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태 평전/[9장] 짧은 자유, 또 투옥되다 2

012/08/29 08:00 김삼웅

 

 

인도의 독립운동가 네루가 감옥에서 편지를 통해 딸에게 세계사 교육을 시켰듯이 김근태도 홍성교도소에서 어둠을 밝히는 ‘등대지기’ 이야기를 통해 역사의 어둠을 뚫고 새날을 열고자한 인물들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말이야. 그렇게 하는 모든 것들이 자랑스러우면서도 그러나 역시 등대지기는 사람이어서 밀려드는 외로움을 어쩔 수 없어 이 노래를 불렀고, 노래를 통해 우리로부터 위로의 말을 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병준아, 병민아. 조금만 더 아버지 얘기에 귀를 기울여줄래.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노래의 ‘등대지기’는 실제의 등대지기이기도 하지만 이 세상 속에서, 사람들 사이에서 희망과 믿음의 불빛을 살구고자 애태우고, 그를 위하여 자기를 희생하고 지금도 하고 있는 귀중한 사람들, 세상의 어둠을 몰아내고자 봉화를 들었던 그 사람들 모두를 말하는 것은 아닐까 싶구나. 김병곤 아저씨, 전태일 아저씨 등이 그렇고 너희들이 잘 아는 문익환 할아버지 또한 우리 모두의 등대지기라고 생각되는구나.

지난 백 여년 동안 그러니까 너희들이 보지 못한 친할아버지가 1901년에 태어나셨는데, 그 한 20~30 여년 전부터(1870년경부터) 지금까지 우리 7천만 겨레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어려움을 겪어 왔단다. 자존심이 짓밟히고, 노예 비슷하게도 되고 매맞고, 죽고, 헤어지고…… 참을 수 없는 지옥의 나날들이었다.

그리고 그 기간 동안 일부 먼저 제 맘대로 하는 왕을 쫓아내고 민주 사회를 이룬 나라들, 그와 더불어 공장을 세우고 경제를 발전시키고, 힘센 군대를 만든 나라들이 있었는데, 이들이 그만 교만해져 다른 나라, 다른 겨레를 짓밟고, 쳐들어가고 하여 미움과 전쟁이 그치지 않은 추악하고 혼란스런 백 여년이었다.

이 백 여년 동안 우리 겨레의 등대지기가 되었던 분들이 유관순 누나, 안중근 의사, 신채호, 한용운, 홍범도 장군이다. 또 있구나. 전봉준ㆍ김옥균 선생 등이 그 분들이다. 다른 나라 사람이지만 중국의 손문ㆍ인도의 네루와 간디 등도 그렇다. 이런 분들의 등대지기 역할로 우리 민중의 배가 암초에, 세계 인류가 증오로 인해 죽고 죽이는 참혹한 지옥에 빠지는 것을 피할 수 있었다.
(주석 17)

김근태는 현재의 ‘등대지기’를 김병곤ㆍ전태일ㆍ문익환을 들고, 근현대사에서는 유관순ㆍ안중근ㆍ신채호ㆍ한용운ㆍ홍범도ㆍ전봉준ㆍ김옥균, 외국인으로는 중국의 손문, 인도의 네루, 간디를 예시하였다. 어린 자식들에게 쓴 편지여서 김근태의 역사철학이 담긴 것이라고 단정하긴 어렵지만, 역사관의 일면이 드러난다.

김근태가 5월 중순에 두 자식에게 쓴 <빨래를 하다보면>은 특이하다면 특이한 서신이다. ‘인병준과 인병민에게’라고 아들과 딸에게 엄마의 성씨를 붙힌 것이다. 최근에야 부모의 성씨를 함께 쓰는 사람이 많지만, 90년대 초에 자식들에게 어머니의 성씨를 쓰는 경우는 찾기 어려웠다.

김근태는 대단한 남녀평등주의자였다.
아내에게도 꼭 경어를 사용하고, 국회의원ㆍ장관이 되었을 때에도 젊은 비서ㆍ여직원에게 하대를 하지 않았다. 다음은 앞에서 인용한 보건복지부장관 시절 연극인 손숙과의 인터뷰 대목이다

 



손 : 아내를 인재근 씨라고 호칭하세요?
김 : 기분이 나면 ‘재근아’ 그러고, 보통은 ‘인재근’ 그러죠.
인 : 저는 김근태 씨라고도 하고, 누구아빠 하기도 하고, 화나면 ‘김꼰대’ 그래요. (웃음)애들도 그렇게 들어서 인지 그냥 엄마라고 안하고 인재근 엄마 그래요.
(주석 18)


주석
17> 앞의 책,44~45쪽.
18> 인재근, <엄마가 뿔났다>, 40~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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