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태 평전/[5장] 남영동 인간도살장에서 당한 모진 고문
2012/07/21 09:50 김삼웅
2ㆍ12총선 결과는 정계의 지각변동을 가져왔다. 국민은 관제야당이라는 민주한국당(민한당) 대신 김대중ㆍ김영삼이 급조한 신생야당 신민당을 제1야당으로 선택하였다. 두 김씨가 아직 정치규제에서 풀리지 않았으나 신민당의 ‘대부’가 되어 총선을 승리로 이끌고 마침내 정국은 5ㆍ17 쿠데타 5년여 만에 5공세력과 새로 결집된 구야권세력이 팽팽하게 대결하는 구도가 형성되었다.
그동안 민청련을 비롯하여 학생ㆍ청년ㆍ재야ㆍ노동계의 치열한 반독재 투쟁의 결과로 5공의 철벽이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민주진영은 민청련의 결성을 필두로 1984년 1월 6일 한국노동자복지협의회, 같은 해 4월 14일 민중문화운동협의회, 동년 5월 18일 민추협, 동년 6월 29일 민민협을 각각 결성하였다. 이와 함께 재야 명망가들을 중심으로 포괄하는 민주통일국민협의회(민통협)이 결성되면서 민민협과 민통협의 통합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김근태는 민민협의 결성에 심혈을 기울였다. 민주세력의 연대를 통해 투쟁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는 뼈저린 인식때문이었다. 그동안 청년ㆍ노동ㆍ재야 단체들의 개별 활동으로 인해 효율적인 투쟁 성과를 갖지 못한 채 진행된 고립된 폐쇄상태를 극복하자는 것이다. 민청련은 각 민주화ㆍ노동단체를 묶어 협의체 건설에 나서 1984년 6월 29일 상지회관에서 민민협 창립대회를 열었다.
창립대회는 대표위원으로 김승훈 신부, 김동완 목사, 이부영 동아투위 위원을 추대하고 서기에 김근태 의장을 선출하였다. 이밖에 감사, 중앙위원회 위원, 상임위원회 위원을 각각 선출, 위촉하였다.
민민협은 각 민주화운동 단체가 그간 합법 영역에서 축적한 역량을 토대로 구축한, 조직운동의 힘이 결집된 형태였다. 이후 민민협은 8월 11일, 종로 1가 서울빌딩 703호에 사무실을 개설하고, 10월 1일에는 민민협 소식지 <민중의 소리>를 창간한다. 한편 재야에서 지명도가 있는 인사들이 중심이 되어 상징적 정치투쟁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민주통일국민회의(국민회의)가 10월 16일 출범하게 되고, 민민협과 국민회의는 1985년 3월 29일 민주ㆍ통일민중운동연합(민통련)으로 통합한다. (주석 1)
80년대 한국사회는 질풍노도의 시대였다. 청년학생, 노동자, 재야, 여성들이 많은 희생을 치르면서 민주화와 노동자생존권 보장, 민족자주를 요구하며 반독재 투쟁에 나섰다.
이 시기 민청련의 투쟁은 괄목할만 했다. 김근태는 항상 투쟁의 중심에 있었다. 이 시기 민청련의 주요 활동을 일지로 정리한다.
1984년
4월 7일 - 2차 총회 <민주화의 횃불을 드높이기 위하여>선언문 채택, 침묵 가두시위
19일 - 4ㆍ19묘지 참배, 경찰의 집단 폭행으로 회원 다수 부상
5월 1일 - <모든 양심수 전원 석방>요구하는 성명서 발표
14일 - 광주 망월동 묘소 참배, 광주 도청 앞에서 가두시위
19일 - 광주항쟁 희생자 추도식, 광주항쟁 자료집 발간
6월 14일 - 노동자 복지협회 등과 택시기사 파업시위 관련 가두홍보
8월 15일 - 민족해방기념식 행사 경찰 방해로 무산되자 가두시위
8월 28일 - 일본 각료 방한 반대 성명 발표
0월 20일 - 제3차 총회(홍사단 강당)
11월 17일 - <민정당사 농성사태에 대한 우리의 견해> 기자 회견
1985년
3월 1일 - 국민회의 등 6개 단체와 흥사단에서 3ㆍ1절 기념행사 경찰지지로 성명서 발표 뒤 파고다 공원에서 행사
3월 2일 - 국민회의 등과 <현정권의 야만적인 노동조합 탄압을 규탄한다>는 공동성명 발표
3월 21일 - 제4차 총회, 결의문 채택, ‘광주사태 진상규명 위원회’ 발족
4월 2일 - <부당한 철거정책 중단하라>는 전단 살포
11일 - 15개 단체와 공동으로 <옥중에서 신음하는 민주인사 구출하자>는 성명 발표
12일 - <전두환 씨 방미 철회>성명 발표
19일 - 민통련 등과 수유리에서 4ㆍ19혁명기념식 거행
5월 1일 - 전국 32개 민주단체와 기자회견, <5월 광주 민중항쟁 5주년에 즈음한 우리의 입장> 발표
5월 3일- ‘광주학살 진상규명위원회’(민청련 소속) 주최, ‘광주민중항쟁 진혼굿’ 개최
10일 - 경찰, 사무실 압수ㆍ수색, 유인물, 책 등 압수, 김근태 등 연행
17일 - <광주사태 책임자 처단 촉구대회>가두 시위 참가
18일 - 기자회견 <5ㆍ18이후 계속되는 민주화운동세력에 대한 탄압을 규탄하라>는 성명 발표.
19일 - 경찰, 사무실 수색ㆍ압수
25일 - 민통련 등과 <서울 미문화원 농성투쟁 지지>성명 발표
29일 - 전학련 등과 종로 2가에서 ‘광주학살정권퇴진을 위한 국민대회’ 개최
30일 - 경찰 폭력 규탄하는 성명발표
6월 7일 - 9개 단체와 서울대에서 국민토론대회 개최
12일 - 민청련 여성부 등 10개 단체, 17개 여학생 대학연합, ‘성도섬유 부당해고 여성 노동자 추진위’ 결정, 간부 3명 연행
22일 - 김근태 의장 중부서로 연행
26일 - 11개 단체와 <현정권의 말기적 노동운동 탄압규탄> 성명
8월 10일 - 5차 총회, 의장 한경남, 부의장 최민화 등 선출 (주석 2)
주석
1> <6월항쟁을 기록하다(1)>, 219쪽.
2> <민주화의 길>, 1~12호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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