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태 평전/[3장] 고통의 청춘, 수배와 노동운동 시절

2012/07/11 08:00 김삼웅

사진은 김근태를 말하다 블로그에서 http://gtcamp.tistory.com/

 

김근태는 피신중에 건축공사장의 인부, 기술학원의 강사, 그리고 조그마한 공장에 다니면서 은신생활을 하였다. 한 곳에 오래 머물지 않고 자주 옮겨다니면서 추적자들을 따돌릴 수 있었다. 쉬는 날이면 청계천 헌책방을 찾아 책을 사서 읽었다. 그가 다방면에서 박식한 것은 뒷날 긴 감옥생활과 이 무렵의 독서에서 얻은 지식의 힘이 컸다. 피신중에 행운도 따랐다. 평생의 반려이고 동지인 인재근을 만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 기간에 열관리 기능사 등 여러 개의 자격증을 땄다.

77년 8월경 현재 부인 인재근 씨와 만나게 됐다. 상대 1년 후배인 장명국 씨(석탑노동연구원 원장, 현재 구속 중)의 부인인 최영희 씨(석탑출판사 사장)의 소개로 만나게 된 것이다. 당시 인재근 씨는 이화여대를 졸업하고 75년부터 인천에서 노동운동을 해왔었다. 인씨는 78년 2월부터 인천 도시산업선교회(산선)에서 실무 간사로 활동, 동일방직 사건에 관여하기도 했다. (주석 13)

도피 중에 인재근을 만나게 된 것은 김근태에게 큰 행운이었다. 무엇보다 ‘산선’에서 일할 만큼 노동운동과 시대정신에 뜻을 같이 할 수 있었고, 안전한 은신처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감옥에 들어갔다가 나온 친구들은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모두 수배를 받고 피신했으며, 그 1년 후 김상진 서울농대생의 유신체제에 대한 항의자결에 자극을 받아 긴급조치 9호 아래에서 서울대 5ㆍ22 사건과 명동성당 장례식 사건의 배후로 연루되어, 박정희 씨가 저격당해 죽기까지 피신을 해야 했다. 그동안 먹고 살기 위해 공장에 들어가 일하기도 했고, 기술학원 강사생활도 했다. 이 기간에 집사람인 인재근을 만나 함께 활동하다가 결혼을 하게 되었고, 아들 병준이도 낳았다. 아득하고 괴로운 세월이었지만 우리에게 행복할 수 있는 틈도 없지 않았다. (주석 14)

박정희의 패악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독립운동가 출신으로 민권투쟁을 벌이며 박정희와 대결해온 장준하가 1975년 8월 17일 등산길에서 의문사를 당하고, 1976년 3ㆍ1절 55주년을 맞아 윤보신ㆍ김대중ㆍ함석헌 등이 <민주구국선언>을 발표한 것과 관련, 이들을 정부전복 선동 혐의로 구속ㆍ입건하였다. 그리고 1978년 12월 27일에는 체육관 선거를 통해 박정희는 제9대 대통령이 되었다.

이보다 앞서 실시한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공포분위기 속에서 야당인 신민당이 32.8%, 공화당이 31.7%를 얻었다. 야당이 1.1%를 더 득표하는 ‘이변’이 일어났다. 폭압통치를 거듭하는 박정희 정권에게 국민은 분명하게 레드카드를 던졌다. 이처럼 민심의 이반현상이 드러났는데도 박정희는 반성하려 하지 않고 날로 광폭성이 더해갔다.

박정희는 1979년 8월 11일 YH무역 여성근로자들이 마포 신민당사에 들어와 농성을 하자 경찰을 동원하여 폭력으로 강제해산하는 과정에서 1명을 사망케하고, 공화당은 신민당 김영삼 총재의 의원직을 박탈하는 등 반이성적인 야만성을 드러냈다. 마침내 10월 16~17일 부마항쟁과, 부산에 계엄령 선포, 서울 등지에서 대학생 시위가 격화되는 와중에 박정희는 10월 26일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에 의해 살해되고 말았다. 18년 5개월 동안 1인 전제를 자행하다가 부하의 총탄으로 살해된 것이다.

사진은 김근태를 말하다 블로그에서 http://gtcamp.tistory.com/

 

박정희의 암살 소식은 민주화운동가들에게는 희망의 메시지였다. 수년 동안 도피생활을 해온 김근태에게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행운의 여신은 그에게 쉽게 찾아오지 않았다. 가정적으로도 불행이 닥쳤다. 그동안 막내아들 때문에 어느 하루도 마음 편안한 날이 없었던 어머니가 눈을 감았다.

어머니께서는 아들 병준이를 낳았다는 소식을 듣기는 했지만 당시 암으로 쇠진할 대로 쇠진해지셔서 손자를 직접 보고 안아 보시지는 못했다. 그러다가 박정희의 죽음으로 막내아들이 자유로워졌다는 것을 확인하신 탓인지 1980년 1월 말에 세상을 떠나시고 말았다. (주석 15)


주석
13> 앞의 책, 160쪽.
14> 김근태, 앞의 책, 418쪽.
15> 앞의 책, 418~4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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