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준, 병민에게

 

병준아, 병민아 잘 있었니.


오랫동안 너희들에게 소식을 전하지 못했구나.
아버지는 이사를 하였고, 유난히 마음상하는 일이 있어 그렇게 되었단다.
우리 병준이, 병민이가 씩씩하게 자라는 것은 엄마가 보내주는 편지를 통해서 아주 잘 알고 있다.
특히 엄마편지와 함께 날아 온 너희들의 그림을 재미있게 들여다 본단다.
엄마, 아빠를 그린 병준이 그림, 병민이 그림 모두 잘 그렸고, 글씨도 잘 쓰는구나.


병준아, 학교마당에서 뛰어노는 아이들,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을 그린 네 그림 속에서 금방 병준이가 "아버지!" 하면서 뛰어나올 것 같구나.
학교생활이 신나고, 동무들과 사이좋게 지내는 모습이 그 그림에 배어 있구나.
하늘에는 해가 환하게 웃고 있고 말이다.


그 해는 하늘에 있지만, 병준이 마음 속에도 있을 것 같이 느껴진다.
그러나 병준아, 뛰어놀다 보면 가끔 넘어지고, 넘어져 무르팍이 깨지기도 하지.
또 피가 나 울기도 했을 것이다.
우리들의 신나고 재미있는 생활 속에 가끔 걸림돌이 나타나고 어떤 때는 방해꾼조차 쫓아와 괴롭히기도 하는 것을

병준이 너도 어렴풋이나마 알리라고 생각한다.


새로운 학교생활, 새로운 친구들, 그리고 선생님들 만나는 것이 가슴 두근거리게 하는 기쁨으로 너에게 다가 왔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과 동시에 낯선 환경과 낯선 사람들에 대한 경계심, 긴장들도 왔을 것이다.
쉽고 재미있는 공부와 숙제도 있지만, 따분하고 몹시 귀찮은 것도 틀림없이 있을 것이다.
이런 것들이 걸림돌이란다.
여기에 걸려 넘어져 무르팍 깨져 피가 나듯이 네 마음에 상처를 입은 적도 있을 것이다.


넘어져 한바탕 울고나서는 또 동무들과 어울려 재미있게 병준이는 놀지. 그렇단다.
놀다가 넘어져 다치는 것이 무서워 놀지 않는 것은 너희들에게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런 바보가 어떻게 있을 수 있겠니.
그건 지는 것이란다.

병준아, 너는, 가슴에 태양을 안고 있는 너는 넘어지는 것을 상처입는 것을 훌륭하게 이겨낼 수 있으리라고 아버지는 믿는다.
있잖니, 너희들을 떠난 뒤 어떤 사람이 딴지를 걸어 아버지도 넘어졌단다.


심하게 다치기도 했었다.
외롭고 무서워 울기도 했다.
꾹꾹 눌러 속으로 울었단다.

그러나 이제 다시 일어났다.
엄마, 큰엄마, 큰아버지가 도와주고 엄마, 아버지 친구들이 어깨를 빌려줘 저 컴컴한 어두움을 벗어날 수 있었다.


병준이 그림 속의 태양을 보면서, 아버지도 그런 밝음을 마음 속에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겠다고 결심을 했단다.


병민아, 네 생일을 축하한다.
뒤늦게야 축하하고, 너한테 가지 못해서 미안하다.
언니들, 오빠들 하고 네 생일을 축하하면서 즐거워했다고 엄마한테 들었다.
병민이처럼 튼튼하고 마음이 고운 아이가 딸인 것이 아버지는 무척 자랑스럽다.
욕심장이로서 자존심이 강한 것이 아니고 다른 사람을 이해하면서도 의견이 따로 있는 네가 그렇게 이쁠 수가 없었다.
옷도 혼자 입고 그 선택도 네 스스로 하고, 또 엄마와 함께 집안 청소도 한다지.


병민아, 네 손을 잡고 놀이터에도 가소 약수터에도 가게 될 날을 아버지는 기다린다.


병민아, 역곡 일두아파트 뒤에 있던 약수터 기억하고 있니?
거기에 네 손을 잡고 노래부르면서 오빠, 엄마와 함께 갔던 것 나는 그리워한단다.
약수터 가는 논길에서는 개골개골 개구리 소리가 병민이을 반겨주었고, 앞쪽 산 숲에서는 뻐꾸기가 뻐꾹, 뻐꾹, 뻐어꾹 소리내면서

다시 한번 약수터에 가자.
그래서 개구리도 만나고 뻐꾸기도 만나고 말이다.


참 병민아, 너는 엄마보고 "재근아, 재근아" 그런다며.
엄마가 네 친구여서 이름을 부른다지.
엄마는 조금 난처하면서도 재미가 있는 모양이더라.


병민아, 너는 배짱이 센 놈이로구나.
그래, 엄마, 아버지는 병민, 병준이 어머니, 아버지이기도 하고 친구이기도 하단다.
그런데 진짜 친구가 된다는 것은 너 스스로 생활에 책임을 질 때 가능한 것이란다.

 

그건 쉽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되도록 병민이가 더욱 애쓰고 엄마, 아버지가 돕도록 하자,
이 얘기는 어려워서 다음 기회에 자세히 얘기하자꾸나.


잘 있어라


(1986년 6월 19일, 영등포구치소에서 아들 병준, 딸 병민에게 보낸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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