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태 평전/[9장] 짧은 자유, 또 투옥되다

2012/08/27 08:00 김삼웅

 

김근태는 해가 바뀐 1월 15일 두번째로 병민이에게 편지를 썼다. 그리고 가족이 면회온다는 소식에 가슴 두근거리며 그날을 기다린다고 했다. 1월 하순경에 김근태는 충남 홍성교도소로 이감되었다.

우리 조잘이 아가씨에게.
보통 사람들은 자기 별명을 부르면 싫어하는데 병민이 너는 스스로 “나는 조잘인데요”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당연하다는 듯이 얘기해서 더욱 귀엽고 예쁜 아가씨란다.

너의 조잘거림은 아빠에겐 종달새보다 더 아름다운 소리란다. 이건 나뿐만 아니고, 엄마는 물론 큰아버지, 할머니, 고모 그리고 지은, 하정이, 정은이 언니들 모두에게 그렇단다. 네가 보내준 편지를 읽고 또 읽으면서 거기에 너의 조잘거림과 깔깔대는 웃음이 배어 있는 것 같아 자꾸 귀를 기울이게 되는구나, 병민아!

“할 얘기가 많은 데 편지만 쓰면 뭔지 모르겠어”라고 하는 네 표현은 너무나 절절하게 아버지 가슴에 메아리를 치는구나, 그래 자신의 생각, 하고 싶은 말, 느낌을 마치 살아 있는 듯이 글로 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란다. 가끔 신경질이 날 정도로 막힐 때도 있지.

큰아버지가 소설가잖니. 우리 사는 얘기를 생생하게 그리고 재미있게 쓰는 것이 소설인데, 그것을 쓰는 것이 피가 마르는 듯한 일이라고 하는 말 너 들어본 적 없니. 그런데 넌 말이야, 편지에 아주 짧은 문장으로 아빠가 잘 알아듣게 그리고 껄껄거리게 그렇게 썼구나. ‘뭔지 모르겠어’ 하는 말은 결과적으로 괜한 소리가 된 것 같구나.(…)

너희들 껴안아보지 못하는 것 빼고는 이 안에서 나름대로 바쁘게 그리고 보람 있게 지내고 있단다. 그것을 너희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병민아, 옛날 엄마하고 연애할 때처럼 너희들이 온다고 하니까 기다려지고 가슴이 두근거리고 했단다. 예쁜 병민아.

그래 잘 있어라, 추운 날씨에.
(주석 14)

김근태는 전날 아내와 두 자식과 면회하고, 1월 29일, <너희들이 흘렸던 눈물 속에는>란 제목을 붙여 편지를 썼다. 홍성교도소의 제1신이다.

거꾸로 불러볼까, 병민아, 병준아!
어제 되돌아가는 너희들, 풀죽은 모습이었냐, 아니면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 고무풍선처럼 탱탱해졌었냐. 틀림없이 병민이는 풍선처럼 되어 머리에서 김이 모락모락 났을 것 같고, 병준이는 아버지처럼 입이 쭉 빠져 댓발쯤 나오지 않았을까.

너희들이 여기까지 내려올 줄 몰랐다. 지난 일요일 엄마가 면회 왔을 때 수요일에 오겠다고 했지만 너희들 얘기는 없었거든.

어제는 전혀 몰랐다가 엄마가 사 넣어준 음식물을 보고서 사실을 파악하게 되었다. 혈압이 올라 씩씩거리다가 겨우 가라앉히고 책상 모서리에서 이 편지를 쓰고 있다.

그래 그것은 좌절감이다. 팍팍한 거부의 손길은 마음을 아득하게 하지. 그리고 분노의 불길을 타오르게 하지.

병준아, 병민아. 사람은 화를 낼 줄 알아야 한다. 그렇게 해야 할 때 그러지 못하는 것은 경멸받아 마땅한 노예로 전락하는 것이다. 다만 일정한 절제와 냉정한 판단을 동반하면서 그렇게 해야 하겠지. 그렇게 되면 큰 힘이 거기서 솟아나게 마련이란다. 그럴 때 우리 삶 앞에 가로놓여 있는 암초와 매복적 기습에 쓰러지지 않고 나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란다. 거기에 새로운 창조의 자리가 마련될 수 있는 것이란다.

쓰다 두었다가 며칠 후 다시 펜을 잡게 되었다. 그 사이 어저께 (27일) 엄마가 내려왔다 갔다. 그 편에 너희들이 흘렸던 눈물 얘기를 들었다. 아버지는 이렇게 생각한다. 너희들이 흘렸던 눈물 속에는 슬픔과 절망도 있었겠지만 또한 분노도 있었을 것이라고 말이다. 병민이의 눈물은 분함이었고 병준이의 눈물은 가슴 아픔이었을 것이라고. 그리고 그것들은 너희들이 이미 부딪친 바 있던 어두움이었을 것이라고…….

여기까지 내려왔던 너희들을 만나보지 못한 것이 가슴 쓰리고 또한 아쉽구나, 하지만 바로 저 담벼락 바깥에 여전히 남아 있을 너희들 흔적과 마음을 느끼고자 하며, 그로써 이 겨울추위 속에서 가슴에 온기를 품고자 한다.
(주석 15)


주석
14> 앞의 책, 34쪽.
15> 앞의 책, 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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