보통사람들의 부부와는 다른 ‘비화’가 적지 않았다.
노동운동과 민주화운동의 ‘평생동지’인 까닭이다. 옥중에서 남편은 ‘고무신을 거꾸로 신을 자유’를 부인에게 주는 편지를 썼고, 이것이 ‘운동권’ 인사들에게 알려지면서 화제가 되었다.

김근태가 1차 감옥생활을 할 때의 일이다. 감옥에서 아내의 두번째 생일을 맞은 ‘기념’으로 편지를 썼다. 편지가 지극히 ‘황당한’ 내용이었다.

당신의 생일이어서 좋은 날인 오늘 나는 자유를 돌려드리겠소. 생일선물로서는 최상인 신발을 거꾸로 신을 수 있는 자유말이오. 선택의 자유, 떠날 수 있는 그 자유말이오. 끝으로 당신의 생일을 재삼 축하하면서….

김근태는 민주화운동의 최전선에서 활동하면서 ‘진반농반’으로 아내에게 말하곤 했다.

“징역가게 되어, 5년 이상 옥살이를 하게 되면 상대방을 결단코 자유롭게 하겠다. 무조건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고 일체의 면회, 편지를 단절시키겠다. 부담과 동정의 대상이 되는 삶을 살지 않겠다.”

그런데 공교롭게 5년 징역형을 선고받고 수형생활 2년 차가 되는 아내의 생일날에 ‘신발을 거꾸로 신을 자유’를 주겠다는 편지를 쓴 것이다.

물론 징역생활 1년을 넘기고, 대법원 판결을 받은 후의 감옥 안에 있는 사람의 심정은 이해하지만 이 마지막 대목은 나를 열받게 만들었다.

이 편지를 받은 그 날 밤 나는 앞뒤를 모두 채운 5장의 편지를 남편에게 썼다.
주제는 신발을 거꾸로 신을 자유는 언제고 나 자신에게 있음을 알리는 것이었다. 우리가 10년간 같이 살아오는 동안 어려웠던 일, 특히 섭섭했던 일 등을 속사포처럼 쏟아내었다. 특히 두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나의 활동의 중단에 대해서 제일 많이 썼던 것 같다. 나의 이 편지의 마지막은 이렇게 끝났다.

“여보! 나의 소원은 남자 파출부를 두고 사는 것이예요.”

그 후 되도록 빠른 시일 내에 면회를 가려고 노력했고, 나는 두 아이를 데리고 대관령 고개를 굽이굽이 넘어 남편을 찾아갔다. 아이들을 데려가면 특별면회라는 것을 하게 된다.

나는 남편을 보자마자 “아니 그 자유가 누구 자유인데 되돌려주고 말고 해. 김근태 씨!”라고 쏟아냈다.
남편은 쑥스러워 하면서 “당신이 너무 바빠서 그런 자유가 있다는 것을 잊어버릴까봐 알려줬어!”하며 웃었다.
(주석 19)

다시 앞으로 돌아가서 ‘인병준과 인병민에게’ 쓴 편지를 살펴보자.
빨래하면서 느낀 생각을, 아이들에게 서스럼없이 적었다.

여기서 이번 징역살이는 밝고 명랑하게 살려고 하고 있단다. 그러나 얘들아,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일인지 지내다보면 가슴에는 설움이 고이곤 하는구나. 너희들이 보고싶고, 너희들을 껴안고 싶고, 그리고 자유로운 공기도 실컷 마시며 저 높은 하늘로 힘껏 머리를 제껴 바라보고 싶구나. 너희들하고 엄마와 함께 말이다.

바로 그런 기분이 될 때 이럴 때쯤 나는 빨래를 한다. 정신없이 빨래를 하다보면 비누거품과 함께 헹구는 물과 함께 눈물처럼 고여 있던 슬픔이 나에게서 빠져나가버리는 것이 느껴진다. 그리고 보너스처럼 그와 함께 노곤함, 유쾌한 피곤함도 몰려오고 말이다. 이러고 나면 며칠 동안 랄랄라........ 하면서 산단다. 아주 쾌활하게 말이다.

그러나 빨래는 쉬운 것이 아니다. 쪼그려 앉아서 하니까 허리가 아프고, 또 빨래가 많으면 어깨쭉지와 등도 뻑쩍찌근할 때도 있고 심한 경우 특히 담요 같은 것을 빨고 난 다음에는 몸살기 같은 것으로 인해 드러눕게 되기도 할 때가 있다.
(주석 20)

 



김근태는 빨래하는 일을 통해 아이들에게 남녀차별 문제와 남녀평등을 가르친다.

아빠가 남녀차별 문제, 여자평등의 문제에 대해 생각하고 공부한 것은 사람이 사는 이 세상을 어떻게 하면 보다 밝고 사랑스럽고 눈물과 한숨 그리고 원한이 없는 곳으로 만들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서였다.

또한 이런 방향으로 아빠가 많이 나아가게 된 것은 엄마에게 잘해주고 싶고,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지만 또한 함께 결혼해 살면서 너희들 남매가 그렇듯이 엄마와 아빠도 서로 대립갈등하면서 타협하고, 물러서고 하면서 배우면서 그렇게 된 것이다.

또 그런 생각에서 할머니도 생각해보고, 지금 부천에 살아계시는 엄마의 엄마, 방순이 할머니의 아름다운 마음과 자신에 찬 생활을 보면서 한층 깊어진 것이다.
(주석 21)

주석
19> 앞의 책, 53쪽.
20> 김근태, <열려진 세상으로 통하는 가냘픈 통로에서>,
50쪽.
21> 앞의 책, 5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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