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태 평전/[5장] 남영동 인간도살장에서 당한 모진 고문

2012/07/28 08:00 김삼웅

 

악마들은 김근태에게 ‘자백’할 것을 강요하면서 고문을 계속했다. 정권 핵심에서 내려보낸 시나리오대로 간첩과 접선한 것으로 만들려는 각본이었다. 처음에는 배후를 대라고 족치고, 다음에는 간첩으로 남파된 형들로부터 돈을 받았다는 것을 자백하라고 고문하였다.

“남민전 이재문이 어떻게 죽은 지 알아? 전노련 이태복 얘기 너도 들었을 거다. 이재문이는 여기서 당해서 이미 속이 부서져서 감옥에서 병사한 거야. 너도 각오해”하고 협박을 하였습니다. 이날은 남영동에서 고문받았던 중에서 최악의 고통스러운 날이었습니다. 가장 혹독하고 긴 고문을 받았습니다. (주석 23)

유신이나 5공체제에서 고문을 당해 본 사람들은 쉽게 수긍이 가는 일이지만, 밀폐된 수사기관에 갇혀 저승사자들에게 몇 차례 가혹한 고문을 당하다보면 항우 장사라도 ‘자백’하지 않을 수 없다. 나중에 삼수갑산을 가더라도 당장 연옥에서 벗어나고 싶다. 이것은 어쩔 수 없는 인간의 한계다.

남한 사회에서 ‘간첩’은 곧 죽음을 의미하는 데도 수사관이 불려준대로 자신이 간첩이었다고 진술서에 서명하게 된다. ‘살기 위해 죽을 짓’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법원은 이 ‘자백’을 근거로 사형 등 중형을 선고한다. 재판정에서 아무리 아니라고 호소해도 판사는 받아들이지 않고 ‘자백’만을 근거로 제시한다. 근래에 재심을 통해 더러는 무죄가 밝혀지기도 하지만, 억울하게 한을 품고 죽은 사람도 많았다.

김근태는 결국 ‘자백’을 했다.
야수들은 심지어 월북한 사실을 자백하라고 다그쳤다. 어떻게 월북했느냐고 추궁하니까 삼천포에서 배를 타고 갔다고 했다. 80년 광주사태 당시 어느 동지가 삼천포에서 일본으로 밀항하려 했다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나서였다. 남파된 형들에게 돈을 받았느냐니까, 받았다고 했다.

“간첩과의 접선은 본인에게 죽음을 가져온다는 것을 알면서도 덮쳐 누르는 전기고문과 물고문의 고통을 우선 모연하기 위해서입니다.”
(주석 24)

억지로 ‘자백’을 받아낸 악마들은 구체적인 설명을 요구했다. 상부 보고용, 재판에 필요한 대본이 필요한 것이다.

그랬더니 그것을 합리적으로 설명하기를 요구하면서 증거를 요구하더군요. 돈을 받았느냐고 해서 100만원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74년도에 쌍문동 집 근처에서 한번 만났고 84년도에 역곡에서 한번 만났다고 했습니다. 이 고문자들 참 좋아하더군요. 좋아서 미쳐 날뛰기 일보직전인 것 같았습니다. 김수현은 합리적 근거를 대라고 요구했습니다.

이들의 분위기는 달밤에 먹이를 앞에 놓고 질질 침을 흘리고 있는 털 빠진 승냥이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이렇게 저렇게 말을 만들어서 얘기를 하니까 고문자들이 거들어 주고 수정을 하고 해주었습니다.

고문대 위에 놓여진 본인과 고문자 사이의 협력과 토의수정이 진행되어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한참을 이렇게 해 나가며 각본을 만들어 나갔습니다.
(주석 25)

김근태는 ‘자백’을 하자 악마들이 히히덕거리며 너무 좋아하고 분위기가 다소 풀린듯 하자, 용기를 내어 “사실은 그런 일이 없었다”고 번복했다. 그랬더니 고문자들은, 악귀가 되어 날뛰면서 다시 고문을 시작하고, 김근태는 또 ‘고백’하는 일이 몇 차례 되풀이 되었다. 이때 김근태는 “정말 무서운 것은 비극이 아니라 희극”이라고 생각했다.

부정했지만 결국은 또 인정하게 되구요. 도대체 몇 번을 이렇게 왔다 갔다 하도록 고문하고 강요했는지 모릅니다. 거기다 또 말이 왔다 갔다 한다고 고문을 해대고 말입니다. 아. 이처럼 눈물나는 희극이 세상에 없을 것입니다.

정말 무서운 것은 비극이 아니라 희극이구나.
희극의 시대이구나. 이 저주받을 희극의 시대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일입니다. 하여튼 월북과 간첩과의 접선 얘기는 대충 이렇게 끝났습니다. 이후에는 필요할 때는 위험수단으로 사용했지만 이 문제에 관한한 어떤 진지함을 고문자들은 갖고 있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
(주석 26)

악마들은 김근태가 자주 ‘자백’을 번복하자 ‘악질’로 단정했다.
그리고 더 가혹하게 고문을 자행했다. 8일 오후 1시 반경에 오전의 고문을 끝냈다가 저녁 7시경 또 전기고문을 시작해서 밤 12시까지 계속되었다.

이번에는 민청련 조직의 배후를 대라는 것이었다.
배후 같은 것은 없고 자생적인 조직이라면 다시 고문을 하였다. 결국 재야 운동권과 종교계 인사들의 이름을 대라고 하여 되는 대로 이름을 댔다. 결국 함세웅 신부와 권호경 목사로 압축되는 시나리오였다. 이들에게는 참으로 안 되는 일이지만 악마들의 각본을 인정해주어야 했다.
(주석 27)

 

주석
23> 앞의 책, 62쪽.
24> 앞의 책, 63쪽.
25> 앞의 책, 63쪽.
26> 앞의 책, 64쪽.
27> 앞의 책, 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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