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재근씨에게


병준이가 크레용으로 쓴 '우리 아버지'를 들여다보다가 나는 나의 우리 아버지를 생각했고, 아버지의 삶을 더듬어 보았다오.
어제로 우리 곁을 떠나신지 꼭 20년이 되었구료.

 

그동안 아버지는 제사상 위의 사진에서, 사진틀속의 사진에서 나를 만났고, 평상시 생활에서는 그 무게가 점점 작아져 갔었지.
어렴풋한 추억 속으로 아버지는 떠밀려 간 것이겠지요.
그러나 언제쯤부터인지 나는 우리 아버지의 아팠던 상처들, 삶의 그늘에 대해서 눈을 떠가게 되었소.

 

어제는 눈이 부실정도로 환한 날이었지.
그런데도 바람이 거세게 불고, 때때로 흙먼지 날리고, 차가움이 살갗을 파고드는 것 같았어.
이상스럽게 약간 무서운 느낌이 들고 내 가슴 속에 황황히 바람이 일어나더군.


그 속에서 나는 아버지 모습을 보았어.
움푹 패여 그늘진 어깨, 말라서 길어진 목 뒤 모습, 그리고 허벅지께부터 바람에 날려 휘감기던 바지 가랑이,

바지 가랑이의 허전함이 목을 메이게 했다오.

 

우리 아버지는 위대하거나 호방한 그런 분은 아니었어.
이렇다할 깊은 사상을 가진 것도 아니었고, 차라리 소심하여 두려움에 떠는 작은 가슴을 가진 분이셨지.
이 때문에 나는 사실 아버지를 별로 존경한 적이 없었고, 어떤 다른 사람들의 아버지를 멀리서 소문으로 얘기들으면서

실망하고 짜증부리기도 하였어.

 

그런데 우리 아버지는 따뜻한 품을 가지고 계셨어.
아무리 추운 날씨라도 아버지의 품속으로 기어 들어가면 걱정할 필요가 없었어.
아늑하고 유쾌해졌지. 이럴때마다 아버지도 좋아하셨고.


조금씩 크면서 나는 아버지 품을 넘치기 시작했고, 생물, 과학 등을 배우면서

아버지 체온이 다른 사람들보다 약간 높은 체질로 이해하기 시작하였다오.
이렇게 하면서 아버지 품을 나는 영영 떠나게 되었고, 아버지는 멀리 떠나가신 것이지.

 

20년 동안이나 아득히 먼 곳으로 떠나 가셨던 우리 아버지가

바람이 거칠게 불고 해가 벌겋게 공중에 떠 있던 어제 나에게 되돌아오고 계셨다오.
아니 벌써 되돌아오고 있었던 우리 아버지를, 그 삶의 고뇌를 똑똑히 보게된 것일게야.


고난과 치욕의 이 겨레 20세기의 한귀퉁이에서 당신에게 몰아쳐왔던 그 절망과 부담에 짓눌려 겁먹은 채 살아가셨겠지.
버티느라고 부르르 부르르 떠시면서 말이요.
버티는 것이 힘겨워 몸에 늘 미열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당신과 당신의 자식들을 가려 주느라고 속으로 미열을 내며 앓으셨던 그런 삶이였을 거요.

 

3.1운동 때 아버지는 19살이셨다오.
읍내시장에는 못나가시고 뒷동산에 올라가서 실컷 만세를 부르셨다고 말씀하셨지.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안도의 숨은 쉬었지만,

"에이 왜 좀더 대담하지 않으셨을까" 하며 투덜거리던 내 국민학생 때 기억이 되살아나는구료.

 

유관순 누나같은 아버지가 아닌 것이 창피한 적도 있었지.
심약한 아버지를 가볍게도 생각하고. 


그러나 나 이제 우리 아버지를 알게 되는 것 같다오.
작은.... 그런 아버지. 그 삶을 이 철창 안에 들어 앉아서 말이요.

 

저들의 뻔뻔한 짓에 두 발로 버티면서, 부르르 떨면서 나는 우리 아버지를 되돌아 오시도록 하는 것이요.
그리하여 내가 다시 우리 아버지의 그 고뇌에 참여하면서, 그 삶을 사는 것이 아닌가 싶소.
혹시 내 삶을, 절망을, 아버지가 먼저 사셨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소.
그리하여 남겨지고 이어지는 그 삶을, 그런 치욕과 중압을 오늘 여기서 내가 살고 있는 것이겠지요.

 

불길하게 바람이 불고 뻘겋던 어제, 나는 우리 아버지를 새롭게 만나면서 목이 메어졌다오.
아버지처럼 두근거리는 작은 가슴을 가져 자꾸 겁을 먹으면서 말이요.
그러나 나 이제 작지만 끈질긴 가슴이 되는 것 같다오.
겁먹고 겁먹고서 다시 버티는 그런 것이 되는 것이요.

 

병준이는 아버지인 나를 보면서 멀지않아 이 두근거리는 내 가슴을 알게 되겠지.
두려워 밀리는 것에 실망도 하겠지.
하여 조금씩 상처를 입으면서 이 세상 깊은 곳으로 한 발자국 한 발자국 걸어 들어가게 될 병준이, 병민이가 될 것이지.

 

난 사실 병준이, 병민이 아버지이어야 하는 것에 은근히 겁을 내고 있는 것 같소.
그저 휘청거리면서 버텨 나가는 이 모습에서 어떤 것을 그 애들은 배우게 되고 흉내내게 될 것인지 말이요.
혹시 '별 볼일없는 삶이구나, 우리 아버지는' 하며 실망할지 모르는 것도 조바심칠 일이지만,
그 애들 가슴에 맺힐지 모르는 상처들, 검은 그림자들의 드리움, 그것이 걱정이 된다오.

 

그러나 병준이 엄마의 따슨 사랑을 보면서 나는 안심을 하지.
애들이 그 속에서 몰아쳐 올지 모르는 어떤 것도 견뎌낼 것을 나는 믿는 것이요.
그러고도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은 또 그 애들 자신의 삶으로 생명력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일이겠지요.

 

(1986년 1월. 서울구치소에서 부인 인재근씨에게 보낸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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