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태 평전/[4장] 전두환 타도의 전위 ‘민청련’ 이끌다

2012/07/19 08:00 김삼웅

 


김근태와 민청련 회원들은 광주항쟁 4주년을 앞두고 5월 14일 버스 두 대로 광주로 내려가 오후 2시 망월동 묘소에 분향하고 추모식을 거행하였다. 김근태는 <오! 영원한 민주화의 불꽃이여!> 란 추모사를 낭독하였다.

추도식을 마친 일행은 광주 금남로를 따라 스크럼을 짜고 <5월의 노래>를 부르면서 가두시위를 벌였다. 많은 광주시민들이 지켜보고, 이후 광주민주화운동에 새로운 충격과 분발을 촉발하는 계기가 되었다.

민청련은 5월 19일 오후 서울 흥사단에서 <5월과 민족의 혼>이라는 주제로 광주민주화운동 추모식을 거행하였다. 1천여 명의 시민이 참여하는 성황을 이루었다. 진혼굿과 더불어 광주항쟁의 사진ㆍ판화전을 열었다. 또 광주시민 학살 사진과 함께 수기와 일지 등을 담은 자료집 <광주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를 제작 배포하였다. 광주학살 사진 전시와 자료집 발간은 이것이 처음이었다. 이날 추모식이 끝난 뒤 30여 명의 참석자가 경찰의 폭력으로 부상당하였다.

광주 망월동 묘소에서 발표한 김근태의 추모사 <오! 영원한 민주화의 불꽃이여!> 요지는 다음과 같다.

영령들이시여.
금남로에도, 무등산에도, 여기 당신들께옵서 몸과 혼을 눕힌 망월산 언덕에도, 봄은 다시 찾아와 푸르른 들빛 빛나고 있건만, 술과 흥분제로 마비된, 저 잔학무도한 군사팟쇼의 하수인들의 미친 총칼에 찢기고 잘리운 상처 아물릴 길 없어 이 푸르른 봄에도 상처마다에서 피를 뚝뚝흘리며 살점을 뜯기우며, 목을 비틀리우며, 우리의 이 아픔, 이 원한, 이 신음을 풀어달라 끝없이 뒤채이며, 누워계신 영령들이시여.

이 땅의 민중들이 민주주의의 햇살 아래 통일된 반도의 남북을 자유로이 오가는 생기찬 발걸음 소리를 들으며, 이 땅의 민중들이 폭력도 착취도 외압도 없는 해방과 평화의 땅에서 서로 어울려 즐거이 일하고 노래하는 소리를 들으며, 혼백이나마 고이 잠들게 하여 달라, 즐거이 누워있게 하여달라고, 오늘도 그날의 그 피묻은 하소연을 금남로여, 광화문이여, 우금치며, 공장이며, 학교며, 농촌이며, 바닷가며, 산골이며, 이 강산 골골을 원혼으로 떠돌며 부르짖고 계신 영령들이시여, 투사들이시여, 전사들이시여.

영령들이시여, 5월의 투사들이시여, 민족의 전사들이시여, 저희들은 절망하지 않습니다. 저희들은 저 창칼 앞에 굴복하여 복된 삶을 영위하기 보다는 당신님들이 보여주셨듯이 결단코 저 창칼에 맞부딪혀 싸우다가 쓰러지는 영광의 삶을 택할 것입니다. 창칼의 억압이 심하면 심할수록, 교활하면 교활할수록, 폭력적이면 폭력적일수록, 저희들의 싸움 또한 가열되어 갈 것입니다.

천지신명이시여, 하늘과 땅의 모든 바른 영령들이시여, 부디 여기 망월산 언덕의 5월의 피묻은 원혼들께서 고히 눈감고 편히 쉴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5월의 영령들이시여, 천지신명들이시여, 저희들이 행여 눈이 어두워져 제 앞에 바르게 가리지 못할 때면 이를 벗어날 수 있는 지혜의 원천이 되어주시옵고, 저희들이 행여 폭력의 강물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면 이를 떨치고 일어설 수 있는 용기의 비결이 되어주시옵고, 행여 저희들이 사사로운 욕망과 다툼이 민주장정의 앞길을 가로막을 때면 이를 과감이 척결하고 나아갈 수 있는 통합력의 샘물이 되어주시옵고, 언제나 저희들이 작은 허물과 비겁을 나무라시기 전에 저 잔학무도하고 교활한 폭력과 폭력자들과 폭력구조의 함정에 빠진 사람들, 저 미친 하수인들까지도 평생 죄책감을 느끼게는 하시되, 그들의 인간됨만은 너그러이 감싸안아 주시옵고, 이들과 저희들이 그 함정에서 분연히 벗어나도록 도와주시옵고, 대신 폭력의 원흉들이 그들 자신이 만든 폭력의 함정에 영겁토로 갇혀 신음하도록 함으로써 이 땅 이 세상에 폭력을 생산하고 조성하는 구조가 영원히 절멸되도록 도와주시옵길 비옵니다.

영령들이시여, 민족의 전사들이시여.
당신들은 편히 누우신 그대로 저희들과 민족의 앞길을 밝히고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주는 힘과 빛으로 되어 계시오니, 원컨대 이제는 떠도는 원혼을 거두시고, 피흘림을 멈추시고 편히 쉬옵소서. 평안하소서. 안락하옵소서. 영령들이시여.

살아있는 저희들은 살아있는 동안 언제까지나 부끄럽고 죄스러울 것이옵니다만, 저희들의 이 부끄러움과 죄스러움을 조금씩 씻어가는 모습을 부디 믿고 지켜봐 주시옵고, 지금도 이토록 작고 초라한 터에서 여러모로 불편하시고, 폭력의 난무가 귓전을 어지럽혀 고정하시기 힘든 형편이겠지만 이같은 저희들의, 이 민중의, 이 민족의 작은 노력들이 뭉쳐나가는 그 끝에 당신님들께서 영원히 평안스럽게 잠드실 수 있는 세상이 기필코 올 것임을 믿으시고 불편하시더라도 평안히 잠드시옵소서. 부디 안락하소서.
(주석 17)


김근태의 망월동 추모사는 민청련 의장의 입장에서이기도 하지만 개인 김근태의 5월 광주항쟁과 이들에 대한 학살, 그리고 전두환 세력의 폭력구조, 어떠한 폭력에도 굴하지 않겠다는 자기신념의 확신을 밝힌 글이다.

“저희들이 행여 눈이 어두워져 제 앞을 가리지 못할 때면 이를 벗어날 수 있는 지혜의 원천이 되어주시옵고, 저희들이 행여 폭력의 강물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면 이를 떨치고 일어설 수 있는 용기와 비결”이 되어 달라고 광주의 영령들에게 빌고 다짐하였다. 김근태는 2011년 말 사망할 때까지, 이 다짐을 잊지 않았고, 남영동의 혹독한 폭력(고문)에도 굳건하게 버티면서 자신을 지킬 수 있었다. ‘망월동의 다짐’ 때문이었다.

주석
17> 앞의 책, 제3호, 2~3쪽, 1984년 6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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