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태 평전/[5장] 남영동 인간도살장에서 당한 모진 고문 2

012/07/29 08:00 김삼웅

 

 

1985년 당시 민주화운동청년연합 의장이었던 고 김근태 의원이 '고문기술자' 이근안으로부터 살인적인 물고문, 전기고문 등을 받았던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현 경찰청 인권센터) 515호 조사실앞에 14일 오후 조화가 놓여 있다.ⓒ권우성

 

일곱번째 고문은 9월 10일 저녁 7시경부터 10시경까지 자행되었다.
이번 고문은 처음 행한 방법이었다. 전기봉고문인데 양쪽 발등에 무슨 장치를 하고 진동을 일으켜 고통을 가하는 방법이었다. 지휘자는 김영두이고 김수현이 뒤에서 조종하였다. 박병선ㆍ최상남ㆍ정현규ㆍ경북출신의 경찰이 번갈아가며 고문을 하였다.

전기봉고문은 이렇습니다.
대단히 빠른 진동 때문에 발등에는 심한 통증이 옵니다. 상처가 생기고, 깊이 파이는 것 같은 느낌조차 옵니다. 피가 흐르는 기분도 듭니다. 그러나 이 전기봉고문은 그래도 받을 만하다고 할까. 상쾌하다고나 할까. 아니 양념고문이었다고 할까요. 원체 심한 고문을 당해서 그런지 이날 같기만 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조차 했었습니다. 더구나 물고문도 이날은 하지 않았습니다.
(주석 28)

악마들은 교묘한 방법으로 김근태를 압박했다. 일종의 심리전이다. 고문을 가할 경우에는 밥을 주지 않았다. 그래서 끼니 때가 되어도 밥을 주지 않으면서, 곧 고문의 순간이 도래한 것처럼 인식케 하여 심리적 불안을 가중시키는 방식이었다. 악마들은 다른 무슨 자백을 받아내거나 자신들이 무슨 일로 기분이 좋지 않을 때면 어김없이 이 방식을 썼다.

그런데 고문자들은 9월 13일 이후 심리적인 압박을 가하는데, 이 밥을 안 주는 것과 고문을 가하는 것을 연관시켜 매우 잘 사용하였습니다. 즉 고문자들이 뭔가 불만이 있으면 밥을 안 주고, 그러면 본인은 고문이 박두했음을, 위험이 다가오고 있음을 깨닫고 파랗게 질리곤 하였습니다. 이때 고문자들은 무엇인가를 요구하고, 덜덜 떨면서 나는 시키는대로 하구요. 고문, 그것은 마음내키는 대로 하는 것이 아니고 나름대로 과학적이고, 많은 경험을 통해서 정리된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고문의 시점, 방법 등에 대해서는 정말 사장급 이상의 회의에서 여러 가지로 검토하고 결정하는 것이 틀림없이 분위기로 전달되었습니다. (주석 29)

수사기관은 양심수나 확신범을 체포해다가, 언제부터 언제까지의 기간에 지내온 일을 빠짐없이 기술하라고 다그친다. 몇 차례 되풀이 하여 쓰고 나면 우선 기가 빠진다. 나중에는 왜 앞의 내용과 다르냐고 후려친다. 아무리 기억력이 좋은 사람도 수년 전의 일시, 만난 사람이 일치하기란 쉽지 않다. 김근태에게 대학시절, 제대 뒤 복학 때의 친구 관계, 크리스천 아카데미에서 행한 행사 등을 캐묻고, 빛바랜 사진을 들고 와서 자신과의 관계를 쓰라고 겁박했다.


주석
28> 앞의 책, 69쪽.
29> 앞의 책, 6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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