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태 평전/[9장] 짧은 자유, 또 투옥되다

2012/08/24 08:00 김삼웅

 

현대판 민족개조론자

김근태는 1989년 여러 가지 활동을 하면서 <노동문학>에 알맹이 있는 칼럼 몇 편을 썼다.
노동운동 출신으로 노동자와 노동운동에 각별한 관심과 애정이 있던 그로서는 짧은 칼럼이지만 열성을 다한 글이다.

4월호에는 ‘민주운동가’ 란 직함으로 <현대판 민족개조론자>란 제목의 칼럼이었다.
이 책에는 고은ㆍ노무현ㆍ신경림ㆍ박현채ㆍ윤구병ㆍ이호철ㆍ이오덕ㆍ유시춘 등 낯익은 필자들이 함께하였다. 김근태의 글은 민족의식, 민족자주의 얼이 깃든 보기드문 격문이다.

반미감정은 열등감의 소산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중에는 한국민을 대표하여 미국에 가 있는 대사도 한몫 끼고 있다. 미국 텔레비전에 나가서 그렇게 말했다.

그렇다. 분명히 말하자면 이렇다. 반미 감정은 열등감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한 격렬한 정서이며, 또한 우리에게 열등감을 강요하고 강제해 온 외세에 대한 단호한 ‘거부’이다. 그에 대한 올바르고 과학적인 인식의 출발인 것이다. 이른바 반미 감정은 한때 유행하는 그런 감정이 아닌 것이다. 무차별한 농ㆍ축산물 수입 개방 압력 앞에 맞서 싸우는 근로농민 계층, 가파른 원화 절상 압력으로 고통 받는 중소기업주들, 합법적인 노조운동을 비열하게 탄압하는 미국 자본에 맞서 분노하고 있는 노동자들이 이렇게 여기에 굳세게 모여 있지 않은가.

우리를 깔보고 모욕하고 괴롭히며 때로는 때리기까지 하는 저들에 대항하여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이태원 밤거리에 2천여 명의 시민이 모여 노래를 그토록 비장하게 부르고 있지 않은가. 행패 부리는 미군 병사들에 대해, 그들을 싸안고 도는 경찰들에 대해 새벽 2시 이태원 거리에서 그렇게 애국가로 대항하고 있는 것이다.

김근태는 화성군 사례 등을 예시하고 곧 ‘본론’으로 진입한다.

이런 우릴 보고도 여전히 위컴은 들쥐라고 말할 것인가. 나는 그게 궁금하다. 박정희 군사 파쇼 시대에, 전두환의 초기에 우리는 들쥐처럼 눈을 내리깔고 어깨는 축 늘어뜨린 채 그렇게 살아왔는지는 모른다. 그런데 우리의 눈을 뜨게 하고 결단코 더 이상 들쥐일 수는 없게 만든 장본인이야말로 위컴이고 글라이스틴이며 그러그러한 양키들인 것이다. 80년 서울의 봄의 좌절에서, 광주사태에서 드러났던 추악한 그들의 모습이 우리 내부의 자존심에 불을 질러 버린 것이다.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우리는 부시 방한 반대를 소리 높여 외쳤던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는 들쥐로 고정시키려는 집단이 있다.
그들은 누구인가?
민중을 억누르고 빼앗는 정치 군부, 특권적 관료 집단이 그들이다.
프란츠 파농이 비웃어 주었던 검은 피부, 흰 가면과 똑같은 누런 피부, 흰 가면을 쓰고 있는 집단들이다.

이들은 일제 치하에서 자치를 구걸하고 민족개조론을 주장했던 반민족세력의 후예인 것이다. 민족의 절대독립을 외치고 실천했던 위대한 애국자와 민중을 배반했던 수치스런 매국노들의 후예이다. 현대판 민족개조론자로서 여전히 “아직 우리는 열등합니다. 제발 너그럽게 봐 주십시오.”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어떻게 이런 꼴불견을 더 이상 봐 줄 수 있단 말인가. 도저히 안 될 일이다. 그렇지 않은가.
(주석 6)


우리, 일어서야 한다


김근태는 이 해 6월호에는 다시 <우리, 일어서야 한다>는 칼럼을 썼다. 노태우 정권이 유화책을 내걸면서 이면에서는 수많은 청년학생, 민주인사, 노동자들을 구속한 사례를 비판하면서 다음과 같이 쓴다.

우리에게 89년 5월은 80년 5월이 되고 있다. ‘광주’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아니 ‘광주’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이철규 형제의 처참한 죽음 속에서 ‘광주’는 저처럼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80년 합수부처럼 89년의 합수부는 우리에게 ‘광주’를 강제하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하나. 귀 틀어막고 눈 내리깔고 비겁자처럼 또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인가.

김근태는 이 글에서 ‘이철규 변사사건’을 언급한다.
1989년 5월 1일 조선대 교지 <민주조선> 창간호와 관련, 전남지역 합수부의 지명수배를 받아오던 교지 편집위원장 이철규(전자공학과 4년)가 광주시 북구 청옥동 제4수원지에서 변사체로 발견되었다. 정국은 타살이냐 실족사냐를 둘러싸고 치열한 공방이 벌어지고, 정부는 사인규명을 요구하는 시위 학생들을 대량 검거하였다.

이철규 형제의 죽음은 무엇인가.
그것은 또 다른 ‘죽음의 광주’인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위대한 광주, 항쟁하는 광주로 발전시켜야 한다. 그를 위해서 그 죽음의 진상을 철저히 규명해야 한다. 플랑크톤이니 과학이니 하면서 우리에게 머뭇거림을 강제해 오는 저들의 시꺼먼 의도를 단호히 거부해야 된다. 우리는 일어서야 한다. 수백 수천 명이 감옥에 갈 각오를 하면서 다시 나아가야 한다. 공장과 농촌에서 학교ㆍ교회ㆍ절에서 그리고 거리에서, 거리거리에서 광범한 대중집회와 시위를 조직해 내야 한다. 특히 공장과 농촌에서 또한 거리에서 노동자와 근로농민이 주동이 되어 일어서야 한다.

광주와 이철규 죽음의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그 책임자 처벌을 관철시키는 힘은 여기에 있다. 노동조건을 개선하고 생산비 보장을 요구하는 투쟁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근원적으로 제약하고 있는 지배권력의 탐욕과 증오심을 분쇄하는 곳에서만 승리의 길이 열리는 것이다.(…)

이것은 가능한가. 절대로 가능하다. 누가 감히 가능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전진하고 있는 민주의 저 굳센 발자국 소리가, 우렁찬 함성이 저렇게 파도치고 있지 않은가.
(주석 7)

<민족민주운동> 창간호 발언

김근태가 석방되고 다시 활동을 시작할 무렵인 1988년 9월 민청련은 부설기관으로 ‘민족민주운동연구소’를 설립하였다. “민족민주운동의 과학적 이론정립과 정책수립역량의 제고에 보탬이 되고”, “민주통일 민중운동연합과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의 후원 하에 연구소를 설립한다” 고 취지를 밝혔다.

연구소는 1989년 4월, <민족민주운동> 창간호를 발행하면서, <한국경제의 성장과 민족민주운동의 진로>를 탐색하는 기획좌담을 머릿기사로 실었다. 김근태를 비롯하여 신철영(서울 노동운동단체협의회 사무국장), 정태윤(진보정치연합 공동대표), 채만수(민족민주운동연구소 소장, 사회)가 참석했다. 주제는 ‘경제성장과 민민운동의 진로’였으나 토론 내용은 한국경제의 실상과 자본문제ㆍ노동ㆍ농민문제의 심각성, 그리고 이러한 상황에서 민민운동의 역할 등이 폭넓게 논의되었다.

이 좌담에서 김근태는 대단히 중요한 발언을 하였다. 상과대학출신으로서 한국경제의 실상을 전문가답게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한다.

주의해야 할 것은, 이런 부분적인 획득, 몇가지 개량화 조치, 이런 것들이 남한사회의 현재 조건에서 앞으로 지속적으로 획득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인데, 이러한 것에 대해서 저는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다른 나라의 역사적 경험에서도 그렇고, 우리의 경험 속에서 현재의 상부구조ㆍ하부구조의 실제적인 조건에 비춰 봐도, 그런 단계적인 개량을 통해서 민중들의 삶이 향상되고 인간의 행복이 보장될 수 있는, 그런 길로 나갈 수 있는, 그런 길로 나갈 수 있다고는 볼 수 없고, 그렇게 봐서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보는 것이 개량주의이고, 그런 개량주의는 우리의 조건 속에서 불가피하게 파탄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주석 8)

김근태는 현 시국(당시)을 수구세력의 전략적 개량화 조치로 평가하면서 대단히 불안한 국면으로 인식한다. 한 대목을 더 발췌한다.

지배세력이 결정적인 궁지에 몰리고 있는가 하는 문제는 그들의 입장에서 지금의 상황을 획기적으로 역전시킬 필요가 있겠는가의 문제인데, 이것과 관련하여 우리의 입장에서는, 지금의 민중운동이 몇가지 개량조치 속에서 변혁운동 쪽으로 이끌려 올 것인지 아니면 체제내화되는 개량주의적운동으로 갈지가 아직 모호한 상태에 있지 않느냐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것을 둘러싼 쟁투가 지금 실제로 날카롭게 제기되고 있지 않느냐 하는 판단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열린 공간에서는 탄압을 대비해야 되고 탄압시기에는 열림을 위해서 투쟁해야 하는 것이 운동에 참여하는 사람으로서 균형된 자세가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주석 9)


주석
6> <노동문학>, 1989년 4월호.
7> <노동문학>, 1989년 6월호.
8> <민족민주운동> 창간호, 28쪽, 아침, 1989.
9> 앞의 책,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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