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태 평전/[9장] 짧은 자유, 또 투옥되다

2012/08/28 08:00 김삼웅

 

 

교도소 규칙에 따라 면회의 시간이 제한되었다.
먼 길을 달려 병준이와 병민이는 엄마와 함께 홍성교도소에까지 아빠를 만나러 왔다가 잠깐 만나고 되돌아가야만 했다. 옥중의 아비는 되돌아 가는 아내와 자식들을 그리면서 옥문의 쇠창살을 붙잡는다.

양심수들에게 감옥은 때로는 시인이 되게 하고, 때론 학자가 되게 한다. 김근태도 다르지 않았다. 아내와 자식들에게 쓰는 편지에는 시적인 감상과 철학적인 심오함이 담기기 일쑤였다. 우리 근현대사에 관심이 많은 김근태는 어느 때는 역사학자가 되었다. 3월 27일 홍성교도소에서 쓴 <너의 망설임을 이해한다>는 편지의 몇 부문이다.

병준이, 병민이에게,
어제 돌아가는 길에 비 맞지 않았는지 모르겠구나.
저녁께부터 부슬비가 소리도 없이 내려 땅거죽을 촉촉이 적시더구나. 이 비가 걷히고 나면 완연한 봄이 우리 앞에 다가설 듯하구나. 땅 위에 조금씩 고여 있는 물 위로 소곤소곤 내리는 빗줄기를 쳐다보면서 이곳에서 너희들과 함께 불렀던 노래를 혼자서 불러보았다.

이번에는 ‘라 구카라차’, 지난번에는 ‘등대지기’였지. 경쾌하지만 약간 부르기는 어려운 ‘라 구카라차’를 잘도 부르더구나. 아버지는 가사도 잊어버리고 박자도 놓쳐서 당황하고 있는 사이 너희들은 배짱 좋게 주욱 앞으로 나갔지.

그런데 이번보다는 지난번 불렀던 ‘등대지기’가 더 마음에 들더구나. 그 노래를 부르면서 여러 가지 느낌이 아버지 가슴에 담겼단다. 그중에 몇 가지만 얘기해보겠다.

우선 그런 노래를 너희들과 함께 부르게 되었다는 것의 확인이 상당히 신나는 일이다. 언젠가 너희들이 엄마와 아버지에게 축복으로 와 태어난 후 포대기에 쌓여 배고프다고 “음매음매”, 똥 쌌다고, 오줌 쌌다고 “음매음매” 하다가 참으로 별안간 너희들 입에서 “엄마” “아빠”하는 부름이 외쳐졌을 때 우리는 상기되었다.

신기하고 그리고 고맙기도 하고, 그러면서 진짜 아버지가 이젠 되었구나 의식하게 되면서 책임감을 새롭게 갖게 되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런 느낌에다가 너희들이 이렇게 컸구나 하는 대견함,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 목소리로 노래를 하면서도 또 그것이 서로 함께 어울리도록 신경쓰는 데에서 보이는 동료감, 그것을 너희들과 함께 노래로서 확인하는 것은 아버지에게 여간한 뿌듯함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렇게 아버지가 감옥에 들락날락하는 데도 너희들이 스스로 밝게 커가는 모습이 보여 고맙고 기뻤단다.

얘들아. 아버지도 너희들만 했을 때 등대지기를 좋아해서 자주 불렀고, 그 후 커 어른이 된 뒤에도 외롭고 눈물이 날 것 같으면 그 노래를 부르곤 했단다. 그 노래 분위기는 명랑하지 않고 약간 슬프지 않니. 너희들은 어떠냐.

멀고 험한 바다에 나갔다가 돌아오는 배에게 캄캄한 어둠 속에서 등대의 번쩍이는 불빛은 분명히 희망이겠지. 고난과 절망 속에서 한줄기 날카로운 희망일게다. 그런데 그 희망의 불빛을 지켜주는 등대지기는 여간 외로운 것이 아니란다. 사람들이 살고 있는 동네에서 뚝 떨어져 참으면서 살아가야 하는 것이란다.

그렇게 참으면서, 외롭게 살면서도 견뎌낼 수 있는 힘, 그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란다. 그래서 그만큼 훌륭한 일이지. 그러면 이러한 힘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너희들은 이미 알고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것은 사람에 대한 사랑, 어두움 속에서 두려워하고 절망하는 사람들에 대해 따뜻한 손길을 내미는 아름답고도 큰 마음에서 오는 것이지.
(주석 16)


주석
16> 앞의 책, 43~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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