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태 평전/[5장] 남영동 인간도살장에서 당한 모진 고문

2012/07/26 08:00 김삼웅

 

고문 조사실로 향하는 회전식 철제계단. 사진은 오마이뉴스 권우성 기자

 

김근태는 첫번째 고문으로 이미 질식상태가 되고 말았다. 수사관들의 “항복하지, 이래도 진술 거부할 거야?”라는  소리가 아득하게 들렸다. 오전 7시 반부터 시작된 고문이 낮 12시 반이 지나도록 계속되었다. 5시간 동안 이같은 고문이 계속되었다.

두번째 고문은 이날 저녁 8시경부터 자행되었다. 다시 옷을 벗기고 고문대 위에 칭칭 묶었다. 그리고 오전과 같은 고문을 또 시작했다.

고문자들은 점점 크게 보이고 그럴 듯해 보이더군요. 당당하고 의젓하게 보이기도 하구요. 물론 무조건 고문을 하는 것이지요. 요구사항은 없었고 묻지도 않았습니다. 얼마나 지났는지 몰랐고 묻지도 않았습니다. 얼마가 지났는지 어떻게 되는 건지 합리적 사고나 대응 같은 것은 그야말로 무용지물이었습니다. 학대와 능욕을 어느 만큼 가하고 나면 그러나 고문자들은 뭔가를 반드시 제기하는 것이더군요.

이번에는,
① 폭력혁명주의자임을 자백하고
② 사회주의 사상을 갖고 있음을 자백하고
③ 각 민주화운동 부문에서 움직이는 핵심적 인물을 대라. 김근태와 민청련이 제일 과격하고 제일 먼저 움직여서 오늘 같은 사태를 가져왔다. 우선 학생운동과 노동현장에서 움직이는 하수인을 대라.(…)

얼마 동안은 사실 끈덕지게 버텼었습니다. 허나 안 되더군요. 이렇게 개죽음을 당할 수는 없다. 그리고 구체적인 것의 시인은 아니지 않는가 하는 고통에 못이긴 굴복에의 유혹이 머리를 쳐들더군요.

나는 인정을 했습니다. 그리고 학생운동의 배후가 이범영이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사실 나로서는 아는 바가 전혀 없지만 누군가를 꼬집어서 얘기하지 않으면 안 되었지요. 당시 이범영 씨는 이미 경찰의 수배를 받아서 피신중이었기 때문에 거짓으로 얘기해도 별 피해가 없으리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했던 것입니다. 이 두번째 물고문도 대략 5시간 걸렸습니다. 끝난 것이 5일 새벽 1시경이었으니까요.

9월 4일의 두 번에 걸친 물고문, 그것만으로도 본인의 인간적 주체성은 크게 동요되고 일관성 있는 인격은 와해되어 가기 시작했습니다. 외부에서 폭력적으로 강제되는 것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음을 처절하게 느끼게 된 것이지요. 이 만화 같은 현실에 머리를 숙여야 했지만 그러나 아직은 자신의 주체성, 그것을 다 포기하지는 않았었습니다. 두꺼운 모직 겨울 잠바, 검정색과 붉은색의 체크무늬 잠바를 남영동 그곳을 나올 때까지 줄곧 입고 있습니다.
(주석 17)

세번째 고문은 9월 5일 저녁 8시 반부터 다음날 새벽 1시경까지 계속되었다. 이번에는 전기고문이었다.

완전히 발가벗겨졌습니다. 팬티도 남김없이 날라가 버리고요. 이곳에서 무슨 수치심 그런 것을 여밀 계제는 전혀 아니었지요. 그러나 팬티조차 벗겨지고 보니까 더욱 당황케 되면서 이제 모두 빼앗겨 버리고 말았구나, 그래도 아직 남은 것이 있고 소극적 저항의 표시물인 것처럼 느껴졌던 팬티마저 빼앗기고 말았던 것입니다.

칠성대 위에 또 다시 꽁꽁 묶여진 다음에 고문자들은 발바닥과 발등에 붕대 같은 것을 여러 겹 감았습니다. 새끼 발가락과 그 다음 발가락 사이에 전기 접촉면을 끼우고, 그것이 움직이지 않도록 하는 조치를 취하는 것 같았고 이 붕대도 전기담요처럼 전기가 통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 다음 발에, 사타구니에, 배에, 가슴에, 목에, 그리고 머리에 물을 주전자로 들어부었습니다. 그때 물의 섬뜩함은 귀기가 살갗에 달라붙는 바로 그것이었지요.

고문기술자는 뭔가 쉴새없이 떠들고 겁주고 협박을 하였는데 이제 전기가 통하면 회음부가 터져 피가 흐를 것이라고 하면서 그래서 팬티를 벗겼다고 하였습니다. 우선 물고문으로부터 시작하였습니다. 다만 그 강도는 물고문만 할 때보다는 못했지만 공포나 질식할 것 같은 답답함은 더욱 깊어만졌습니다. 소스라쳐 놀라게 되고 머리를 힘껏 움직이게 되지요.

어느 정도 물고문이 진행되어 몸에 땀이 나는 것 같게 되면, 그때부터 전기고문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짧고 약하게, 그러다가 점점 길고 강하게, 강력하게 전류의 세기를 높였습니다. 그리고 중간에는 다시 약해지고, 가끔씩은 발등에 전기를 순간적으로 대기도 했습니다.
(주석 18)

전기고문은 뒷날 상처의 흔적을 남기지 않기 때문에 고문자들이 즐기는 수법이었다.

“전기고문, 그것은 핏줄을 뒤틀어 놓고 신경을 팽팽하게 잡아당겨 마침내 마디마디 끊어 버리는 것 같았습니다. 머리가 빠개질 듯한 통증이 오고 그 몰려오는 공포라니, 죽음의 그림자가 독수리처럼 날아와 파고드는 것처럼 아른거렸습니다. 온몸이 저리고…”  (주석 19)

김근태는 온 몸에 전류를 받으면서 신체의 마비와 정신적 착란상태에 빠져들었다. 결코 굴복하지 않겠다는 다짐도 어느 틈에 사그라졌다. 이성이 마비되고 있었다.


주석
17> 앞의 책, 49~50쪽.
18> 앞의 책, 50~51쪽.
19> 앞의 책, 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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