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에 다시 생명의 불씨를...

 

내가 살고 있는 감방에 창이 두 개가 있는데, 그 중 하나는 바깥마당으로 열려져 있지.
북동쪽을 향한 창문이어서 지난 추운 겨울 내내 햇빛과는 서로 엇비켜 서 있는 꼴이었소.
해는 떠서 아침을 먹을 녘까지만 창틀 옆 변소 담벼락을 비추다가 이내 그늘 속으로 내 방 창문을 묻어버리곤 했소.
해서 더욱 얼어 있었고 그 위를 회색빛 우울과 바람이 서성거리고 있었다오.
용기를 내서 창문을 열었다가도 이내 닫아 버리곤 했다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창문은 나에게 설레임으로 다가왔소.
저 고대하는 우리들의 희망을 향한 발돋움대이기도 하고, 열려진 세상으로 통하는 가냘픈 통로이기도 하기 때문이요.
때로는 울적함을 노래에 실어 날려보내기도 하고, 저 아랫배로부터 토해져 나오는 짐승같은 신음소리를 쏟아내는 나의 창문이 되었다오.
지금 나에게는 꽤 중요한 것이 되었소.
그러나 이렇게 된 것은 작년 11월말 이후였다오.
그 전 두어 달 동안은 나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었을 뿐 아니라 불필요하게 간섭해 오는 존재였다오.


내가 있었던, 또 지금 내가 있는 방들은 정신질환자들을 수용하는 곳이었소.
앞뒤의 창들은 비닐로, 아스테이지로 완전히 밀봉되어 있었소.
조그만 구멍들이 뻥뻥 뚫린 철판을 대어 어두컴컴 했었소.
바깥에서 이 안을 들여다보는 것은 상당한 주의력을 집중해야 가능한 일이었고 뭔가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분위기였소.
그 안에는 흉츳스런 것이 갇혀 있어야 마땅한 일이었고 경멸받아서 마땅한 존재로서 말이오.


작년 9월말 처음 이곳에 내던져졌을 때 난 이러한 것에 흥미나 관심이 전혀 가지지 않았다오.
아니 주의를 가질 기력이 나에게는 남아 있지 않았다오.
오직 필요한 것은 컴컴한 짙은 어둠과 외부의 모든 자극으로부터의 차단, 그것이었다오.
직접적이고 노골적인 폭력과 그로 인한 고통으로부터는 어느정도 비켜설 수 있게된 것이었으나,

더욱 깊어져 가는 마음의 상처, 나는 그것을 감당할 수가 없었던 것이오.
그냥 정신적 위기라고 하기에는 너무 절박하였소.

 

어떤 와해, 버텨가는 것의 종착역에 이르러 가고 있었다고 하는 편이 보다 정확할 것이요.
나는 내가 이제 황폐함 속으로 밀려 떨어져 쓰러지겠구나, 이러한 것을 뻔히 들여다보면서도 속수무책이었던 것이오.
몸과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어 무너져 내리는 곰 같은 신세였소.

컴컴한 동굴 속에 자리를 차지하고 한편으로는 굴 입구에 나타날 수상쩍은 적을 경계하면서 상처가 아물도록 자꾸 혀로 핥는 것이었다오.
그래도 나는 안심이 되지않아 이불 속으로, 이불 속의 컴컴함으로 더욱 기어 들어갔다오.

오감도 속의 이상(李箱)처럼 나는 점점 이상해져 갔다오.


아, 이때 나는 정말 누군가의 체온, 그것을 갈망했다오.
인간의 목소리, 사랑이 담긴 그 눈빛을 나는 고대했던 것이오만 다 소용없는 일이었소.
상처를 확인해 나가는 완화된 형태의 적의만이 순간순간 번득이는 것이었소.
그러나 구원은 나에게, 나에게 있었다오.
예상하지 못한 곳으로부터 구원은 나타난 것이었소.
그것은 마루 밑바닥으로부터였소.
그곳에서 사랑의 목소리가 들려온 것이오.
애정이 넘쳐흐르는 코 먹은 소리였다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쥐들의 사랑이었소.

 

오. 쥐가, 쥐의 그 목소리가 나의 구원이었소.
그러면서도 한편 나의 이성은 주저주저 하였소.

쥐는 나에게 이런 것이었소.
쥐약 먹고 골목길에 나자빠져 시뻘개진 창자가 툭 튀어나온 채 길바닥에 내던져 있는 것이거나,

무서운 전염병을 옮기는 페스트처럼 파괴와 죽음의 그림자였다오.
미키 마우스같은 영리함은 우리들의 감수성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고, 아마 누구나 이 점은 나와 비슷할 것이오.
그래도 이성은 살아서 이것은 뭐 이상하고 섬찍한 일인 것 같다고 나를 끊임없이 제동걸려고 했지만 제껴 버렸소.
내가 상식세계 그 바깥으로 쫓겨나 있던 그때 이성의 힘은 약합디다.


가슴에 다시 생명의 불씨를 살려 내는 것은 이성이 아니고, 사랑의 눈빛과 목소리일 뿐이오.
사람의 사랑이 봉쇄되어 버렸던 나에게는 그나마 이것은 크게 다행한 일이었소.
이렇게 막상 쓰다 보니까 뭔지 좀 어색해지고 이상하게 느껴지지만 그 때는 정말 사실이었소.
그리고 나의 희생에 큰 계기를 마련해 주었던 것이오.
저희들끼리 나눈 쥐들의 그 사랑이 말이오.


그리고 참 인재근씨가 계속해서 넣어준 과일과 우유, 음료수, 이것도 나에게는 큰 용기를 주었소.
그 때 나는 별로 무엇을 먹고 싶거나 설사 어느 것을 먹었어도 소화해 낼 능력이 없었지만 이렇게 나를 기억하고,

이 물건들을 통해서 확인해 주는 그 손길이 눈물겨웠소.
거기에서 내가 아는 냄새를 맡으려고 킁킁대기고 했고, 혹시 체온이 남아있지는 않을까 싶어 자꾸 만져보기도 했다오.
모두 빼앗겨 버렸던 당시의 나는 무엇인가를 소유하고도 싶었던 것이오.
이것을 채워주었던 것이지.

인재근씨, 당신이 말이오.


어쩌다가 하루 걸러서 이틀이 되고, 사흘이 그냥 지나면 나는 불안해졌던 거요.
잘 이해가 가지 않을 것이요.

하지만 당시의 나는 정말로 버려져 있었던 것이오.
돌이켜보면 나 스스로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오.


또 다음에.


(1986년 3월 11일, 서울구치소에서 부인 인재근씨에게 보낸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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